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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일본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 비틀스가 유행했고 히피문화와 이데올로기에 의한 전쟁 기운이 세상을 지배하던 그때 일본에서는 학생운동이 열도를 강타했다. 그로 인해 도쿄대학은 입시를 중지했다고 하는데 그것이야 어찌됐든 그 시간이 있었기에 무라카미 류는 <69>를 선보일 수 있었다.

<69>의 배경은 1969년. '겐'이라는 이름의 작중 화자가 고등학교 3학년에 진급하던 해이기도 하다. 알려졌다시피 일본도 한국만큼이나 뜨거운 교육열로 유명하다. 그러니 '고3'이 되는 화자가 이 교육열에 온 몸을 불태워야 하는 처지가 된다고 추측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나 저자의 소설에서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았던, 남들처럼 평범한 인물이 등장한 걸 보았는가? 고3이든 교육열이든 간에 화자에게 그런 건 의미가 없다.

화자도 왕년에 공부를 좀 했다고 한다. 하지만 1969년에 화자는 시쳇말로 '골 때리는' 아이로 유명하다. 화자가 공부 잘한 건 과거형이고 엉뚱한 행동을 하는 건 현재형이다. 상황이 그러니 화자가 고3이라고 해서 공부할 가능성은 없다. 이렇게 말하면 그 시기에는 누구나 그런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는데 화자는 좀 도가 지나친다.

상상을 초월한다고 할까? 화자가 얼마나 엉뚱한가 하면 그럴 듯해 보인다는 이유와 멋져 보인다는 이유로 무모한 축제를 계획하고,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선생에게 베트남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웃고 있냐고 묻거나 이 상황에 셰익스피어가 웬 말이냐고 대드는가 하면,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학교에 침입해 '사고'를 벌이는 정도다.

특히 학교에 침입해 '사고'를 벌이는 게 <69>에서 저자의 엉뚱함이 절정을 이루는 대목인데 그 사건이란 화자가 학교에 침입해 '상상력은 권력을 쟁취한다'는 문구를 남기는 바리케이드 사건을 말한다. 당시 일본 열도는 한창 학생운동이 활발했기에 그 시기에 화자가 그것에 동참한 것이 무어 그리 대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속사정을 알고 나면 대수로운 일로 치부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화자가 학교에 침입한 이유는 '정의'도 아니고 '대의'도 아니다. 또한 시류를 쫓아 그런 것도 아니다. 그 이유는 누가 봐도 가관이라고 할만한데 그것은 좋아하는 여학생, '레이디 제인'의 주목을 끌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이 사실은 화자 밖에는 모른다. 화자의 지도 아래 계획을 꾸민 그들은 그것이 정의롭고 성스러운 행동이라 여기지만 실상은 리더인 화자의 지극히 사적인 충동에서 시작된 것뿐이다. 그래서인가? <69>는 하늘에 닿는 엉뚱함 때문에 유쾌함을 선사하지만 보고 있노라면 쓴웃음을 짓게 만든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진리 아닌 진리를 엿볼 수 있다. '모든 대의는 개인(지도자)의 사적인 욕구'에서 나온다는 진리(?)가 그것이다. 역사의 많은 사건들, 그리고 1969년의 많은 정치적인 사건들이 그런 연유로 발생했다고 주장이라도 하려는 듯 저자는 그 불미스러운 진리의 효과를 멋지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하여 저자의 펜은 무거운 주제로 사회변화를 운운하며 정의와 대의를 입에 달고 사는 이중적인 이들에 대한 풍자를 낳고 있다.

<69>에서 자주 보이는 반어적인 문체들도 마찬가지. 작품에서는 '했다, 고 말하면 거짓말이고 사실은 안했다'라고 말하는 표현들이 자주 눈에 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것 또한 풍자가 아닐까? 이 문체들은 앞말에서는 당시의 기성세대가 바라는 말을 올려놓았다가 뒤에 가서 뒤통수를 치는 것처럼 전혀 다른 말로 끝내고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카레빵 하나로 주린 배를 채우고 나머지 돈은 저축했다. 사르트르, 주네, 셀린 카뮈, 바타유,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사서 읽기 위해서, 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사실은 나긋나긋한 여학생을 꼬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와 같은 표현들로 솔직함을 내보이는 동시에 무거운 척 하는 사회를 비꼬고 있다.

<69>에서 저자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 지나치게 우회적이지 않으면서도 또한 노골적으로 직설적인 통로를 거치지 않으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내고야 만다. 아닌 척 하면서 발칙한 이야기를 쏟아내고야 마는 것이다.

'상상력은 권력을 쟁취한다'고 말하는 <69>은 발칙한 소설이다. 상상력이 결여됐던 무거운 시대의 한복판에서 상상력을 외치고 있으며 심지어 제목 또한 성행위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니 어찌 발칙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토록 발칙한 소설이기에 그런가? 이 작품은 어쩔 수 없이 눈에 띈다. 또한 더 애정이 간다. 남들처럼 무거운 척 하고 표정 없는 얼굴로 돌아다니는 사람들로 가득한 사회에서 히죽거리며 웃고 있는 사람에게 더욱 애정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인간적이기에, 또한 발칙한 것도 솔직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런 것일 테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69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작가정신(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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