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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마다 이렇게 밝게 살았으면
ⓒ 장옥순
고백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고는 내가 병이 날 것 같아서입니다. 금년만큼 아이들을 많이 때려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산만하고 목소리 큰 아이들이 날마다 벌이는 자잘한 사고 앞에서 어느 사이에 내 손에는 작은 매가 비서 노릇을 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좋은 말로 하면 뭉개버리고 말도 듣지 않는 꼬마들이 손가락 길이만한 작은 매 앞에서는 "알았어요, 선생님. 싸우지 않을 게요. 밥 다 먹을 게요"라고 합니다.

1학년 아이들이니 서로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그마한 일에도 서로 언성을 높이고 싸움질하기 일쑤입니다. 아직은 도덕성이 정립되지 않은 아이들이라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며 친구 마음을 다치게 합니다. 싸우고 때리고 울려놓고도 잘잘못을 가리려면 몰래카메라라도 있어야 됩니다. 도대체 자기 잘못을 말하는 아이는 없고 상대방 탓만 하기 때문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친구를 때리고 욕하는 아이들은 연필을 쥔 손으로 친구를 때려서 피가 난 적도 있습니다. 그러고도 자기 잘못보다는 씩씩거리며 상대방도 잘못했다며 억지를 쓰니 꿀밤이 날아갑니다. 밥을 먹다가도 울리는 아이, 툭하면 때리고 도망가는 아이에게도 말이 안 통하면 꿀밤이 날아가곤 합니다. 때리면 안 된다고 가르치면서 정작 나는 꿀밤을 주고 있으니 스스로 속이 상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반 아이들이 내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 같습니다. 내 억양이나 목소리를 흉내 내기도 하고 친구들끼리 꿀밤을 주기도 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반성을 합니다. 내일은 말로만 충고하자고, 꿀밤도 주지 말자고, 어떤 형태의 체벌도 하지 말자고 다짐을 합니다.

▲ 날마다 꽃처럼 살아요, 우리
ⓒ 장옥순
그래도 돌이켜 생각하니 아이들이 참 귀엽습니다. 나에게 그렇게 꾸지람을 들으면서도 다음 날이 되면 언제 그랬나는 듯 다시 내게 와서 "선생님"을 부르며 쫑알대고 손을 잡는 아이들이니까요. 미주알고주알 일러대는 모습, 선생님 주려고 뽑기를 했다며 핸드폰에 채워주던 최강,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그림마다 선생님이라며 공주를 그려놓고 하트 표시를 하는 강고은이의 예쁜 모습은 잊은 채, 날마다 질서와 정숙을 강요하며 전체 속에 집어넣고 일사불란하기를 바란 내 모습이 참 부끄럽습니다.

중국 명대의 사상가 이지는 "무릇 동심이란 거짓을 끊어버린 순진함으로 사람이 태어나서 맨 처음 갖게 되는 본심을 말한다. 동심을 잃게 되면 진심이 없어지고, 진심이 없어지면 진실한 인간성도 잃어버리게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의 귀엽고 천진한 모습은 바로 동심의 표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아이들 틈에서 질서와 순응을 배워가며 전체 속에 매몰되어 힘들어하는 아이, 적응이 어려운 아이들을 차분히 끌어안지 못하고 바쁘게 채근하는 내가 부끄럽습니다.

오는 5일은 어린이날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동심을 잃지 않고 상하지 않으며 자랐으면 참 좋겠습니다. 아니 어른이 되어서도 동심을 오래 지니고 살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동심이 사라지면 진심이 사라지고 진실한 인간성마저 상실된다는 한 사상가의 말씀에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어른들이나 부모, 선생님들이 할 일은 어린이를 어린이로 자라게 하는 일인데 무엇인가를 특별히 잘 하거나 촉망받는 직업인이 되기를 강요하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 볼 때입니다.

나의 귀여운 천사들이 그들이 지닌 동심을 하나도 잃지 않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렇게 밝게 웃으며 아이들처럼 살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약삭빠르지 않고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으며 손해 보는 일도 친구를 위해서라면 해줄 수 있는 지금 같은 모습을 갖고 살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개구쟁이 승현이가 3월 초에 걸어준 목걸이를 다시 걸고 학교에 가야겠습니다. 그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입니다. 날마다 내 마음을 다치게 하는 아이이지만 그 아이가 지닌 동심과 진심은 어른인 내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 책이랑 노는 아이들
ⓒ 장옥순
문득 어제 아침에 승현이가 카네이션을 사왔다면서 내게 주려는 것을, "오늘 학교에서 친구들을 때리지 않고 예쁘게 지내면 받을 거야. 할 수 있지?"하며 거절했던 게 마음이 아픕니다. 그 아이의 동심을 상하게 한 못난 담임입니다. 아이들을 어떤 조건으로 평가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그의 인격을 존중해 줘야 하는 기본을 잊은 언행을 보인 내 잘못을 사과해야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날마다 어린이날인 것처럼 대우받으며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존중받으며 어른이 되어서도 동심을 지니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어린이라는 말을 맨 처음 사용하신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의 마음속에도 하느님이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그 하느님을 잘 모시고 보살피는 일이 어른들의 몫이라고 하셨는데, 오늘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치거나 기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것이 먼저임을 잊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야단을 치고 꾸지람을 해도 돌아서면 다시 내게 달려오며 사랑을 표현하는 그 작은 꼬마들이 지닌 사랑만큼도 지니지 못한 작은 내 마음이 부끄러운 아침입니다. 어린이 날이 되기 전에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너무 많이 꿀밤을 주고 야단을 쳐서 참 미안하다고, 용서해 달라고 말입니다. 나도 동심을 회복하고 싶은 탓입니다. 나도 동심을 찾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한교닷컴> <에세이>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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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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