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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 표지
ⓒ 이레출판사
80년 초부터 그림을 발표하기 시작하여 지난 8월에 25번째 개인전을 연 화가 황주리, 그는 우리에게 인간 내면세계와 그 속에 담긴 상황을 도시적 상상력으로 그리는 신구상 계열 화가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90년 초부터 올해까지 세 권의 두꺼운 산문집과 번역집을 낸 저자이기도 하다.

황주리는 '세월전(The Years)' 전시회를 계기로 세 번째 산문집 <세월>은 냈는데 그 이전의 산문집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지만 삶에 대한 여백과 여유는 훨씬 넓어진 듯하다. 세월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인지 그의 뾰족한 화살촉도 조금은 무뎌졌고 삶의 창조적 긴장과 영감을 주던 고독도 이제는 체질화된 듯 마냥 즐거워하는 표정이다.

씹을수록 맛이 나고

그의 글은 처음에 읽을 때는 별로 눈에 띄지 않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그 맛이 난다. 우리가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여러 번 봐야 알 수 있듯이 그의 산문은 여러 번 읽어야 한다. 그의 글은 그림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고해성사 하듯 토로하고 있지만 독자들이 접근하기가 용이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황주리는 서울 태생이라 그런지 상당히 도시적이다. 그는 최근 귀국하기는 했지만 가수 한대수처럼 서울보다는 뉴욕이 더 체질에 맞는 화가인지 모른다. 최근까지도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그는 50개국 사람들이 사는 뉴욕에서 흔치 않은 세계 시민으로 살았다. 그의 심화된 문명 비판적 관점은 이런 체험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차갑고 날카로운 지성과 솔직하고 따뜻한 감성을 동시에 지녔다. 이런 경우는 드문 예인데 그래서 각별해 보인다. 글과 그림을 겸한다는 면에서 천경자 화백을 많이 닮았지만 도시적 감각과 날카로운 위트가 넘친다는 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그의 글은 도대체 갈피를 잡을 수 없다가도 끝부분에 가서는 분명하게 딱 부러지는 결론으로 귀착한다.

그의 그림에서 꼭 빠지지 않는 아이콘은 '눈 그림'이다. 화가는 우선 많이 보아야 한다. 그 원칙에 충실하고 있다. 그래서 21세기 신인류인 유목민(노마드)의 전형을 몸소 보이고 있다. 그는 전 세계 구석구석 아프리카까지 다니지 않은 곳이 없다. 그가 본 풍경의 용량은 보통 사람의 몇 십 배, 몇 백 배가 될 것이다. 이런 일체의 풍경이 그림처럼 글에 고스란히 담긴다.

▲ <날씨가 너무 좋아요> 표지
ⓒ 생각의 나무
그는 풍경에 대한 욕심을 <날씨가 너무 좋아요>에서 이렇게 군더더기 없는 말로 잘 요약하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서 놓아두고 떠나기 가장 아쉬운 것은 돈도 집도 자동차가 아니 창밖에 풍경일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살아 있는 동안 그 풍경들을 바라보는 여행의 축제를 꿈꾼다."

그림의 원천은 아버지

심리학자들은 아버지가 딸에게 주는 영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고 하는데 화가 황주리에게도 예외가 아닌가 보다. 그의 부친은 황주리 그림의 원천처럼 보인다. 그는 황주리의 수호천사이자 영원한 연인 같다. 개방적인 아버지의 피를 받은 황주리는 옆에 누가 있으면 불편해 하고 오히려 혼자 있음을 즐기는 작가인지 모른다.

그의 부친은 출판사와 여러 개 잡지를 운영했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를 "가까이 갈수록 더 멀어지는 아주 잘생긴 고독한 남자, 결코 타협할 줄 모르고 그 꼿꼿한 성격 탓에 늘 외로운 남자"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 짧은 문장 속에 그 아버지의 인상을 연상할 수 있다. 그 그림의 최초 오브제가 원고지인 것은 쉽게 짐작이 간다.

그의 글쓰기는 결혼을 대신한 것 같다. 그만큼 잠시 시간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예술가의 존재 이유를 확인해 가는 처절한 처방이었을 것이다. 또 다른 자신과 독자와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거는 것이다. 자신은 이 사실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글을 쓰는 일은 이 세상과 나 자신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작가에게 사회에서 강요하는 제도가 무거운 짐으로 느껴진 모양이다. "독신이든 결혼이든 현실이든 환상이든 중요한 것은 행복이다 […] 죽을 때까지 우리는 사랑과 행복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문맹자들"이란 짧은 말에서 그의 일면을 읽을 수 있다. 그에게 행복이란 빵을 써는 것이고 책을 한권 사는 것이고 편지 한 통을 우체통에 넣는 것이다.

이렇게 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의례적인 형식이 아니라 실질적인 행복이다. 독신주의적 스타일이 그가 젊은 시절에는 그 운신이 폭이 좁았으리라. 그러나 그는 그런 사회적 통념에 타협하지 않고 개의치 않았다. 지금은 이런 여성의 독립적이고 독자적 삶이 흔해졌고 여성적 선택권이 확립되어 가고 있으니 그는 한 시대의 앞서 산 셈이다.

예술가의 몫

▲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 자유문학사
허나 저자는 예술가 역할에서는 철저하다.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에서 작가는 "예술가로서 나의 몫을 조금은 알 듯도 하다. 이기고 지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는 정치, 경제, 사회의 현실에 대항하는 마음의 법을 만드는 일, 채플린 영화 속의 인간애 가득한 그 표정과 몸짓처럼 이 부조리한 세계를 향한 평화 선언이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이렇게 덧붙인다. "화가가 되는 일은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고 그 화려한 이름으로 신문 속의 활자로 빛내는 일이 아니다. 더구나 비싼 그림 값을 뽐내며 재물을 축적하는 일은 더욱 아닐 것이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꿈꾸는 몽상가여야 한다. 동시에 그는 열심히 삽으로 흙을 파는 노동자여야 한다."

그의 수필은 자신의 그로테스크한 그림처럼 브레히트 풍의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움을 주기도 한다. 황주리가 본 풍경에서 뿜어내는 상상화는 우리의 틀에 박힌 상식과 통념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그의 독특한 발상법과 엉뚱한 상상력에 독자들은 그만 나자빠진다. 그 말대로 우리 머리는 359도로 돌고 5만5천배 맛있는 김치 같은 글을 맛보게 된다.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은 세대' 이런 표현은 가장 황주리다운 표현이다. 통신의 최첨단 시대의 진정한 마음의 소통은 불가능해 보인다는 뜻이 아닌가! '사랑하지 않고 사랑받지 않아도 쾌적하리라' 이 얼마나 자신감에 넘치는 말인가. 이 또한 기존의 글쓰기를 뒤집는 그만의 위트이자 역설인가.

그는 이 세상에 다 좋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는 것이 삶의 등식이다. 결혼을 하면 권태를 얻게 되고 결혼을 하지 않으면 위험을 택한 것이라는 발상은 참신하기까지 하다. 사랑을 얻으면 자유를 잃게 되고 자유를 얻으면 사랑을 잃을 수 있다는 말인데 이것을 보면 그가 삶의 표면만 보지 않고 이면을 들여다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표현들이 드러난 <사랑에 할 때 버리기 아까운 것들>에 대한 영화평은 흥미진진하다. "사랑에 빠졌을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에는 정말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쓸데없는 자존심, 자유를 향한 끝없는 열망, 사랑하는 그를 제외한 이 세상의 수많은 매력적인 사람들, 그동안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써 댔던 혼자만의 시간, 그런 것들이 아닐까? […]"

마지막 날처럼 소중하게

그는 하루가 마지막 날인 것처럼 평생 그렇게 종말론적으로 살았다. 그의 글과 그림은 거의 유언장에 가깝다. 감기를 앓아야 겨우 휴식을 취할 정도로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전업 작가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모든 예술가가 다 그렇지만 삶의 유한성이 주는 쓸쓸함을 터득한 지 오래고 그것을 초월해 보려는 몸부림이리라.

그러나 보니 그의 글에는 죽음과 연관된 내용이 많다. 산문집 <날씨가 너무 좋아요>에서도 보면 유서를 미리 써 보는 내용이 나온다. 이는 앙드레 말로의 말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살기 위해서"를 연상시킨다. 저자가 극적으로 죽어 간 화가들, 바스키야, 헤링, 강용대 등을 불러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리라.

"한순간도 버릴 수 없는 소중한 내 삶의 시, 분, 초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사랑하라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그는 인생의 마감일이듯 하루하루 일기장을 쓰는 버릇이 있고 그것이 그를 빼어난 저자의 반열에 놓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모든 예술 행위는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을 자꾸 물으라고 설득한다. 현대인의 불행은 바로 자신이 진정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이 뭔지 모르는 데 있기 때문이리라.

저자 황주리 소개

1957년 서울 출생.
1980년 이화여자대학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1983년 홍익대학 대학원 미학과 졸업.
1991년 뉴욕대학 대학원 졸업.

개인전 25회
2000년 선미술상 수상 기념전(선화랑, 서울)
1996년 시그마 갤러리(뉴욕)
1996년 진화랑(서울)
2005년 '세월전'(아트사이드갤러리) 외 다수.

저서로는 산문집 '날씨가 너무 좋아요'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세월'과 번역서 '행복한 여행자'가 있다.
여행광과 영화광

그는 여행광에다가 영화광이다. 여행과 영화는 닮은 점이 있어 보인다. 여행이 짧은 시간 내에 삶과 죽음이 순환하는 축소판이라면 영화도 1시간 30분 안에 하나의 삶, 인생의 에피소드를 읽어 낼 수 있다. 일주일의 여행이 때로 질적으로는 1년 이상 산 것에 맞먹는 추억을 남기기도 하지 않는가. 그는 혼자서 영화와 여행을 통해서 신혼 여행하듯 다닌 셈이다.

작가는 이렇게 멋진 산문집을 낼 수 있었던 데는 웅녀처럼 뉴욕에서의 10년간의 동굴 생활 덕이리라. "내가 미국에 온 후에 어떤 것에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철저히 더더욱 깊이 자신 속으로 침착하였다. 나는 도를 닦듯이 그림을 그렸다. 특히 흙을 만지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 아마도 천개는 빚었을까 나는 완벽하게 혼자였으나 외롭지 않았다."

▲ '어느 개인 날' 2005
ⓒ 황주리
글로 사진을 찍는 마술사

황주리는 삶의 풍경을 사진으로 찍고 그림을 그려 글에 담는 마술사를 닮았다. 그의 글은 그림처럼 피어나고 사진처럼 찍혀 작가 심경에 풍경이 박히고 그것은 또한 세상의 풍물과 만나고 서로 부딪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낸다. 그리고 그 사진들과 그림들이 커다란 모자이크가 되면서 글의 내용이 풍성해지고 다양해진다.

그의 글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뜸 들이는 시간, 음미하고 감상하는데 조금은 여백과 여유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다. 그의 수필이 베스트셀러가 될 여지는 많지 않아 보인다. 그냥 자주 오랫동안 읽을 책이다. 독자와 타협보다는 자기 방식을 고수하는 듯하다. 그러나 나이 들면서 변한다고 올해 나온 <세월>은 그의 산문집 중 가장 읽기 편하고 재미있다.

▲ '인생은 아름다워라' 2005
ⓒ 황주리
수필이란 삶의 희로애락을 이야기보따리에 풀어놓는 것이다. 사막을 지나고 나서야 오아시스가 나오듯 불길한 과정을 거치고야 상쾌한 결론이 내려지는 것이다. 헤밍웨이는 "뒷맛이 쓰면 불행이고 뒷맛이 달면 행복"이라고 했는데 황주리 글은 바로 뒷맛이 달고 개운하다. 마지막에서 가서 유쾌함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 황주리 수필에 있어 최고의 미덕이다.

<세월>은 바로 그런 심리 치료사의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마음의 치유하고 삶의 대한 용기와 희망을 주면서 '인생은 아름다워라'라는 작품이 잉태할 수 있는 기반이 생긴 것이 아닌가 싶다. 고단함과 피곤함으로 엮여진 우리의 일상에서 작은 축제와 행복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 저자의 마음이리라.

세월

황주리 지음, 이레(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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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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