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일요일 아침. 남편은 달력의 숫자를 손가락으로 꼭꼭 짚어가며 뭔가 혼잣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관심 없는 척 TV에 시선을 두고 있으면서도 제 신경은 온통 남편에게로 쏠리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먼저 아는 체를 하면 어떻게 반응을 해줘야 하나 싶어 서너 발짝 앞선 궁리에 짜릿함마저 느꼈습니다.

'복희엄마. 9일이 당신 생일이지?'
'어머, 그날이 내 생일이야? 난 모르고 있었는데. 고마워. 당신이 먼저 기억해줘서.'
'생일선물로 뭐 갖고 싶어?'
'선물은 뭐….'

가만. 선물은 뭘 사달라고 할까. 가방이나 하나 사달라고 할까. 아니야. 이제 봄이니까 점퍼나 하나 사달라고 할까. 북 치고 장구치고 저 혼자 신바람이 났습니다. 제 귀로만 들리던 심장소리가 온 집안을 뒤흔들 듯 아예 풍악을 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마침내 남편의 입이 움직였습니다.

"2월 달에는 바쁘겠는데. 일이 빼곡하게 잡혔어."
"그래?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다른 뭐 특별한 일은 없고?"

"특별한 일? 아. 또 깜빡할 뻔 했다. 복희 어린이집 재롱잔치가 있었지. 그날은 시간을 비워야겠네."
"재롱잔치? 그래. 그것도 특별한 일은 특별한 일이지. 또 다른 건 없어?"

잠깐 생각해보는 것 같더니 별다른 일이 없다는 듯 옷을 챙겨 입고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차 시동을 건 남편은 문단속 잘 하고 밥 꼭 챙겨 먹으라는 당부를 끝으로 부산출장길에 올랐습니다.

'잘 다녀오마'라고 흔들어대던 남편의 손이 시야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요란하게 울려대던 풍악도 멈추어 버렸습니다. 요동치던 심장은 아쉬움인지 서글픔인지 주체 못할 서운함으로 깊게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가 되어 버렸습니다.

오는 9일은 음력으로 1월 12일. 바로 제 생일입니다. 남편은 결혼 첫해, 그리고 그 이듬해 달랑 두 번 제 생일을 기억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의 생일 때도 남편의 축하는 거(?)하게 받았습니다. 제가 남편의 옆구리를 콕콕 찔러주었기 때문입니다.

아침마다 지갑 챙기러 한 번, 차 열쇠 챙기러 한 번, 다이어리 챙기러 또 한 번. 출근 전 서너 번씩은 현관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남편입니다. 일상생활에서도 그렇게 깜박증을 달고 사는 남편이니 마누라 생일 기억해주려니 하는 기대는 아예 접어 버린 지 오래입니다. 그나마 두 번이라도 기억해준 것이 오히려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생일을 그냥 지나치자니 뭔가 헛헛했습니다. 또 누구보다 남편의 축하를 받고 싶은 게 철없는 아내의 마음인지라 울며 겨자 먹기로 생각한 것이 바로 옆구리 찔러 절이라도 받는 것이었습니다.

작년까지는 그랬습니다. 달력에 커다랗게 동그라미 그려놓고 또박또박 적어 놓았습니다. '마누라 생일'이라고. 당연히 남편의 축하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마누라 생일을 잊어버리느냐며 바가지 박박 긁고, 토라지고, 급기야는 사랑이 식었느니 어쩌니 하면서 구구절절 읊어대는 감정의 낭비보다는 그렇게 옆구리라도 찔러 절 받는 게 오히려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지름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없는 사흘 동안 궁리를 했습니다. 올해는 어떤 방법으로 옆구리를 찔러주나 하고. 달력에 대문짝만하게 적는 '마누라 생일'은 지금껏 했으니 이젠 남편도 식상할 터. 뭔가 좀더 감동적인 방법이 없을까 온갖 지혜를 다 동원해봤습니다. 감동... 그랬습니다. 이왕이면 남편의 감성을 자극해 남편으로부터 좀더 뜨거운 축하를 받고 싶었습니다.

부산으로 출장을 갔던 남편이 어제 저녁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틀 밤을 꼬박 새고 집으로 들어선 남편의 모습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낮에 잠깐 눈을 붙이고 눈길을 달려 왔을 남편. 그럼에도 집으로 들어서는 얼굴은 환했습니다. 집이 뭐라고… 가족이 뭐라고….

남들 다 자는 그 시간에 남편은 전기선과 씨름을 했을 것입니다. 가족을 위한 일념하나로 남편은 그 시간 이 세상에서 제일 든든한 남편의 모습으로, 제일 든든한 아빠의 모습으로 밤을 새웠을 것입니다.

저녁을 먹고 일찌감치 자리에 누운 남편 곁에 바짝 다가앉았습니다.

"복희 아빠. 손 좀 내밀어봐."
"손은 왜?"

"손톱 깎아 주려고."
"손톱? 웬일이야? 손톱을 다 깎아 준다고 하고. 가만. 내게 뭐 부탁할 거 있지?"

"응. 내일 모레가 당신 마누라 생일이잖아. 그래도 내 생일엔 당신 축하가 제일 아니겠어?"
"……."

"복희 아빠! 생일선물은 뭐 해줄 건데?"
"……."

긴 손톱 사이로 까만 먼지가 잔뜩 끼어 있었습니다. 정성을 다해 손톱을 깎았습니다. 어찌나 손톱이 두꺼운지 손톱깎이를 쥔 손에 경련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열 개의 손가락과 열 개의 발가락을 다 깎고 나니 고개는 묵지근하고 어깨는 뻐근했습니다.

무슨 생각이 그리 깊은지 남편은 그때까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어 남편에게 시선을 건네니 세상에, 남편은 이미 잠이 든지 한참이나 된 듯했습니다.

'뭐야. 언제 잠이 든 거야. 이 사람 혹시 내가 하는 말 하나도 못 들은 거 아니야?'

순간. 아주 잠깐 서운한 생각이 드는 것 같더니 그뿐이었습니다. 잠든 남편의 얼굴이 제 시선을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삶의 노곤함이 감긴 두 눈 위로, 야윈 두 볼로 무겁게 내려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도 한때는 탱탱하던 피부마저 언제 이렇게 메말라버렸는지 바스락거리며 부서질 듯했습니다.

모진 세상살이,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남편은 날마다 치열한 삶의 전쟁을 치를 것입니다. 자기 한 몸 부서지는지도 모르고 오로지 내 가족에게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주려 남편은 날마다 세상풍파와 맞설 것입니다. 그럼에도 남편에게 진심으로 고맙단 말 한마디 살갑게 전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투정부리고 응석부리기 바빴습니다.

그깟 생일이 뭐라고. 행여나 기억해 주려나 하던 기대감에 속절 없이 서운했던 일요일 아침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늦은 밤. 문단속은 잘 했는지 저녁밥은 먹었는지 지친 목소리로 물어올 때 좀 더 따뜻함을 담아 대꾸해 주지 못했던 제 자신이 미웠습니다. 눈길을 헤치고 돌아올 남편에게 먼 길 조심해서 오라는 그 한마디에 좀더 살가움을 실어 보내지 못했던 제 자신의 어리석음에 진저리가 쳐졌습니다.

남편의 거친 손에 로션을 발라 문지르고 또 문질렀습니다. 미안해서 문지르고 고마워서 문지르고… 굵어져 버린 손 마디마디, 단단하게 굳은 살 박힌 갈퀴 같은 손이 제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었습니다. 울컥 서러워지는 가슴 한켠이 데일 듯 뜨거워졌습니다. 속절 없는 미안함이 끝내는 눈물방울이 되어 떨어졌습니다.

손등을 적시는 철 없는 아내의 눈물에 남편이 몸을 뒤척였습니다. 서운함도 야속함도 한순간 부질 없어지던 그 순간. 남편의 코고는 소리가 어느새 기분 좋은 음악소리로 들렸습니다. 깊은 밤. 철 없는 아내는 그 밤처럼 깊어지고 있는 부부의 정에 애달픈 눈물을 훔쳐내느라 좀체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