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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민들레꽃. 어느 장소에서 씨앗을 틔우는가에 따라 그 고난도 달라집니다.
ⓒ 한명라
2002년 어느 초여름 아침이었습니다.

당시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을 공부하고 있던 저는 아침이면 아이들을 학교를 보낸 후, 서둘러 대충 집안일을 마치고 오전 10시에 시작되는 강의시간에 늦을세라 시내버스를 타고 마산시 합성동에 있는 학원으로 줄달음을 쳤습니다.

그날도 때맞춰 온 시내버스를 타고서 행여나 강의시간에 지각이라도 할까봐 조바심을 치던 때였지요. 합성동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20여 미터 떨어진 학원을 향해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앞쪽에서 한 쌍의 부부가 저를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저 자신도 모르게 그 부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그 부부는 두 사람 모두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저는 장애인이나 외국인을 길거리에서 마주치게 되면, 애써 그들을 평범한 사람들을 대하듯 아무렇지 않은 듯, 그냥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노력을 했었습니다. 매스컴을 통해서 장애인들이 들려주었던 많은 이야기 중에서 주변 사람들이 자신들을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듯 힐끔거리거나, 유심히 쳐다보는 시선이 무척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도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장애인들이나 외국인, 특히 요즘 자주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동남아시아인들을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기도 했습니다.

▲ 사람들이 쉽게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화단의 풀숲에 피어 있는 민들레꽃.
ⓒ 한명라
그런데, 그런 제가 정작 그 시각장애인 부부에게서는 시선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짧은 커트머리의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부인과 검은색 선글라스를 쓴 젊은 남편. 부인이 남편의 팔짱을 아주 다정하게 끼고 있었고, 두 어깨엔 작은 가방을 메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부인이 팔짱을 낀 손에 서류가방을 들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시각장애인들이 들고 다니는 은빛으로 빛나는 지팡이를 들고서 보이지 않는 길을 툭툭 더듬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밝은 빛이라고는 한 가닥도 가늠할 수 없을 짙은 어둠 속에 서 있을 그 부부.

이 세상의 모든 행복을 다 가진 듯한 그 부부의 웃음이 저의 시선과 발걸음을 꼭 붙들어매고 있었습니다. 서둘러 가야 하는 학원 따위는 잊어버리고 그 부부를 따라서 함께 길을 걷고 싶을 만큼, 그 부부는 아주 밝고 행복한 미소를 나누면서 제 곁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군가가 자신들을 마냥 가슴 뭉클한 감동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 말입니다.

그렇게 이 세상의 모든 어려움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오로지 우리 둘이서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 주면 이루지 못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듯이, 아무 거리낌없이 씩씩한 걸음걸이로 지나치는 그 부부의 뒷모습을 한없이 바라보며 걷다가, 저는 제가 들어가야 할 학원 건물을 한참이나 지나쳐 왔음을 뒤늦게서야 깨달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되돌아가서 학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서서 점점 멀어져 가는 그 부부의 뒷모습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습니다.

아무런 부족함 없이 정상적인 신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서도 쉽게 발견할 수 없었던, 행복한 웃음을 얼굴 가득 지으면서 어둠으로 가득 찬 험난한 세상을 향해서 힘찬 발걸음을 씩씩하게 옮기는 그 부부가 장애인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찬 이 사회로부터 부디 상처를 받지 않기를, 그리고 오래도록 그 행복한 미소를 잃지 않고 살아가기를 마음으로 빌었습니다.

▲ 같은 민들레꽃인데도 아파트 인도의 가로수 아래 싹을 틔운 죄로 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히고도 작은 꽃을 피웠습니다.
ⓒ 한명라
우연히 그 부부와 마주친 지도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부부의 모습은 제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고 아직도 선명하게 생각이 납니다. 아무런 장애가 없는 건강한 몸으로 살아가는 저에게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지금도 시각장애인 부부의 뒷모습을 떠올리면서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저, 그리고 아무런 장애가 없이 건강한 몸을 가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여러 가지 변명만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오늘을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 바쁜 아침 출근길, 4년전 시각장애인 부부처럼 저의 발길을 사로잡은 인도 위의 작은 민들레입니다. 작지만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피어난 고운 꽃입니다.
ⓒ 한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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