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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뉴스게릴라를 찾아서'란 코너를 통해 본격적으로 시민기자분들을 찾아 나섭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따뜻한 이야기에서부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 특별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까지 기사로 만들어 훈훈함을 전해주는 시민기자들. 그리고 자신만의 분야를 개척해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발휘하는 시민기자들까지. <오마이뉴스>는 '뉴스게릴라를 찾아서'를 통해 오늘의 <오마이뉴스>를 만들어낸 주역인 시민기자에 대한 궁금증을 후련하게 풀어드릴 예정입니다. 우선 꾸준한 활동으로 그동안 써왔던 기사들을 모아 책으로 엮어 낸 시민기자분들을 차례로 만나봅니다. <편집자 주> <편집자주>
혹시 '기자이몽이도' 또는 '이도자완'이란 말을 들어보았는지? 평소 차(茶)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아마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럼 '막사발'이란 말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고 대략적인 모양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 막사발이 막사발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신한균 기자는 사기장(도공의 바른 표현)으로 경남 양산 통도사 부근에서 작도 활동을 하며 그동안 기사를 통해 우리 도자기에 묻어 있는 일본 잔재를 걷어내고 바로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에게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우리 사발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자.

▲ 경남 통도사 근처의 위치한 가마 앞에서 - 신한균 기자는 우리 옛그릇 이름 되찾기 운동을 하고 있다.
ⓒ 심은식
일본의 기만적인 미학이론에서 벗어나야

아는 이들도 많겠지만 신씨의 아버지는 우리 전통의 조선 사발을 최초로 재현해 낸 도예가 신정희씨이다. 부친의 명성과 그늘에 대한 부담도 있었지만, 신 기자는 "아버지의 일과는 달리, 자신이 숙명적으로 해야 할 분야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 사발의 올바른 미의식과 가치를 찾고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었다.

"흔히 우리 전통사발에 대해 '막사발은 의도하지 않은 무작위의 멋이 흐른다'는 식으로 표현이 이루어지지만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우선 사발의 정체성이 그렇다. 그는 막사발이라는 호칭을 쓰는 것은 일본 학자들의 미의식을 상대적으로 높게 인정하는 자기비하적인 일이라고 지적한다.

▲ <우리 사발 이야기> 표지.
ⓒ 가야넷
'자기 조상들이 빚은 사발, 그 사발의 역사와 미학도 모르면서 그냥 사발을 빚어오는 한국의 도예가들…. 사발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간파하지 못하는 너희들이 만든 지금의 찻사발은 너희들 말처럼 찻사발이 아니고 막사발이다.'

신 기자는 그들의 이런 비아냥을 견딜 수 없었다.

"사발의 형태들을 보면 이 사발들이 절대 막사발로 쓰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 일본에서 높이 평가받는 조선 사발들의 경우 조상에게 제를 올릴 때 쓰던 멧사발로 추정됩니다. 조상 앞에 내어 놓는 그릇이 함부로 만든 그릇일 리 없습니다."

또한 우리사발의 이름이며 미학적 가치를 일본전문가의 눈을 통해 감정하려 하고 사발의 생산지 또한 그들의 기준으로 구분하는 일이 이제는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발들이 아무 생각없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도자기를 만드는 것은 흙의 성질을 잘 아는 고도로 계산된 능력입니다. 또한 우리의 예술전통은 정형화보다 정형에 자연미를 더하는 것이며 이는 자유혼, 자연을 담은 개성미를 추구하는 사찰의 기둥 하나만 보아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발을 조금 안다는 사람조차 일본의 대표적 미학자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말한 '무작위의 맛'을 자랑스레 읊어대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우리의 철학과 미학을, 그리고 우리의 이름으로 불러주어야 합니다. 이제 '이도자완'이 아니라 '진주멧사발'이라고 불러야 옳지 않겠습니까?"

▲ 초벌구이를 기다리는 잔을 든 신한균 기자의 손
ⓒ 심은식
도자기를 연구하는 사학자 한 분이 '이조백자에서 조선백자로 바꾸는데 20년 가까이 걸렸다'고 말했듯, 신 기자의 바람이 이루어지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차츰 그의 의견에 공감하는 학자나 도예 전공자들, 누리꾼들의 성원이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올바른 차 문화를 만들어가야

그는 올바른 차 문화가 자리 잡는 일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좋은 사발이 있다면, 그 사발로 차를 마시고 좋은 항아리가 있다면 꽃을 꽂으라는 뜻.

▲ 실생활에서의 쓰임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신한균 기자는 좋은 사발이 있으면 차를 마시고 좋은 항아리가 있으면 꽃을 꽃으라고 말한다.
ⓒ 심은식
"쓰고 활용할 때 생기는 가치가 있습니다. 감상만 하는 박제된 예술은 돈이나 다름없습니다. 사람들이 사발에 투영하고 있는 잘못된 가치를 벗기고 싶습니다. 그릇은 그릇일 뿐입니다. 뿐이라는 표현이 절대 비하하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 안에 더 큰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한편 그는 최근 우리 사발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생기는 또 하나의 문제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바로 도굴된 부장품이 시중에 유통되는 것이다. 북한에서 도굴된 이런 사발들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팔리고 있다.

"무덤에서 나온 것을 차를 마시는 사발로 쓰면 안 됩니다. 다도정신에 크게 위배되는 것입니다. 어설프게 알기 때문에 이런 그릇되고 무서운 일이 벌어집니다."

통탄할 일은 일본인들이 조선 사람들이 무덤 파는데 선수라 비아냥거리면서도 그 사발들을 산다는 것이다.

신 기자는 우리 사발의 역사와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미학적이고 철학적인 요소를 되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임진왜란 때 패배해 지금도 일본 식민사관에 중독된 상태나 다름 없다고 말한다. 그것이 그가 오늘도 우리 옛 그릇의 이름을 찾고자 애쓰는 까닭이다.

신한균 기자는 누구?

우리 전통의 조선 사발을 최초로 재현해 낸 도예가 신정희 옹의 장남으로서 1960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났으며, 연세대 경영 대학원을 졸업.

1989년에 일본 동경 동급 미술화랑에서 도예 개인전을 열었고, 1993년에 한국 공예 대전에서 동상을 수상했다. 1996년에 회령 유약을 국내 최초로 재현했으며, 2001년에는 일본 NHK에서 신한균 작도 과정을 일본 전역에 생중계했다.

현재 경남 양산 통도사 부근에서 작도 활동을 하면서 우리 도자기에 묻어 있는 일본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우리 옛그릇 이름 되찾기 운동'을 하고 있으며, 일본학자가 왜곡한 우리 도자사와 미학자들이 왜곡한 도자기의 본질을 바로잡기 위해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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