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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백억', '고민중', '어리붕붕', '비타민C', '마리야 마리야∼', '스벳'….

부산 경성대학교 27호관 한 강의실. 자신을 표현하는 '별칭'들이 공개되었을 때 서로에 대한 궁금증은 더해 갔다. 혈기왕성한 20대 젊은이라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있다 보니 분위기는 다소 서먹하다. 스스로 소개를 하라고 하면 분명히 몇 마디 안하고 냉큼 앉아 버릴 것 같아 '별칭과 지은 이유'를 적은 자기소개서를 옆 사람이 대신 소개했다.

지난 8월 27일부터 31일까지 3일간 노동부 부산지방노동청에서 준비한 '청년층 직업지도 프로그램(CAP : Career Assistance Progrem)'. 18명의 참가자들은 자신의 꿈과 현실을 반영한 '별칭'으로 첫 날 일정을 시작했다.

▲ 청년층 직업지도 프로그램 소개. 진행 중 호칭은 모두 앞에 적힌 '별칭'을 사용한다.
ⓒ 김수원
첫째날: 종이 한 장으로 인사 담당자를 유혹하라

대부분 4학년들로 구성된 참가자들은 이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가 컸다. 다들 취업에 대해 막막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이전의 5일 일정에는 '자아탐색', '직업탐색'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이번 3일 일정에는 그 내용이 빠지고 바로 '이력서', '면접' 등 구직 기술이 중심이 되어 아쉬움을 남겼다.

▲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 적성과 직업 선택에서부터 처음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서운했던 3일 일정.
ⓒ 김수원
오후 일정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력서 작성법. 먼저 이력서를 쓰기 전에, 남의 이력서를 보고 구인자의 입장에서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다. 같은 회사를 지원하는 4명의 이력서가 주어지고 그 중 누굴 뽑을 것인지를 결정한 뒤 그 이유를 설명하기로 했다. 이력서 한 장으로 사람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았다. 텍스트만 가지고 선택 당해야 한다는 현실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입장을 바꿔 보니 이력서가 가지는 영향력은 무척 컸다.

▲ 남의 이력서 평가. 입장 바꿔 생각해 보니 실수는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 김수원
내가 떨어뜨린 사람들의 이력서를 보니 어떻게 이력서를 써야 할지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력서로 인사 담당자를 유혹할 수 있을지 아이디어를 모았고 거기에 맞게 이력서를 집에서 써오기로 했다.

둘째날: 즉석 유령회사 면접관도 되어 보고

▲ 한 회사의 면접관이 되어 뽑아 본 질문. 프리젠테이션 면접 연습을 겸했다.
ⓒ 김수원
면접을 대비해서 '역지사지' 모드를 도입했다. 프리젠테이션 면접도 준비할 겸 자신을 한 회사의 면접관이라 가정하고 '나 같으면 이런 걸 물어보겠다'고 질문을 뽑았다.

우리 팀은 즉석에서 'NO마진 홈쇼핑'이라는 유령회사를 차리고 머리를 맞댔다. 일단 홈쇼핑에서 정말 상품을 구입해 본 적이 있는지 물어 봐야겠고, 상품 하나 던져 주고 직접 판매를 해 보라고 시켜 보고 싶고. 생방송 도중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보고∼ 에∼ 또∼.

실제 면접관은 궁금한 것이 얼마나 많을까. 수만 가지 질문에도 척척 대답할 수 있는 똘똘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력서 가는 데 꼭 따라간다는 자기소개서도 '제목을 잘 지어라'는 기치 아래 몇 가지 작성 지침이 내려졌고 전날 써 오기로 했던 이력서는 콘테스트를 벌여 상을 주기로 했다.

▲ 이력서 콘테스트. 이번에 이력서를 처음 쓰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 김수원
셋째날: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모르는 '당혹면접'

"경찰에 따르면 박 간장공장 공장장은 동생인 박 된장공장 공장장과 앞마당에 있는…"

아침부터 또렷한 발음을 위한 교정 연습으로 잠을 깨웠다. 면접관에게 인사하는 각도, 앉는 자세 등 이미지 메이킹 강의가 이어진 뒤 집단 면접에 들어갔다. 돌아가면서 4명씩 면접을 봤고 4명의 면접관도 정해졌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모든 행동을 캠코더로 촬영해 서로의 모습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 캠코더로 녹화하는 모의 면접.
ⓒ 김수원
▲ 방금 전에 면접을 본 면접관들.
ⓒ 김수원
▲ 촬영한 모습을 보며 평가. 평소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모습을 찾아가기도 한다.
ⓒ 김수원
"자기소개부터 간단하게 해 보세요."

'자기소개?' 바로 몇 분 전에 연습을 했건만 맨 먼저 시작한 사람은 자주 말문이 막혔다. 당황하는 표정과 동작 하나 하나가 눈에 들어왔고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당혹감이 참가자들의 얼굴에 짙게 깔렸다. 캠코더로 찍힌 모습은 더욱 잔인하면서도 웃겼다. 흐느적거리는 걸음에서부터 숨가쁘게 빠른 말투까지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하고 자책했다.

마지막엔 15년 후 자신의 명함을 만들었다. 명함을 색칠하는 손은 어느새 어릴 적 꿈을 그리던 순수한 고사리손과 닮아 있었다.

▲ 15년 뒤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본 명함.
ⓒ 김수원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던 취업프로그램
15∼29세 누구나 가능... 6시간씩 5일간 진행

▲ 종이를 등에 달고 서로의 첫인상을 적어 주는 모습.
ⓒ김수원 기자

취업 프로그램 내용을 보면 시종일관 사람들을 심각하게 만들어 놓을 것 같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참가자들의 개성도 한몫 했겠지만 중간중간 친목 도모를 위한 다양한 놀이들이 지루함을 잊게 해주었다.

첫 날 오전엔 각자 포스트잇을 붙인 종이를 등에 달고 기차놀이를 하듯 서로의 첫인상을 적어 주기도 했고 빨래통 놀이, 장점폭격 등으로 점심을 먹은 뒤의 식곤증도 날려 버렸다.

청년층 직업지도프로그램은 15∼29세의 청년층을 대상으로 자신에게 적합한 직업 결정, 취업에 필요한 실제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마련됐다.

각 지방노동관서나 고용안정센터을 통해 참가 신청이 가능하며 보통 참가자 10∼15명이 한 팀으로 1일 6시간씩 5일간 진행된다. 참가 신청은 무료이며 점심과 간식도 제공한다. 프로그램 수료자는 노동부에서 발급하는 수료증을 받는다.

배석도 부산종합고용안정센터장은 "실업률이 높다고 하지만 중소기업에서는 사람을 구하지 못해 오히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며 "취업을 위해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어도 직접 찾아오지 않아 혜택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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