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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혁이의 어린이집 졸업식이 23일 화순군민회관에서 열렸습니다.
ⓒ 박미경
"아침마다 모여서 재미있게 지내던 사랑하는 어린이집을 떠나가게 되었네. 우리 우리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어깨동무 내 동무 잘 가거라 또 보자."

둘째 녀석 강혁이가 드디어 어린이집을 졸업했습니다. 강혁이가 다니는 화순 찬미어린이집은 23일 오전 11시 화순군민회관 소강당에서 졸업식을 열었습니다.

아침 8시 20분경, 아이들 깨워서 밥 먹이랴, 옷 입히랴, 출근 준비하랴 바쁜데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보통 8시 30분경에 막내 남혁이의 놀이방 선생님이 전화벨을 세 번 울려 집 앞으로 왔다는 신호를 보내기에 조금 일찍 도착했나 생각하며 아이를 챙기는데 전화벨은 세 번을 넘어 계속해서 울려댔습니다.

▲ 강혁이의 졸업을 축하하며 아빠랑 누나랑...
ⓒ 박미경
무슨 영문인가 싶어 수화기를 드니 강혁이의 담임선생님이십니다.

"어머니, 오늘 강혁이 졸업식인 거 아시죠?"
"네? 내일 아니예요?"
"아녜요, 오늘이에요. 그러잖아도 졸업식 하는 줄도 모르는 어머니들이 계셔서 전화드리는 거예요. 오늘 11시에 하니까 꼭 오셔야 해요."

참내, 아이들을 셋이나 낳고 키우다 보니 정신이 없긴 없나 봅니다. 분명 전날 강혁이가 가져온 편지를 보고 '23일 목요일'이라는 걸 확인해놓고도 느긋하게 금요일에 졸업식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선생님이 알려주신 덕에 회사에 출근했다가 시간에 맞춰 졸업식장으로 향했습니다. 물론 평생 한 번 있는 유치원 졸업식이니, 부랴부랴 일을 하고 있던 남편과 연락해 봄방학 중인 혜준이와 함께 졸업식장으로 갔습니다.

졸업식이 열리는 군민회관 앞에는 누군가가 예쁜 꽃다발을 팔고 있었습니다. "어린이집 졸업식인데 꽃은 무슨…"이라는 생각으로 갔던 저희는 안 되겠다 싶어 꽃을 한 다발 샀습니다. 부모마음에 다른 아이들이 다 가슴에 한 아름 꽃을 안고 있는데 내 아이만 그냥 둘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 1시간도 못되는 짧은 졸업식이 못내 지루해 아이들은 몸을 비틀었습니다.
ⓒ 박미경
졸업식장에는 원장선생님과 각 반의 선생님들, 올해 졸업하는 45명의 아이들과 부모 등 150여명이 참석해 작은 강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졸업식에서 김은영 원장님은 "그동안 어린이집을 믿고 아이들을 맡겨준 부모님들께 감사를 드리며 찬미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성인이 되어도 찬미를 졸업한 아이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말하셨습니다.

그런데 졸업식에서 재원생을 대표해 이의빈, 장민혁 두 친구가 어린이집을 떠나는 졸업생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전하는데 울컥 가슴이 메어오는 것은 왜인지….

두 친구가 송사를 통해 "어린이집에 처음 와 어색하고 힘들었는데 언니오빠들의 도움으로 의젓해질 수 있었다"며 "언니오빠들이 베풀어준 사랑을 다른 동생들에게 베풀겠다"고 말하고 졸업생들에게 찬미어린이집을 잊지말아달라고 하는데 가슴 한켠이 아려왔습니다. 마치 제가 졸업을 해서 떠나는 것처럼 말이죠.

▲ 아이들이 자라서 대학을 졸업할 때 쯤에나 다시 사각모를 쓰고 졸업식을 하겠지요?
ⓒ 박미경
아이들의 송사에 이어 졸업생들의 답사를 듣는데 괜히 슬퍼지면서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이날 졸업을 하는 친구들은 졸업생 대표를 따로 정하지 않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입을 모아 재원생들과 교사, 부모님께 어린이집을 떠나는 아쉬움을 표현했습니다.

"입학이 엊그제 같은데 오늘 졸업하게 됩니다. 그동안 보살펴주신 부모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동생들, 사랑합니다, 학교에 가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건강하게 생활하겠습니다."

이날 졸업생들은 "아침마다 모여서 재미있게 지내던…"으로 시작하는 졸업가를 부르며 생애 첫 졸업식을 마쳤습니다. 물론 졸업식을 마친 후에는 선생님과 혹은 친구들과의 사진촬영이 이어졌지요.

이날 졸업이 아쉬워 울거나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은 없었습니다. 졸업식을 지켜보며 콧등이 시큰거린 건 저뿐인 것 같아 얼른 눈물을 훔치고 졸업식장을 떠났습니다.

▲ 강혁이의 담임이신 이미미 선생님과 단짝친구 도환이랑 성진이입니다.
ⓒ 박미경
강혁이와 친구들이 졸업하는 모습을 보니 문득 3년 전 혜준이가 어린이집을 졸업하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엄마아빠들 모두가 참석하도록 하기 위해 저녁 무렵에 열린 졸업식에서 혜준이는 20여명의 친구들과 3년간의 어린이집 생활을 마쳤습니다.

졸업식이 진행되는 동안 혜준이의 담임선생님은 내내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우셨습니다. 처음엔 난생 처음 하는 졸업식에 들떠있던 아이들이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씩 둘씩 가만가만 눈물을 흘리더니 결국 모든 아이들이 엉엉 목 놓아 통곡을 하고 말았습니다.

졸업식을 지켜보던 엄마아빠들은 선생님과 아이들의 눈물에 눈시울이 붉어져야 했습니다. 저도 선생님과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가 불과 3년 전인데, 어쩌면 그 사이 아이들이 많이 자라버린건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졸업식을 마치는 아이들의 모습이 대견스럽기보다는 아쉬워지는 건 왜 일까요? 각박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만큼은 세상에 물들지 않고 순수함과 따뜻함을 간직했으면 좋겠는데.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이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 며칠 후면 이 아이들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졸업생이 아닌 신입생의 모습으로 서 있을 겁니다.
ⓒ 박미경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화순의 소식을 알리는 디지탈 화순뉴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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