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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낳으시고 길러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 장옥순
12월 17일 오전 9시 30분. 눈길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동네 어르신들이 산골분교에 나오셨습니다. 우리 분교에 손자와 손녀를 보내고 계신 학부모님들입니다. 가정 사정으로 아들 대신, 딸 대신 손자들을 돌보아 주시는 고마운 분들입니다.

이날 열리는 '생일잔치 작은 음악회'를 앞두고 며칠째 눈이 와 등교하는 아이들도 출퇴근하는 선생님들도 힘들었지만, 모두 한마음이 되어 행사를 위해 날마다 가꾼 실력을 뽐내느라 바빴습니다.

유치원 학부모님들은 음식을 준비했고, 유치원 동생들의 단체 생일잔치에 초대된 초등학생들은 그 동안 갈고 닦은 솜씨를 보여주며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1년 내내 생활 터전에서 바쁘신 학부모님들을 한 자리에 모실 수 있는 때는 한겨울뿐입니다.

이렇게 산골분교에 아이들을 보내도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실 수 있다는 안도감을 드리고 싶은 마음에 분교만의 음악회를 준비했습니다. 우리 분교 아이들이 일년 동안 타온 전국대회와 군 교육청 상장도 자랑하고 달라지는 학교 모습도 공개하며 학습부진 어린이가 한 명도 없게 철저한 개인지도로 학업성취도도 높다는 것을 학부모님들도 잘 아십니다.

생활비를 아껴 바이올린 수강료를 대주시는 학부모님들은 아이들의 연주 모습을 처음 보시고 참 흐뭇해 하셨습니다. 일찍부터 음악을 접하면 머리도 좋아지고 감성도 발달하며 좀더 아름다운 세계에 눈을 뜬다는 것쯤은 시골 학부모님들도 잘 아십니다. 오히려 졸업을 앞둔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안타까워하십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평생 동안 갖기 어려울 것 같다면서….

타이틀을 꾸며온 정태훈 선생님, 바이올린과 핸드벨, 합창을 지도해 준 임명희 선생님, 사물놀이를 지도해 온 김점쇠 선생님,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안내장을 만들며 2005년 학교 실적 브리핑 자료를 만드는 나를 비롯해서 주변 정리를 맡은 이재춘 주사님까지 한마음이 되어서 이 날 행사를 치렀습니다.

모든 학부모님이 한 분도 빠짐없이 다 나오셔서 함께 즐거워하고 축하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음식을 나누며 행복을 만끽했습니다. 날마다 퍼붓던 눈마저도 오전 시간만은 잠잠히 자리를 내주어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1부 행사 가운데 유치원생 전체 8명의 합동 생일잔치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생일 축하보다 더 중요한 의식인 큰절을 올리는 대목은 숙연하기까지 했습니다. 자식들 대신 손자, 손녀를 길러 오신 할머니께 "고맙습니다" 하고 안기는 손자를 껴안는 할머니의 눈가에 스치는 눈물의 의미를 모두들 참 잘 아는 까닭입니다.

나이 드신 할머님들이 결손 가정의 울타리를 대신하며 남몰래 흘렸을 그 아픔의 시간이 손자들의 감사 인사를 받으며 한순간이나마 뿌듯한 보람을 찾으셨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 동생들아, 축하해
ⓒ 장옥순
2부 행사는 초등학교 선배들이 마련한 작은 음악회 공연으로 분위기를 한껏 띄웠습니다. 전교생이 함께 한 바이올린 연주와 합창, 에어로빅, 그리고 '강아지 똥' 동극, 신나는 춤과 노래, 마술쇼, 유치원 장기자랑, 엄마들의 노래 등 모두 15종목이 출연하여 산골분교에는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본교에서도 교장 선생님이 축하해 주시기 위해 아이들 선물을 한 아름 안고 오셔서 더욱 즐거웠습니다.

3부는 전교생과 학부모님, 선생님들이 함께 어우러져 즐거운 음식 잔치로 마무리했습니다.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하고 난 학부모님들은 이구동성으로, "선생님들께서 참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내년에도 이렇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세요. 바이올린도 지금처럼 계속해서 전교생이 배울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신신당부를 하셨습니다. 금년에 계신 선생님들이 만기가 되어 모두 함께 자리를 비우게 되어 걱정하시는 학부모님들을 다독이며 안심시켰습니다.

▲ 교장 선생님도 축하의 선물을!
ⓒ 장옥순
우리 연곡분교는 늘 이렇게 한마음 공동체가 되어 유치원 교육과 초등학교 교육 활동을 연계하여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선배들은 후배들을 아끼고 돌보며, 후배들은 선배들을 따르고 좋은 전통과 학풍을 이어 왔습니다. 선배들은 즐겨 베풀고 후배들은 선배들에게 배우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전해져 온 것입니다.

며칠 동안 우리 연곡분교 아이들을 설레게 했던 "생일잔치 작은 음악회"의 여운이 학교의 구석구석에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함께 한 추억의 시간만큼만 그리움이 쌓인다는 어린 공주 '모모'의 속삭임이 들려옵니다. 금년 한해의 행사를 마치고 차분히 겨울방학을 준비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느 때보다 차분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벌써 지나온 시간을 되새겨보며 2006학년도를 꿈꿉니다.

▲ 우리는 한마음 공동체
ⓒ 장옥순

덧붙이는 글 | 눈이 쌓인 교정을 배경으로 전체 학부모님과 전교생이 한 자리에 모여서 생일의 의미를 되새김해 보고 아름다운 음악과 춤과 장기자랑, 음식을 함께 나눈 '작은 음악회'의 행복한 모습이 이 글을 쓰며 되살아납니다. 

*<한교닷컴> <웹진에세이>에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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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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