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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13일 한나라당은 사학법 개정안 처리에 반발하며 장외투쟁에 나섰다. 명동 장외투쟁에서 박 대표는 "열린우리당이 처리한 개정 사학법이 전교조에게 우리 교육을 넘겨주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사립학교법 개정 무효화 투쟁'에 앞장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결기가 예사롭지 않다. 한나라당은 3일 신임 국무위원 인사청문회에 불참한다는 방침을 공식 확정했으며 박 대표도 이날 "사학법 투쟁이 장기화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럴 만도 하다. 정부여당이 '대연정'을 내세워 구애하던 때가 지난 여름인데, 찬바람이 좀 분다고 이제 와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제1야당을 배제한 채 사립학교법 개정 법률안과 예산안을 단독 처리했으니 화날 만도 하다.

타협의 기회가 없지는 않았다. 지난 28일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는 연말 정가를 강타한 장외투쟁 정국의 분수령이었다. 그러나 이날 이후 '원내외 병행투쟁론'은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박 대표의 예상외로 강경한 발언과 그 눈가에 맺힌 눈물 때문이었다.

이날 박 대표는 어머니(육영수 여사)의 죽음까지 거론하며 이념의 스펙트럼과 감성에 호소했다. 박 대표는 그렇게 해서 '사학법 개정 무효화 투쟁'의 대상으로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를 꼽았다. 그 이후 전개된 양상은 한마디로 말해, 전교조 '한 놈만 패자'는 전략이다.

이런 조짐은 이미 지난 12월 16일 저녁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한나라당 주최 '사학법 개정 무효화 촛불 집회'에서부터 드러났다. 이날 박 대표의 문답식 연설의 핵심은 "전교조 집단에게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박 대표는 3일 출입기자들과의 오찬에서도 "냉전시대가 끝났는데 전교조가 이념 교육을 시키는 이유를 내 머리로는 이해를 못한다"고 말했다. '이념 전쟁'은 전교조가 먼저 시작했다는 진단이다.

핵심 키워드 "전교조에게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

▲ 지난해 12월 16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사학법 강행처리 무효 대규모 장외집회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의원들이 사학법 반대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나라당의 전략은 사학법 파동의 초점이 사학비리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교조의 '사학 접수' 문제에 있음을 부각시키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학법 개정 무효화 투쟁'에서 종교계와 '재야 보수세력'과의 전략적 제휴나 동맹관계를 맺어 전선(戰線)을 확대하려는 것이다.

이미 보수우익의 이론가들과 인터넷매체는 이를 '현대판 십자군 전쟁'이라고 부르며 사기를 북돋우고 있다. 이들의 표현대로 사학법 투쟁이 '현대판 십자군 전쟁'이라면, 박 대표는 스스로를 '악의 무리'들로부터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 잔 다르크의 이미지로 투영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 대표는 그래서 이 추운 겨울에 광야에 서서 이렇게 외친다.

"국가보안법이 이 나라의 체제를 지키는 것이라면 사학법은 이 나라 아이들을 지키고 우리의 미래를 지키는 법이었다."

교조주의적인 박 대표에게 전교조는 '악의 무리'이자 종래는 '빨갱이'로 치환된다. 박 대표는 지난 30일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린 글에서 "지금 이 정권이 진행하는 일들의 최종 끝은 어디인지 모르겠다"며 "아마 이 정권이 원하는 최고의 개혁은 국가보안법의 폐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학법 수호가 박 대표의 마음속에 그려진 국가보안법 수호의 '마지노선'임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박 대표와 한나라당에게 전교조는 마치 불구대천(不俱戴天)의 공포스런 존재로 각인된 듯하다. 보수우익의 대표적 이론가인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에 따르면, '조직폭력배를 방불케 하는 조직력'을 갖춘 이 9만여명의 전교조 교사들은 각급학교의 교단뿐만 아니라 각급 학교운영위원회마저 좌지우지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전국의 각급 학교운영위원회는 대부분 거의 전교조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운영위원회의 다른 위원들은 상식의 차원에서 현안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데 반해 전교조 출신 위원들은 중앙으로부터의 일사불란한 조직적 지원과 통제 아래 '혁명투사'적인 집념을 가지고 집요하게 특정 목표를 관철시키는 데 집착하기 때문이다."

다른 운영위원들은 '쪽수'는 많지만 상식의 차원에서 접근하는데 반해 전교조 출신 위원들은 전체의 1/4밖에 안되지만 중앙(전교조)로부터 조직적 지원과 통제를 받기에 결국은 학교운영위가 '혁명투사'적인 집념을 가진 이들에 의해 장악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구데기가 무서워 장을 담글 수 없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전술전략, '대동단결해 전교조 한놈만 패자'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들은 그 구체적인 사례로 지난 11월 부산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논란이 된 이른바 'APEC 바로 알기 공동수업 자료'와 각종 '계기교육' 교재들을 거론한다. 이들은 이를 근거로 전교조의 이념적 편가르기에 학교와 교육이 무너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한나라당은 이런 진단을 근거로 "날치기 사학법에는 사학을 사실상 장악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주장한다.

"학교운영위원회에 전교조는 조직적으로 침투하고 있다. 전교조 교사들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상 학운위원의 40%까지 차지할 수 있습니다. 전교조에 의해 장악된 학운위는 전교조 교사 또는 친전교조 인사를 재단이사로 추천하게 되고, 재단이사회는 전교조에 의해 사실상 장악됩니다. … 사학은 건학이념을 토대로 설립되었으나 전혀 이질적인 인사가 이사로 들어오면 사실상 사학은 건학이념을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한나라당 특별당보)

한나라당을 지원하는 원군(援軍)은 전교조에 대한 불신 여론이다.

지난 12월 사회단체 신뢰도를 조사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교조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신뢰층이 70.9%로 '신뢰한다'는 신뢰층(22.5%)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지지정당별로는 한나라당 지지층에서 비신뢰 응답이 특히 높았지만,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지지층에서도 '비신뢰층'이 '신뢰층'보다 2배 정도 높았다.

참고로 같은 조사에서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에 대해서는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65.3%, '신뢰한다'는 응답이 24.6%로 나타났다. '참교육'을 표방하는 교원단체에 대한 신뢰지수가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이익단체인 전경련보다도 더 낮게 나타난 것이다.

전교조에 대한 불신은 최근 전교조의 교원평가제 반대에 대한 국민들의 완강한 비판여론이 크게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어쨌건 바로 이런 여론지형이 '종교계 및 재야 보수세력과 대동단결해 전교조, 한놈만 패자'는 한나라당의 전술전략을 뒷받침하는 셈이다.

사회적 불신의 '약한 고리'를 치는 전술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학에 대한 불신은 누적되고 해묵은 것

우선 다소 낮은 수준이긴 하지만 사학법 관련 여론조사에서 개정 반대 입장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일부 조사에서는 찬반 여론이 오차범위 내까지 근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여론의 반전 기미는 다시 박 대표의 강경기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히 시종일관 강경한 자세로 장외투쟁을 진두지휘한 박 대표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대권 주자의 이미지를 새기고 당 장악력도 높였다는 평가이다. 실제 연말 장외투쟁 기간에 조사된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박 대표가 이명박 서울시장을 누르고 대선후보 선호도 1위를 탈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 대표는 또한 장외투쟁 과정에서 한나라당의 구심력을 탄탄하게 다졌다는 평가를 당 안팎에서 받았다. "박 대표가 사학법 투쟁을 잘하고 있다"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칭찬'이 그 예이다. 또한 박 대표는 장외투쟁의 와중에 종교계 등 전통적 지지세력의 결집이라는 '보너스'도 두둑히 확보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전교조에 대한 불신 못지 않게 사학에 대한 불신 여론 또한 크다는 점이다. 요컨대 박 대표와 한나라당이 사학법 장외투쟁을 통해 '고정표'를 다지고 굳히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집권을 위한 외연을 넓히는 데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사학에 대한 불신은 사학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누적되고 해묵은 것이다. 그것은 공·사립을 막론하고 '입시지옥'을 통과해온 세대라면 누구나 한번은 가슴에 품었을 학교 불신의 공감대에 기초한다.

굳이 여론조사 결과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상식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대다수 국민들은 '개정 사학법이 사학재단들의 사유재산을 침해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또 '상식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국민이라면 '개정 사학법이 종교사학의 건학이념을 훼손한다'는 주장에도 대개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땅의 학생들은 이렇게 되묻지 않을까 싶다. "박 대표님, 도대체 우리나라에서 '대학입시' 말고 다른 건학이념을 가진 학교가 있긴 있나요?"

도대체 '대학입시' 말고 다른 건학이념을 가진 학교가 있긴 있나?

▲ 지난해 12월 23일 오전 국회 의장실에서 농성중이던 박근혜 대표와 강재섭 원내대표 등 한나라당 의원들이 해산에 앞서 사학법 무효와 김원기 의장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래서 지난 89년 이 땅의 암울한 교육현실을 조금이나마 개선하기 위해 민족·민주·인간화교육의 기치를 내건 교원단체가 바로 전교조가 아니던가. 그 초심이 '이익단체'로 변질되었다면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렇지만 '개방형 이사제는 전교조가 주장한 것'이라는 맹목성과, '사학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의도성만으로 전교조를 '빨갱이 집단'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영락없는 '마녀사냥'이다.

그리고 전교조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일정한 대표성을 가진 세력이다. 전교조의 '민족·민주·인간화교육 세례'를 받으며 9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닌 학생들은 이미 사회 각분야에 진출해 있다. 한나라당의 입장에서 보면 전교조에 '감화'받은 이들은 대개 '우리표'가 아니다.

그런데 이처럼 이미 16년 전부터 우리의 생활에 '침투'해 있는 전교조의 '실체'를 마치 새롭게 발견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부터가 생뚱맞은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박 대표와 한나라당은 사학법 개정안이 상정된 지난 1년 동안 사학법 개정이 이뤄지면 학원이 전교조에 의해 장악되어 좌경의식화의 정치마당이 될 것이라고 학부모를 설득해 동의를 구하는 데 실패했다. 아니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강행처리를 문제삼아 사학법 투쟁에 '올인'하는 것은 수권야당의 대표로서 무책임한 처신이다.

그래서 "사악한 전교조 집단로부터 선량한 우리 아이들을 구출하자"고 외치는 '현대판 십자군 전쟁'은 공허하고 시대착오적이다. 오히려 "전교조 집단에게 우리 한나라당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고 고치는 것이 더 솔직하고 호소력 있는 투쟁구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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