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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디자인의 상관관계는 무엇인가? 예술가는 자신의 예술적 창의성과 전문성을 어떻게 디자인에 접목시킬 수 있는가? 필거아트앤디자인(筆車Art&Design)의 자문을 맡고 있는 서예가 조성주씨와 인터뷰를 하면서 나는 머리 속으로 보다 근원적인 의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다.

유럽의 디자인 선진국들에게서 솟구쳐 나왔던 '디자인의 폭발적인 확산'과 함께 던져지기도 했던 물음을 지금 나 자신에게 하게 된 것은 순전히 '필(筆)과 먹(墨)'이라고 하는 도구와의 연계성에서 출발하기도 했지만, 그 도구 뒤에 버티고 서 있는 서예의 장대한 역사와 작가의 열의에서 분출하고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 필묵을 적용한 화장품 패키지 디자인
ⓒ 조성주

서예가 국당 조성주씨는 10여 년 전부터 서예와 전각만이 가진 독특한 요소들을 디자인에 접목시켜 보고 싶다는 생각과 열의를 품어왔다고 한다. 작가는 대학 시절 산업디자인을 전공하였고, 디자인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그리하여 4~5년 전, 서울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부터 서예(캘리그래피)를 디자인에 접목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기 시작했지만 그때만 해도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하는 사례가 지극히 미미했을 뿐만 아니라 쉽게 시도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최근 들어 전통에 국한되었던 캘리그래피라는 장르도 환경이 바뀌면서 서예, 즉 필묵과 관련한 부분들에 대한 다양한 모색을 조금씩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시도되는 차원은 아니다.

▲ <필거아트앤디자인> 자문을 맡고 있는 서예가 조성주 씨
ⓒ 조성주

조성주씨는 그간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서예 전공자들이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해 크게 어려움을 겪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런 현실을 알기에 '서예'라는 전통예술 또한 현대 디자인과 접목시켜 대중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학생들에게 많이 강조하곤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 교직원 및 외부 방청객을 대상으로 학계, 미술계 교수 등 저명인사들을 초빙하여 강의하는 수요강좌 초청특강을 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작가는 서예(캘리그래피)의 디자인적 적용 요소를 구체화시키기 시작했다.

그때 작가는 전각작품과 서예작품을 접목시킨 '간판디자인과 생활디자인'을 주제로 강의를 마치면서 본격적으로 서예와 디자인의 접목을 생각하게 된다. 사실 작가도 "당장은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은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어떠한 계기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계획을 묻자 작가는 "서예, 전각의 문자가 주가 된 디자인 및 특수하게 개발된 서체와 이미지 등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필거아트앤디자인의 홈페이지(www.pilgeo.com)를 방문하면 구체적인 내용들을 살펴볼 수 있다. 그야말로 서예적 요소를 적용시킨 실험작으로 간판, 패키지, CI/BI 등의 텍스트와 레이아웃을 먹을 가지고 작업하면 어떤 느낌이 나오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캘리그래피 요소를 사용한 홈페이지 제작도 필거아트앤디자인의 주요 사업품목 중 하나이다. 사실상 서예가들의 홈페이지는 없는 경우가 많고 있어도 홈페이지의 디자인적 수준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라 향후 보다 수준 높은 홈페이지를 제작하여 공급할 예정이라 한다.

▲ 필묵을 이용한 CI(기업아이덴티티) 작업
ⓒ 조성주
이쯤에서 '필거아트앤디자인'이라는 명칭에 대해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필거(筆車)'는 작가가 제자들의 동인 이름으로 지어준 '필거21'에서 '필거' 명칭을 함께 사용한 것이다. 이는 향후 '필거아트앤디자인'과 '필거21'의 연계성, 공동작업 등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여겨진다.

'필거21' 동인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 서예인 이세웅 씨가 필거아트앤디자인의 대표를 맡아 진행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면을 깊게 고심하고 멀리 내다본 것이 아닌가 싶다.

다시 향후 계획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 보자.

"요즘 상품 패턴이 손글씨 상표가 많다는 것입니다. 필묵 글씨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가 이미 왔습니다. 전문 캘리그래피스트가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붓터치 및 이미지를 개발하여 디자인 소스로 쓸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서예계가 고립화, 섬[島]화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하는 요즈음, 아직은 시작 단계이지만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계획과 전망은 즐겁기 그지없다.

그는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과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하는 아카데미 개설, 작게는 사방 30cm 안에 넣기도 하고 크게는 사방 2m 정도 크기의 다양한 먹문양 개발, 더 나아가 한글은 물론 알파벳 및 가타카나, 히라카나, 한문, 숫자 등 각 문자의 다양한 글꼴 개발을 주된 사업으로 심도 있고 폭 넓게 시도하고 있다.

▲ 필묵을 적용한 음료 패키지 디자인
ⓒ 조성주
"이미 제작된 특수글자꼴, 붓 터치, 문양 등 약 2천여 개 정도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 지극히 일부만 홈페이지에서 공개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붓 터치, 먹문양들이 화선지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변의 모든 대상을 동원해서 여기에 먹터치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뭔가 소스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지금은 우선 묵묵히 연구 개발에만 몰두하고 있지요."

한 조사 자료에 의하면 현대에 새롭게 개발, 창조되고 있는 것들의 많은 부분이 전통 문화와 예술에서 컨텐츠를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볼 때 서예는 디자인에 있어서 독특한 매력을 지닌 부분임에 틀림없다.

▲ 필묵을 이용한 CI(기업아이덴티티) 작업
ⓒ 조성주
작가는 내년 2월 하순부터 3월 초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2주 동안 열릴 대규모 전시 준비에 여념이 없다. 작가는 여기에서 지금까지 준비해오고 실현해온 서예와 디자인의 집산을 '캘리그래피 디자인-필묵의 향연'전에서 신선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서예가의 전문성과 감각, 경험, 발상 등에서 나온 무한한 요소들을 디자인에 적용시킨 산물들을 펼쳐 보일 것이라고 한다. 전통 서예작품, 먹문양, 붓 터치, 필묵과 전각의 추상세계, 동영상 상영, 특수 방법으로 제작된 여러 가지 글꼴 및 소스, 문양들, 생활에 적용한 캘리그래피 디자인 등을 선보일 계획이다.

그렇다. 작가의 두 발은 서예의 단단한 땅을 굳건히 디디고 서서, 그 토대 위에서 서예의 다양한 적용과 대중적 저변 확대라는 확장성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모습, 어떻게 기대를 채워줄지 내년 전시가 벌써 기다려진다.

덧붙이는 글 | 서예가, 전각가로 널리 알려진 조성주씨는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이며, 국제서법예술연합, 한국전각학회 이사이다. 현재 서울대 동양화과 강사이며, 1997년에는 금강경완각(전각)으로 97한국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하였다. 이번에 <필거아트앤디자인> 자문을 맡으면서 새롭게 전개하는 캘리그래피와 디자인의 접목은 서예와 디자인의 확장성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 이 기사는 <월간 서예문인화>에도 송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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