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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의 동요에 머쓱해진 군관들은 서우신에게 무슨 꾸지람이라도 내려달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서우신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자네 말대로 하겠네. 이곳에 남아 있을 병사는 내 굳이 보내지 않겠네. 허나 군량과 무기 조달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인 즉 그것만은 감내해야 하네.”

입을 딱 벌리고 서 있는 군관들에게 서우신은 못을 박듯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한 명의 병사라도 남아 있겠다면 나 또한 이곳에 남아 있을 것일세.”

서우신의 이상한 군령은 곧 전 장령에게 전달되었고 병사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이게 뭐꼬? 집에 가라는 기가 말라는 기가?”
“그랑깨, 알아서 하라는 말 아니랑깨?”

어떤 병사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꾸리는 한편 어떤 병사들은 칼과 창을 갈며 활줄을 고쳐 매었다.

“몽고놈들이 백성들을 죽이고 다닌다 안카나.”
“맞아! 이직은 농사일이 급한 게 아니여!”
“워매 잡것들 땜시 이게 뭔일이랑감?”

이런 혼란을 바라보는 부장 이종신 이하 몇몇 문무관들의 심정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이미 조정은 청과 강화를 맺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오? 이런다고 해서 병마사에게 조정에서 출전하지 않은 죄를 묻지 않을 거라 보는 거 아니오?”

종사관의 말에 이종신은 고개를 흔들었다.

“절대 그렇지는 않을 것이오. 다만 병마사의 마음이 이제 와서야 바뀐 것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소.”
“허! 이제 와서 마음이 바뀐다니 그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아니오!”
“이제 우리는 어찌 해야 하오? 이러지 말고 병마사에게로 몰려 가 우리 뜻을 알립시다.”

이종신은 계속 고개를 흔들 따름이었다.

“할 말이 있었다면 응당 그 자리에서 해야 했을 터! 헌데 아무도 그러지를 못했네. 일이 갑자기 이렇게 된 것은 진영을 이탈한 한영장과 그 시체를 가지고 온 장판수라는 놈 때문이야.”

시끄럽게 의견을 쏟아 내어 놓던 사람들은 마른 침을 삼키며 침묵에 잠겼다.

“그러니 병마사가 제 멋대로 군령을 내렸다는 장계를 알리며 한편으로는 장판수라는 놈을 없애버려야 하네. 그 놈에게 당장 이리로 오라고 명을 내리게나.”
“허나 병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소이다! 군령을 내린다 해도 제대로 먹혀들지 알 수 없소!”

종사관의 말에 이종신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어찌 한낱 무지랭이들의 움직임에 겁을 집어 먹는가? 그러고도 종사관의 지위에 있다는 것이 용하구나! 지금 당장 가서 내가 찾으니 이리로 오라고 하면 될 일이다! 시행하거라!”

종사관은 그 말에 움찔거렸지만 당장 몸을 움직이지는 않았다.

“뭣 하느냐? 당장 가거라!”
“가서 데려오라면 못 그럴 줄 아시오?”

종사관은 옷자락을 홱 떨치며 밖으로 나섰고 그런 종사관의 뒤에다 대고 이종신은 혀를 끌끌 찼다.

“쯧쯧쯧… 저러니 어떻게 출세를 하나!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종사관은 병사들에게 이리저리 물어 장판수가 있는 장막으로 가 그를 불러내었다.

“무슨 일입네까?”

장판수는 피곤한 얼굴로 느릿하게 나와 상대방을 보며 대번 그 종사관이 낮에 자신과 부닥쳤던 이라는 것을 알아보고서는 좋은 일로 오지는 않았다는 셈이 속으로 들었다.

“내 이름은 종사관인 최효일이네.”
“알았으니 용건이나 말하시라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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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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