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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한 친구로부터 새해 선물을 받았다. 힘찬 새 출발을 바라는 마음을 담은 카드와 함께 보내온 책 한 권. 미국 목사인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이다.

그동안 베스트셀러를 의도적으로 기피해온 나지만, 이 책의 위력을 여기저기서 보아왔다며 가정백서로 꼭 지녔으면 한다는 친구의 바람을 무시할 수 없어 고마운 마음가짐으로 책장을 넘겼다.

▲ <긍정의 힘> 표지
ⓒ 두란노
하지만 성직자들이 지은 책을 미더워하지 못하는 체질(?)에다 제목을 보아하니 희망 일변도의 내용일 거라는 선입견이 더해져 넉넉한 행간과 시원한 활자에도 불구하고 책장이 쉽게 넘어가질 않았다. 그래도 저자의 순수한 동기를 믿고 친구의 정성을 감안해 불편한 심사를 누그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인간이란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을 본다.' 니체의 말로 기억된다. 그렇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신임하고 의지하는 인간은 나약하기 그지없는 눈을 가졌다. 그 눈은 주관성이란 시선으로 고정되어 있고 그 불완전한 시선은 타인에게 위협을 가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무기와도 같다.

하지만 주관과 객관이 뒤바뀔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무시해서는 안 될 터이다. 지금의 주관이 10년 뒤의 객관이 될 수도 있다는 가정 말이다. 주류라고 하는 게 반드시 옳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뜻일 것이다.

'긍정의 힘'을 못 믿는 3가지 이유

그 덕분에 나는 아버지보다 훨씬 좋은 조건에서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먼저 이 책의 저자는 재산(교회) 세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 누구에게나 출발점이 같아야 할 인생 경주를 더욱 불평등하게 만드는 발언을 너무도 가볍게 하고 있는 것. 요즘 재계는 물론이거니와 교계에서조차 세습이 문제시되고 있는 상황을 떠올리노라면 '아버지에 이어 더 큰 교회로 확장시킨 아들 목사'인 저자의 이런 발언에 도무지 수긍이 가질 않는다.

지금 나와 내 형제자매들, 우리 아이들은 단 한 사람의 믿음 덕분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충만하게 경험하고 있다. 나는 이 복이 나의 손자, 손자의 손자까지 이어지리라 확신한다.

하나님의 복을 '세습'하는 이러한 모습은 저자의 자질 문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저자는 마치 새해 인사말로 '희망 정치' 운운하는 미덥지 못한 일단의 정치인들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들이 쉽사리 내뱉는 '희망'은 다분히 모호하고 관념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는 삶의 가장 어두운 막장에서 허우적대는 이들을 철저히 소외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과연 이 책을 통해 비전을 품고 삶을 긍정하게 될 수 있을지 회의가 든다.

하나님이 우리 삶에 개입하여 상사를 내보내고 그 자리를 우리에게 주실지 모른다. 어쩌면 회사를 통째로 우리에게 주실지 모른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한 선물을 창고에 가득 쌓아 놓고 계심을 믿으라'고 한다. 희망과 비전이란 게 고작 남을 짓밟고 그 자리에 올라서는 이런 탐욕스러움이라면 어느 누가 수긍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삶의 치열한 현장과 분리된 이들만이 '긍정의 힘'의 수혜자란 말인가.

마지막으로 이 책은 교계뿐만 아니라 종합 부문에서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게 된 원인이 '서구에 대한 무의식적인 동경'일 거라는 의심을 부른다.

소위 '삼중축복'을 모토로 내건 국내 한 목사는 훨씬 앞서 이 책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내용의 책을 많이 출판했다. 오히려 그의 목소리가 더 깊고 날카롭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미국 목사의 책에 유난히 열광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미국에 대한 긍정이 한몫 한 것 아닌가 싶다. 사대주의로 꼬집기는 뭐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낯선 미국에 대한 흠모가 자리한 게 아닌가 말이다.

옳은 말보다 좋은 말이 사람을 살린다고들 한다. 특히 새해에는 좋은 말로 뒤범벅이 되어 기분은 좋다. 하지만 삶을 긍정할 수 있는 힘으로는 작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철저한 현실 인식의 부재 때문이리라.

긍정의 힘 - 믿는 대로 된다

조엘 오스틴 지음, 정성묵 옮김, 두란노(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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