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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 학교는 명절이 지난 다음 날, ‘과일 모으기’를 해오고 있습니다. 차례를 지냈거나 먹으려고 둔 과일을 하나씩 학교에 가져오는 행사입니다. 비록 한 사람이 한 개씩이지만 모아 놓으면 제법 됩니다. 이것을 박스에 넣어 이웃의 고아원, 양로원, 복지시설 등 꼭 필요한 곳에 전달하는 행사입니다.

▲ 과일을 가져오는 학생들
ⓒ 이태욱
해온 지가 벌써 십수 년이 되었군요. 저도 처음에는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받는 이들이 별로 좋아할지도 모르는데 우리만 요란스러운 게 아닌가?’ ‘전시용 행사 밖에 되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일을 직접 담당해 보고 나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곳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비록 한 장소에 과일 몇 박스밖에 전달할 수 없지만 이 적은 과일도 그들에게는 큰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받는 이들은 주는 이가 부끄러울 정도로 너무 감사해 합니다. 이렇게 작은 정성이라도 모으면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 과일을 선별 작업 하는 중
ⓒ 이태욱
요즘은 옛날과 달리 가난한 집안의 학생이 대체로 공부를 못합니다. 사교육비가 많이 드는 교육구조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입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부모가 밤늦게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을 돌볼 시간이 적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학원에도 못 보냅니다. 그래서 과외비가 가장 적게 드는 부류이기도 합니다. 우리 학부모님들에게서 '과외비 때문에 못 살겠다'는 말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부가 점점 고착화 되고 있는 현실에서 가난하기 때문에 저절로 공부를 못하게 되고, 공부를 못하기 때문에 공부에 흥미를 잃어 어쩔 수 없이 실업계로 진학하는 학생이 많습니다. 우리 학교도 실업고인 관계로 가난한 학생이 많습니다. 더러는 보육시설에서 생활합니다. 우리가 모은 과일상자는 우리 학생들이 더러 있는 보육원으로 가장 먼저 갑니다. 아무래도 우리 학생들에게 맛있는 과일을 먼저 먹이려는 욕심이겠지요.

▲ 이동 중인 과일상자
ⓒ 이태욱
그러면 거기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의 소식을 듣기도 합니다. 학생들은 가끔 그런 시설에 있는 것이 부끄러워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습니다. 그 사실이 공개되는 것을 꺼려 담임 이외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에 대해 그러한 지식을 사전에 충분히 아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어떤 상황에서 적절히 대처할 수 있고 양으로, 음으로 지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일 모으는 기간에는 교실에도 활기가 넘칩니다.

“야, 이 배는 아이 머리만 하구나! 누가 가져왔니?”

▲ 보육시설에 전달
ⓒ 이태욱
머뭇거리며 손을 드는 학생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평소에 약간 말썽꾸러기인 한 학생이 배를 다섯 개나 들고 왔습니다. 아주 쉬운 것 같지만 교직생활 20여년 만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는 나에게서 아마 태어나서 가장 큰 칭찬을 받았을 겁니다.

아이들은 칭찬을 받으면서 물씬 성장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학생들은 칭찬을 먹고 자랍니다. 남을 돕는 일에 가장 해택을 받는 이가 결국 자기 자신인 셈입니다. 실업고라고 하면 흔히들 거친 학생을 연상하기 쉽습니다. 그런 성향을 가진 학생들도 가끔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성향을 가진 학생들도 이런 평화로운 활동, 여유로운 과정을 거쳐 사회의 새 일꾼으로 태어납니다.

덧붙이는 글 | 이태욱 기자는 부산 동아공업고등학교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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