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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첫째 녀석 '밝음'이가, 대구의 '일반 인문고'에서 경북 김천에 있는 '김천예술고등학교'로 전학했습니다. 이곳 대구까지 통학하기에 적당한 거리가 아니어서 기숙사 생활까지 해야 하니, 저희 부부 마음이 보통 아린 게 아닙니다.

그간 한 번도 곁에서 떼어놓아 본 적이 없음이요, 또한 새로운 교과과정이나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등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며칠 동안이나 동동거렸습니다.

▲ 김천역사 앞에 있는 굽은 소나무
ⓒ 정학윤
▲ 김천역사 건너편 길가에 추억의 '뽑기'
ⓒ 정학윤
'밝음'이의 전학은 대학 선택의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에서 결정된 것은 아닙니다. 아이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적성과는 무관하게 강요되는 늦은 밤까지의 수업에만 휘둘렸고, 그것을 지켜보던 저조차 질려버린 것입니다. 또한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던 것들이 무엇이었던가 조차도 잊어버리기 전에 무언가 결단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마침 밝음이의 재능을 아끼는 분의 권유도 있었습니다. 본인의 의사가 제일 중요한지라 녀석의 눈치를 살피면서 전학을 제안했었고, 전 가족이 나서서 사전에 학교를 방문하는 등 충분한 예비동작을 거쳐서 전학을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 김천예술고등학교로 떠나는 기차여행. 아이가 셋입니다. 이름을 연결하면 '밝음(밝고) '푸름(푸른)' '하늘' 같은 우리입니다.
ⓒ 정학윤
그저께는, 아이가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주말에 집으로 돌아올 길에 대하여 알려줄 겸 전 가족이 기차를 타고 전학할 '김천예고'를 답사했습니다.

어른에게나 아이들에나 기차를 타고 어딘가를 떠나는 것은 설렘이었습니다. 작은 언덕을 지나서 있는 그 학교는, 같이 걷는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만큼의 온화한 숲길이 있었습니다. 청설모가 간혹 그 길을 가로지르며 내달리는 모습도 보였고, 축대 위에 있는 민들레 홀씨를 꺾어 후후 불며 걸어 올랐습니다(소박하지만 아름다운 학교였습니다).

▲ 김천역, 기차가 잘 다니지 않는 쪽의 철길에 핀 '별꽃' 감상 중
ⓒ 정학윤
밝음이는 오늘부터 등교했습니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학교에 도착했는데 담임선생님, 교감선생님, 교장선생님이 함께 아이를 맞아주셨습니다.

▲ 김천예술고등학교 정문으로 통하는 오솔길
ⓒ 정학윤
교무실에서 수속을 위해서 대기하고 있는데, 교무실 문이 조금 열리면서 반 아이 몇 명이 얼굴을 들이밀었습니다. 전학 오게 될 친구가 누구인가 궁금하여 호기심을 발동한 듯 보였는데, 차곡차곡 머리를 순서대로 쌓아서 내민 그들의 얼굴은 너무나 맑았습니다(이삿짐을 들여오는 옆집 사람들을 조심스레 관찰하던 옛날이 생각났습니다. 담장 아래서 발을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말이지요). 초롱한 눈빛에 장난기가 가득한 아이들이었습니다.

조금 후에 밝음이가 교실로 들어가고, '자기소개'를 했는지 와~ 하는 함성과 박수 소리가 들렸습니다. 대단한 환영으로 들렸습니다. 그것은 잔뜩 긴장하여 교실을 응시하고 있던 우리들에겐 정말 고마운 소리였습니다.

▲ 민들레 홀씨를 불며 김천예술고등학교 정문 오솔길을 오르다
ⓒ 정학윤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일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는 말을 늘 해왔습니다. "그것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자신을 가다듬어라"고 말해왔습니다.

밝음이에게 오늘의 전학이 제 말을 실천하기 위한 동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본인이 좋아하는 그림으로 세상을 읽고,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밝음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더 나아가 밝음이의 그림이 '함께 사는 세상'을 노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김천예술고등학교 입구에 있는 해태상
ⓒ 정학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눈이 붉어져서 혼났습니다. 밝음이를 먼 곳에 떼어두고 오는 안쓰러움도 안쓰러움이거니와, 마침 오늘따라 아이에게 더 몰두하여 그간에 어떻게 대했던가를 찬찬히 되짚어보니, 아이에게 잘못한 것이 무척 많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내 아비가 내게 내지르던 권위 따위와는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대했는가?"
"아이를 얼마나 진심으로 대했으며 안아주었던가?"
"아이의 눈높이와 정서를 무시하려 든 적은 없었던가?"
"입으로는 가족 내의 민주적 질서를 외쳤으나, 정작은 봉건적이고 폐쇄적이고 획일화된 질서에 복종하라고 강요한 적은 없는가?"
"아이에게 부족한 설명으로 반성을 촉구하고 나만의 원칙을 준수하라고 주장한 적은 없었던가?"……

▲ 사랑해 밝음아! 아빠는 너를 믿는다
ⓒ 정학윤
참 부족한 아빠였습니다. 이것을 이제야 느끼다니, 저는 정말 한심한 아빠입니다.

"아이야! 진심으로 너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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