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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끓어오르던 더위가 비 소식에 지레 놀란 것인지 오늘은 그리 폭염은 아니었던 듯싶다. 오후 6시. 집으로 출발한다는 남편의 전화를 받자마자 일찌감치 저녁준비를 서둘렀다.

차게 식힐 양으로 콩나물국을 미리 끓여 냉장고에 넣었다. 양배추도 한 잎에 들어가기 좋을 정도로 찢어 적당하게 쪘다. 장날 산 두툼한 손두부도 몇 조각 구웠다. 늙은 오이를 껍질을 벗기고 속살을 채 썰어 식초 몇 방울을 떨구어 조물조물 무쳤다. 1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서랍에 넣어 둔 카메라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미리 나와 쪼그려 앉아 있던 딸아이와 손바닥을 마주치면서 교대했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대기상태로 들어간 것이다. 그 대상은 바로 소독차이다. 오늘은 기어이 찍고야 말리라.

ⓒ 김정혜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던 여름의 초입. 탱크 지나가는 소리를 내며 뭔가가 동네를 번개처럼 지나갔다. 소독차였다. 잠깐 사이 온 마을이 자욱한 연기 속에 파묻혀 버렸다. 몇 안 되는 동네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그 뿌연 연기 속을 뛰어 다녔다.

참 낯익은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건 바로 내 어린시절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뿌연 연기 속으로 30년을 훌쩍 넘은 내 어린시절이 삐죽이 고개를 내밀었다.

화려한 그림이 그려진 내 딸아이의 미로 찾기 그림과 꼭 닮은 그런 골목에서 나는 살았다. 다만 그 그림 속처럼 웅장한 성곽과 푸른 호수와 뾰족탑에 걸린 십자가대신 다닥다닥 붙은 성냥갑 같은 집들만이 빼곡했었다.

어찌나 꼬불꼬불했던지 처음 와보고 두 번째 우리 집을 찾아오는 친척들은 집을 못 찾아 동네 골목을 서너 바퀴 도는 건 다반사였다.

겨울이면 집집마다의 대문 앞엔 하얀 연탄재가 수북하였고 여름이면 악취를 풍기는 음식물 쓰레기로 파리들의 천국을 방불케 하였다. 이따금씩 음식물을 헤집는 쥐들이 발자국 소리에 놀라 줄행랑을 치는 모습을 간간이 보기도 했다.

밤이면 더위를 피해 저마다 골목에 나와 앉아 팔이 아프도록 부채질을 해댔건만 그 부채는 더위를 식히는 용도보단 팔뚝에 종아리에 쉴 새 없이 달라붙는 모기를 내려치는데 더 많이 사용되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손으론 연신 팔뚝이며 종아리에 침을 쓱쓱 문지르던 그 골목의 여름밤 풍경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히 각인돼 있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저 멀리 골목입구에서 소독을 내품는 기계소리가 아스라이 들릴라치면 어머니는 들고 있던 밥숟가락을 내던졌다.

황급히 밖으로 나가 소독기계를 짊어진 아저씨를 마치 먼 길에서 돌아오는 고운 님 마냥 길게 목을 빼고 기다렸다.

"아저씨! 우리 집에도 약 좀 쳐 주이소. 부엌의 하수도 구멍하고 화장실 하고 골고루 좀 쳐 주이소."

어깨에 짊어진 소독통과 소독기계만으로도 아저씨는 충분히 힘겨워 보였다. 하지만 어머니에겐 소용없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아저씨의 한쪽 팔을 우악스럽게 휘어잡고는 막무가내로 아저씨를 우리 집으로 이끌었다.

"아줌마! 알았어요. 입구에서부터 차례차례로 해드릴게요."

"아저씨! 저번에도 그러더만 결국은 약이 다 떨어져서 우리 집은 소독약 냄새도 못 맡았구만은. 저번에 저 앞집들 소독해 줬으니까 이번에는 우리 집부터 좀 해주고 가이소. 도대체가 저녁마다 모기란 놈이 하도 피를 빨아 묵어 갖고 인자마 빈혈이 생길라 안 캄니꺼. 아저씨. 내가 쓰러지마 책임 질 낌니꺼?"

어머니의 숨 가쁜 하소연이 끝날 때쯤이면 아저씨는 이미 우리 집 부엌 하수구 구멍에 소독기계를 들이대고 계셨다. 방에서 저녁밥을 먹던 우리는 밥이며 반찬을 덮느라 어머니의 숨 가쁜 하소연만큼이나 숨을 헉헉 거려야 했다. 부엌에서 뿜어댄 소독연기는 방안과 다락을 삽시간에 침범해버리고 나의 눈과 코를 위세 좋게 점령해 버렸다.

어디서 어떻게 들은 건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소독약 냄새가 좋으면 뱃속에 회충이 있다는 증거라는 말이 생각났다. 먹다만 저녁을 마저 먹으라는 어머니의 고함소리를 듣고도 못들은 체하며 아저씨가 내뿜는 소독연기를 따라 줄행랑을 쳤다. 그 자욱한 소독 연기가 내 몸을 감싸면 내 몸속의 회충들이 다 질식할 것으로 철석같이 믿었었다.

저녁내 아저씨를 따라다닌 건 결코 나만이 아니었다. 그 골목에 사는 아이들이란 아이는 다 소독연기를 따라 뛰었다. 흡사 골목대장을 따르는 수많은 졸병들처럼. 결국 아저씨는 그 꼬불꼬불한 골목의 여름저녁 골목대장이었었다.

ⓒ 김정혜
소독차가 번개같이 스쳐갔기에 그날 난 아쉽게도 사진을 찍지 못하였다. 행여나 한 번 더 지나갈지 몰라 기다렸지만 저녁내 나의 애타는 기다림은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다음날도 또 그다음날도 기다리는 소독차는 오지 않았다.

"엄마! 소독차 소리 나요. 빨리 나오세요!"

밖에서 놀던 딸아이의 애타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미리 챙겨놓은 카메라를 들고 부리나케 뛰쳐나갔던 며칠 전. 급하게 셔터를 눌렀건만 소독차가 어찌나 쏜살같이 지나가버리는지 제대로 된 사진을 찍지 못하였다.

ⓒ 김정혜
그리고 며칠. 대강 시간을 어림잡아 일부러 집 앞에서 진을 쳤다. 참 이상했다. 잠깐 화장실이라도 들어갈라치면 아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혼자 밖에서 애를 태웠다.

"엄마! 소독차 소리 나요. 빨리 나오세요!"

볼일을 보는 둥 마는 둥 넘어질 듯이 밖으로 내달리면 소독차는 이미 저만치서 약 올리듯 연기를 뿜으며 도망쳤다.

ⓒ 김정혜
하여 오늘. 해도 떨어지기 전에 일찌감치 아이를 밖에 대기시켜 놓고 부랴부랴 저녁준비를 한 것이다. 오늘만은 기어이 생생한 사진 몇 장을 꼭 건질 것이라는 나름대로는 투철한 기자정신으로 중무장을 한 것이다. 십 분이 흐르고 삼십분이 흐르고… 벌써 날이 어둑어둑 해졌다. 기다리는 소독차는 오지 않고 남편의 차가 멀리 보였다.

배가 고파 숨이 넘어 갈 것 같다는 남편의 성화에 또 딸아이를 밖에다 세워놓고 저녁상을 차렸다. 그 와중에도 내 귀는 행여나 그 탱크 소리가 나지 않나 온 신경이 바깥으로 집중 되고 있었다. 그때 '우우웅'하는 예의 그 소리가 들리고 이어 딸아이의 목소리도 들렸다.

ⓒ 김정혜
밖으로 나가면서 주머니에 넣어둔 카메라를 잽싸게 꺼냈다. 카메라 렌즈에 소독차가 보였다. 셔터를 눌렀다. 셔터 누르는 속도보다 소독차 속도가 더 빨랐다.

실망이다. 나란 사람은 시민기자로서의 민첩성이 아직은 너무나 부족한 그저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시골아지매일 뿐이라는 자책으로 가슴이 쓰렸다. 그 쓰린 가슴으로 하나 둘 굵은 빗방울이 들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는 내내 기름이 잘잘 흐르는 하얀 쌀밥위로 소독차가 뿜어대는 그 폭발할 것 같은 하얀 연기가 혀를 널름거리며 나를 약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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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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