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먹구름이 짓궂은 장난을 하는 것인지 일요일 하늘은 오전 내내 흐렸다 개었다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오후 나절 어디선가 나타난 한줄기 바람에 심술꾸러기 먹구름은 결국 맥을 못 추고 그 바람에 이끌려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먹구름이 사라진 환한 하늘로 금방이라도 뛰어 오를 듯이 딸아이는 반가워하였습니다. 아이는 제 방으로 들어가 부산하게 뭔가를 찾아 손에 들고는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잠시 후.

ⓒ 김정혜
"엄마! 이것 봐! 정말 크지?"
"와! 정말 크다. 저번엔 아무리 해도 그렇게 안 되더니 오늘은 정말 굉장히 크게 만들었네."
"엄마! 이 총으로 하면 이렇게 크게 만들 수 있어. 엄마도 한번 해봐."
"정말? 그래 엄마도 한번 해보자."
"와! 크다. 엄마 내 말이 맞지?"


한참을 그렇게 아이와 총을 쏘며 또 아이의 들뜬 흥분에 장단을 맞추어가며 비누방울 놀이를 했습니다. 비누방울 놀이는 어릴 적에도 정말 신나는 놀이였던지라 옛날 생각이 되살아났습니다. 한편으로 아이의 손에 들린 비누방울 총이 정말 큰 비누방울을 만들어내니 신기하고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어릴 적 저는 할머니와 시골에 살았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온 산과 들녘이 다 신나는 놀이터였습니다. 온 산에 흐드러진 진달래, 머루, 다래를 밥보다 더 많이 먹고 놀았던 봄이 있었는가 하면, 한참을 물속에서 놀다 배가 고프면 아무 밭에나 들어가 옥수수를 꺾어 강가에 불을 지펴 군옥수수로 허기를 채우던 여름도 있었고, 삼촌들이 긴 작대기로 아름드리 밤나무를 두들겨 후두둑하고 떨어지는 밤송이가 머리에 혹을 만들면 그 아픔도 잠시 발로 짓이겨 깐 밤송이 안에서 나온 잘잘잘 윤기 흐르는 구리빛 밤들이 망태를 가득 채우는 재미에 푹 빠진 가을도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온 시골동네가 하얀 눈 속에 파묻히면 비료 포대 하나 들고 언덕에 올라 바지가 축축해져 가는 것도 모른 채 미끄럼을 타며 하루 종일 눈구덩이에서 뒹굴던 겨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장군의 기세가 극에 달해 문고리에 손이 쩍쩍 달라붙는 한 겨울의 며칠간은 방에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어김없이 찾아드는 불청객인 감기 때문이었는데 그럴 때면 꼼짝없이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밖에서 뛰어노는 친구들의 고함소리가 귓전에 앵앵거리는지라 화로 불을 뒤적여 꺼내 놓으시는 군고구마며 군밤도 맛이 없었고 잠자기 전 하루라도 듣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했던 구수한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도 그때만큼은 재미가 없었습니다.

누런 코가 콧구멍 속을 오르락 내리락 미끄럼을 타는데도 밖으로 나가고 싶어 안달을 내는 손녀의 마음을 모를 리 없었던 할머니께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내신 것이 바로 비누방울 놀이였습니다.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 당시에는 요즘처럼 찬물에도 술술 녹는 가루비누나 문지르기만 해도 때가 쏙 빠지는 고형비누가 그리 흔하지 않았기에 할머니께서는 양잿물이라는 것을 사용해 빨래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심심함에 몸을 비틀어대는 어린 손녀를 위해 꽁꽁 숨겨 놓으셨던 귀하디 귀한 비누를 꺼내셨습니다.

소죽을 끓이는 큰 가마솥 앞에 저를 앉히시고 할머니는 미지근한 물 속에다 손을 넣고 오래오래 비누를 문지르셨습니다. 한참이 지나 소죽에서 구수한 냄새가 날 때쯤이면 할머니의 손이 담긴 세수 대야에서는 비누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습니다.

할머니께서 정지 한 편에 쌓여 있는 짚더미에서 구멍이 뚫린 짚 대롱을 가져와 비누 물을 한번 찍어 입으로 후하고 부시면 무슨 요술처럼 방울방울 생겨나던 그 비눗방울들.

비누거품이 담긴 세수 대야를 사이에 놓고 정지바닥에 철퍼덕거리고 앉아 할머니도 저도 비누방울 만들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여물통 너머 왕방울만한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던 소를 향해 후하고 불면 짚 대롱 끝에서 방울방울 생긴 비눗방울이 멀뚱멀뚱한 소의 눈망울에 가 부딪혀 터집니다. 그러면 소가 그 큰 눈을 껌뻑껌뻑 했습니다. 그 모습에 함께 웃던 할머니도 저도 그때만큼은 그저 참으로 정다운 친구일 뿐이었습니다.

요즘은 참 다양하고 편리해진 비눗방울 놀이 기구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 김정혜

ⓒ 김정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딸아이는 비눗물이 든 토끼모양 통에 톱니바퀴를 닮은 대롱을 넣었다 빼서 입으로 후하고 불어 비눗방울을 만들며 놀았습니다.

ⓒ 김정혜

ⓒ 김정혜
그런데 요즘은 비눗방울 총이라는 것을 가지고 놉니다. 비눗물을 총 속에 붓고 쏘기만 하면 총구에서 아주 커다란 비눗방울이 연신 나옵니다. 입으로 부는 것보다 비눗방울이 크고 총구에 그 큰 비눗방울이 꽤 오랫동안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 아이는 무척 재미있어 했습니다.

또 입으로 부는 것은 한번 불고 나면 다시 통 속에 대롱을 넣어 비눗물을 묻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총은 한 번 비눗물을 부어주면 한참을 쏘아 대고 놀 수 있어선지 아이는 더 신나 했습니다.

ⓒ 김정혜
아이가 말간 하늘에 대고 힘차게 총을 쏘아 대니 총구에선 비눗방울이 앞 다투어 우르르 쏟아져 나와 하늘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 모습에 아이는 마치 자신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 팔짝팔짝 뛰며 좋아서 어쩔 줄 모릅니다. 저도 아이에게서 총을 건네받아 하늘에 대고 한번 쏘아 봤습니다.

ⓒ 김정혜
커다란 비눗방울이 소복하게 하늘로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그 중 제일 큰 비눗방울 하나가 오랫동안 터지지 않고 제 머리 위에서 머물렀습니다.

그 비눗방울 속에는 할머니의 고운 얼굴이 아른대고 있었습니다. 말간 하늘가 어디쯤에서. 정지바닥에 철퍼덕거리고 앉아 이 손녀와 함께 했던 비눗방울 놀이를 아마 할머니도 저처럼 아련하게 추억하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