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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밤새 앉아 있던 책상 위에 여기저기 책들이 흩어져 있다. 아들 녀석 방을 들여다봐도 똑같은 모습이다. 책꽂이의 책들을 분명히 키대로 정리한 지 이틀도 안 됐건만 벌써 이 모양이다. 남편과 아이는 책꽂이에 책을 얹어 놓은 것만으로도 다행인 줄 알라는 듯하다.

▲ 아들 녀석의 책꽂이
ⓒ 박소영
우리 집에는 장식장이나 장신구 같은 것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그 대신 큰 책장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작은 공간에 왜 이리도 책이 많은 걸까?' 이사할 때 책이 골칫거리가 될 정도다. 겹겹이 쌓아둔 책을 치우는 일은 옮겨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늘면 늘었지 절대 줄어들지 않는 품목 중의 하나가 책이지 싶다.

그런데 이렇게 책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고 있지만, 사실 우리 가족 중에서 책을 가장 좋아하는 이는 바로 나 자신이다. 잠들기 전에 머리맡에 물 컵 대신에 책을 두고 잔다. 잠을 자다 목이 마르면 물을 찾듯 잠시라도 잠에서 깰라치면 책장을 몇 장 넘기고 다시 잠을 청한다.

요즘은 비디오다 컴퓨터다 해서 아이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놀이들이 참 많지만 내 어린 시절엔 마땅한 놀이를 찾기가 힘들었다. 집안에서 얌전히 동화책을 읽는 게 거의 놀이의 전부이다시피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아버지 역시 책을 좋아하셔서 나는 책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아버지는 곧잘 내게 그림책을 사다주시곤 했는데, 읽고 또 읽고 해서 너덜너덜해지기 일쑤였다.

나와 동생들은 책의 낱장을 모아 종이접기를 하고 딱지를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책은 우리 어린 시절의 놀이 친구가 돼준 것이다. 그런데 요즘 어린이들에게 책은 다른 이미지로 새겨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들 녀석이 책을 가까이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컴퓨터를 책장 속에 넣을 수 있는 특별한 책꽂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책 읽기도 '놀이'라고 열심히 가르쳤다. 무엇을 알아가는 과정이 즐거움이 돼야지 부담이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독서, 내 어린시절엔 '놀이'였는데...

나는 특별히 내 취향에 맞는 책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이것도 독서 스타일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도 누구와도 쉽게 친해지는 나의 성향에서 비롯된 것 같다.

물론 여러 책들 가운데서 문학 책을 가장 선호한다. 가장 구체적이고 부드럽게 내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가르쳐주는' 철학서와 역사서, 과학서들의 딱딱함보다는 간접적인 가르침을 주는 문학서적이 내게는 더 감미롭고 친숙하다.

가령 역사서를 읽는 것보다 역사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그 곳에 내가 함께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하는 것이다. 그런 간접체험은 다른 어느 것에 비교할 수 없는 문학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내게는 감동적인 책을 읽고 나면 잊혀지지 않는 고정된 영상이 하나 있다. 언젠가 아들 녀석과 함께 동물원에 간 적이 있는데, 그 때 사슴의 눈을 아주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나는 그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사슴의 눈빛이 얼마나 순수한 빛이었는지를.

흰색이 너무 희어 푸른빛을 띠는 것처럼 그 어린 사슴의 눈빛은 순수하다 못해 어떤 처절함까지 보여주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그간 그런 순수함을 잃어버린 줄도 모르며 지내온 것을 말이다. 늘 막연한 그리움 때문에 현실이 까닭 없이 쓸쓸해지던 기분의 정체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내가 모르는 세상에 대한 깊이들, 그런 사슴의 눈빛이 있을 세상의 부분들을 찾고 싶은 욕구들이 내 맘 깊은 곳에서 전율하던 그 정체를 알게 됐던 것이다. 사슴의 눈빛을 바라보는 것처럼 내가 감동하는 한 줄의 싯구, 한 문장 속의 어휘 하나 속에서 나는 그런 사슴의 눈빛을 찾아가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내게 결핍된 것들을 되찾기 위해 진정한 독서를 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지금, 여기'의 절박한 일상의 문제에 집착해 있는 내게 또 다른 세계를 볼 수 있게 안내해 주는 것은 '책 읽기'임을 확신하며 방에 흩어져 있는 책을 또다시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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