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내가 계획에 없던 친정 나들이를 갔다. 장모님께서 갑자기 쓰러지셔서 입원하셨다는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연세가 있으시기 때문에 크게 염려됐지만, 다행히 가벼운 뇌출혈 증세로 약물치료만 해도 된다는 진단으로 고비는 넘기셨다는 소식이 왔다.

"친정 내려 온 김에 엄마에게 며칠 효도하고 올라갈려는데요?"라는 아내의 말에 "그렇게 하시요"라고 시원스레 답변했다. 사실 친정이 가까우면 금방 들락날락하겠지만, 멀리 남쪽 경남 진해이고 보니 마음 먹지 않으면 이곳 경기 수원에서는 나들이 가기도 어려운 처지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장모님 덕분에 오랜만에 아침 끼니를 직접 챙기게 되었다. 점심과 저녁은 사무실에서 해결하니 문제가 되지 않는데 아침에 일어나 밥하기가 새로운 과제가 되었다. 반찬은 아내가 미리 몇 가지 챙겨 놓고 갔으나 밥과 찌개는 직접 챙겨야만 한다.

아침밥을 먹지 않으면 하루 종일 맥이 빠지는 체질이라, 아침밥만은 꼭 1식 3찬 이상으로 챙기는 게 평소 습관이다. 출근하다가 해장국이나 한 그릇 사먹고 갈까? 사무실에 가서 구내 식당 밥을 먹을까? 궁리하다가, 그래도 세 끼를 사먹기는 내키지가 않았다.

'그래, 집에서 제대로 챙겨 먹자.'

마음을 굳혔다. 정말 오랜만에 직접 아침밥을 지었다. 먼저 쌀을 씻어 전기 압력밥솥에 넣은 다음 쌀이 잠길 만큼 물을 부어 불렸다. 그리고 찌개거리를 다듬어 가스불에 올려놓은 다음 전기 압력밥솥에 추가로 한 컵 정도 물을 붓고서 뚜껑을 닫고 스위치를 눌렀다. 금방 전기가 들어가면서 작동되었다.

가스 불 위의 찌개가 끓고, 밥솥에서 딸랑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주방이 부산스러워졌다. 밥솥의 김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피익'하고 들렸다. 조금 지나서 밥솥 뚜껑을 열었다. 겉보기에 아주 먹음직스럽게 잘 되었다. 주걱을 들고 밥의 아래 위를 골고루 섞었다. 주걱을 통해 고슬고슬하게 밥이 잘 되었다는 기분 좋은 감각이 전달되었다. 다시 뚜껑을 닫아 '보온' 상태를 확인하고서 아내가 정성스레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둔 밑반찬들을 꺼내 아침 준비를 마무리했다.

혼자 먹는 아침이지만 맛이 있었다. 밥을 먹다보니 며칠 전 사무실에서 직원들끼리 나누던 대화가 생각났다. '전기밥솥'과 '전기 압력밥솥'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내용이었다. 얘기인즉, 밥솥의 종류에 따라 밥하는 요령이 다른가, 같은가 하는 것이 쟁점이었다.

남녀 구분 없는 쟁점으로 번졌다. 결론은 경험과 이론을 겸비한 전문가의 한마디로 종결되었다. '밥짓기는 상황 판단을 잘해야 하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밥이 되는 과정 자체가 복합적인 요인으로 결정되는 과학적인 산물이기 때문이다.

요리, 즉 음식 만들기가 기술이며 과학이듯 밥짓기 역시 기술이라는 것이다. 똑같은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만드는 사람의 기술에 따라 천차만별의 요리가 만들어지기에 제대로 배워야만 제대로 된 요리가 된다. 빵 만드는 기술을 배우듯, 밥짓기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나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기에 밥짓기를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므로 문제가 된다. 특히 밥짓기에 경험이 적은 경우는 손가락 하나로 물 양을 맞추고는 밥솥의 전기 스위치를 누르는 것만으로 밥이 되는 것으로 알기 때문에 떡밥이나 푸슬푸슬한 밥을 만들고서는 쌀이 나쁘다고 불평한다는 것이다.

참 어렵다. 그러기에 외국에서 쌀이 수입되면서 요즈음 밥하는 요령을 제대로 익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자칫 밥짓기가 잘못되어 쌀에 대한 평가를 잘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밥솥이나, 전기 압력밥솥이 자동으로 밥을 하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쌀의 상태를 정확히 아는 일이다. 그리고 물 조절이다. 똑같은 쌀이라도 밥솥이 가진 압력도에 따라 물 조절이 달라야 한다. 가장 보편적이라 할 수 있는 전기 압력밥솥을 이용할 때는 물을 쌀의 분량만큼만 적게 부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의 설명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TV에서 본 외국 고등학교 여학생들의 주부수업을 위한 음식 만들기, 아기 다루기 등 특별 실습교육이 생각났다. 여학생만이겠는가, 남학생도 배워야할 일이 아닌가.

결혼을 하고서도, 밥짓기는 손가락 하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알거나 김치를 담글 줄 몰라 슈퍼에서 구입한 김치만으로 밥상을 차리는 주부라면, 일단 자기점검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부부가 함께 사회생활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 속에서 남자들도 제대로 익혀야 하는 것이 음식 만들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밥만은 제대로 지을 수 있도록 기술을 익혀야 하지 않을까?

약간 헷갈리기는 하지만, 한명숙 새 총리의 출근 첫날 "남편이 아침상 챙겨"라는 기사의 표제가 오늘 따라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하간에 아침밥은 고슬고슬하게 잘 되었으리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 밥 짓기는 과학의 원리가 적용된다. 쌀, 물, 불의 만남으로 밥이 되는데 이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이다. 쌀 불리기를 통해 쌀이 설익지 않고 고루 익게 열을 전달하고, 물과 열의 만남으로 녹말은 호화과정을 거쳐 소화되기 쉽게 된다. 마지막으로 뜸들이기 효과는 밥의 경도가 낮아져 부드럽고 찰기가 강해지게 한다.
  
따라서 밥은 쌀의 종류(메벼인가 찰벼인가), 도정 상태(현미인가 백미인가), 완전미 비율(95% 이상인가, 이하인가), 쌀의 마른 정도(햅쌀인가 묵은쌀인가), 혼합 정도(쌀만인가 다른 곡물을 섞었는가), 밥물의 양(적은가 많은가), 밥솥의 종류(압력솥인가 아닌가), 불의 종류(전기인가 가스인가) 등에 따라 밥짓는 요령이 여러 갈래로 달라진다.
  
그리고 밥맛은 밥짓기 유형에 보태어 뜸들인 후의 교반 정도(아래 위로 잘 섞는가 그대로 두었는가), 경과 시간(금방 먹는가 보온하여 시간을 지나고 먹는가) 등에 따라 또 달라진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삶의 다양성을 인정 할 수 있는 연륜의 지경에 이르렀다고 믿고 싶습니다. 나와 너의 다름을 인정할 때 서로간에 존중과 협력이 가능하리라 여깁니다. 세계의 평화로운 공존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폭이 넓어질수록 가능하리라 여깁니다. 그 일을 위해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