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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대 아버지들의 꿈과 희망을 다룬 베스트극장 <돌아온 철사장>. 이 드라마의 소재가 된 가수 강구원('엉클 K'라고 불리기도 합니다)이 바로 제 형님입니다.
ⓒ MBC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두 딸을 둔 평범한 가장인 제 형님이 바로 이 노래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바로 오는 25일 방송되는 문화방송 <베스트극장>에 형님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연이냐고요? 형님은 동네 노래자랑 무대에 초대가수로 나섰다 톡톡히 망신을 당했고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지난 2004년 봄 마흔셋의 나이에 첫 개인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이미 <오마이뉴스>에도 소개됐지만 언제 들어도 재미난 이야기라 다시 한 번 옮깁니다.

노래자랑 그 후, "여보, 우리 이사가"

형님이 마흔셋에 첫 개인 콘서트를 열게 된 사건의 발단은 2003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0여 년 전 형님은 TV에 많이 나오진 않았지만 앨범까지 낸 '정식 가수'였습니다. 아파트 노래자랑에 출전하라는 형수님의 말에 발끈해 형님은 '초대 가수'로 정식 초청을 받았습니다.

오래간만에 마이크를 잡게 된 형님은 '무대에 오르기 전 감정을 살려야지'라는 생각에 술 한 잔을 걸쳤습니다. 이미 사십을 넘긴 형님에게 소주 한 병과 포도주 반 병은 결코 '한 잔'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말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야말로 코믹 드라마에 딱 어울리는 장면들이 연출됐습니다. 형님의 기억은 비몽사몽 무대에 섰던 그 순간에 멈춰 있고, 다음날 아침에야 비소로 자신이 저지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인사불성으로 아파트 노래자랑 무대에 올라간 형은 노래 몇 소절을 엉터리로 부르다가 진행 요원에 의해 무대에서 쫓겨내려 왔다고 합니다.

'엎질러진 물' 앞에서 한숨만 쉬던 형님은 그 사건이 아내와 딸들에게도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가져왔다는 것을 알고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형수님은 다음 날 이사를 가자고 했고 제 조카는 친구들까지 초대했다가 아주 풀이 죽었다고 합니다. 이사를 갈까, 사태를 만회할 수 있는 멋진 공연을 할까 고민하던 형님은 2004년 봄 정식 공연장에서 자신의 첫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술, 담배 끊고 13년 만에 낸 2집 앨범

▲ 2004년 열린 형님의 콘서트. 중년의 가장이 가수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 한태동
결과는 대만족이었습니다. 400여 명의 관객 앞에서 아파트 노래자랑의 악몽을 일거에 날려버렸을 뿐만 아니라 아내와 딸들이 받은 아픔을 말끔히 씻어내고 다시 멋진 남편과 아빠로 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인 콘서트를 잘 치른 형은 많은 분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과 격려에 힘입어 내친 김에 새 음반까지 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후 형님은 낮에는 생업에 종사하고 저녁에는 음악실로 달려가 밤늦은 시간까지 음악과 씨름했습니다. 그리고 2005년 여름, 자신의 이름이 박힌 두 번째 음반을 냈습니다.

13년 전 나왔던 형님의 첫 번째 음반은 세상의 빛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수북이 쌓여만 있는 운명을 겪었지요. 형님은 아쉬움도 있지만 '산고' 끝에 나온 두 번째 음반에 대해 나름대로 만족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생업을 포기하고 전적으로 음반 작업에 매달릴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노래를 사람들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평상시 애용하던 술과 담배까지 끊으며 작업에 공을 들였습니다.

13년 만에 2집을 내면서 형님이 많은 걸 기대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래를 들려 줄 번듯한 기회조차도 오지 않았습니다. 홍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막대한 자금을 뜻하는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에서 확실한 '투자 상품'이라고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불혹을 넘긴 무명가수를 위해 선뜻 나서겠다는 사람이 없는 건 어쩌면 당연했습니다.

늙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꿈은 사라진다

음반을 낸 후 형님도 음악계 사람들을 만나며 여러 가능성을 탐색해 봤지만 그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습니다. 새 음반을 들고 이곳저곳 뛰어다니던 형이 무엇보다 아쉽게 생각한것은 형처럼 새로운 가수나 노래, 음악을 소개하는 자리가 좀처럼 없다는 겁니다.

그마나 노래자랑에서 망신 당한 후 13년 만에 2집을 냈다는 형님의 별난 이력 덕분에 한 일간지에 기사가 실렸고 형의 노래가 라디오 전파를 타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작년에는 유명 음반사와 유통 계약을 맺어 시디가 음반 시장에 출시됐습니다. 홍보가 되지 않아 음반이 팔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고 일단은 음악사에 앨범이 진열되는 것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 형님이 나에게 준 두 번째 앨범. 형님은 동년배들의 꿈과 희망에 대해 노래하고 싶어합니다.
ⓒ 강구섭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약간 주춤하기는 했지만 형님은 자신의 노래를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때가 올 거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 중심의 대중음악계에서 한 번에 어필하지는 못해도 비슷한 정서를 지닌 또래와 함께 자신의 음악을 즐길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말입니다.

사십을 훌쩍 넘긴 왕년의 명가수들이 등장하는 무대가 하나 둘씩 생겨났지만 형은 그런 무대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옛 가요를 들으며 과거를 추억하기에는 아직 너무 젊다는 거지요.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꿈은 이미 저 멀리 날아가 버린다고 생각하는 형은 지친 모습으로 살아가는 동년배들을 위한 새로운 음악을 꿈꿉니다. 형은 그렇게 세상을 향해 새로운 도전장을 던졌고 자신의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형님, 다시 무대에 서야죠!

그리고 얼마 전 동네 노래자랑 이야기를 단막극 드라마로 만들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1년 전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사를 제작진이 어찌어찌해서 발견하게 된 거지요. 자기 음악을 직접 들려주지는 않지만 형님은 유쾌한 마음으로 드라마 제작에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형의 역할을 맡은 주인공의 후배로 직접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나이 사십을 넘기고 음반도 내고 단역 배우로 데뷔까지 한 셈입니다. 각색하면서 과장되기는 했지만 단막극 <돌아온 철사장>은 형님이 40대 또래들에게 건네고 싶은, '우린 아직 젊잖아'라는 메시지를 드라마는 잘 담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직까지는 신나게 노래할 기회도 없었고 작년에는 이래저래 시련을 겪었던 형님. 하지만 늘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마음만은 20대 때처럼 내일을 꿈꾸며 살아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당장은 갑갑해도 긴 호흡으로 즐기는 음악 생활을 하겠다는 당초 생각대로 여유 있게 그 때를 기다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멋진 무대에 다시 설 형님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덧붙이는 글 | 형님의 일화를 소재로 한 문화방송 베스트극장 <돌아온 철사장>은 3월 25일(토) 밤 11시 45분에 방영됩니다. 아래 사이트에 들어가시면 기사 주인공의 이야기와 노래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cafe.daum.net/k9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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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독일에서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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