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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재미를 볼만큼 봤으니 따른 곳으로 가자!"

몽고병들은 약탈한 물건을 챙겨 말에 싣고서는 괴성을 지르며 한기영이 매복한 좁은 길로 들어섰다.

'-쉬익!'

바람을 가르며 화살한대가 정확히 선두에 선 몽고병의 얼굴에 꽂혔고 연이어 화살이 몽고병의 대열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조선군이다!"
"조선군은 모조리 항복하지 않았나?"

몽고병들은 당황하며 우왕좌왕 거렸고 한기영과 병사들은 그런 몽고병들을 하나씩 화살로 쏘아 맞추어 말에서 떨어트렸다.

"저기다! 조선군이 저기 있다!"

매복한 조선군의 수가 많지 않음을 안 몽고병은 넓게 흩어져 말위에서 활을 쏘며 반격을 개시했다. 풀 외에는 몸을 숨길 곳도 마땅치 않았던 조선군인지라 전세는 순식간에 뒤바뀌어 사방에서 쏟아지는 몽고군의 공격에 그들은 하나둘씩 목숨을 잃어갔다.

"으윽!"

한기영마저 가슴에 화살을 맞고 쓰러지자 남은 조선군들의 사기는 더욱 꺾이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화살마저 떨어지자 남은 조선군들은 죽을 각오로 돌과 나무토막 등 손에 집히는 것을 들어 던져 대었다. 순간 기적이라도 일어났는지 돌에 맞지도 않은 몽고병들이 힘없이 말 아래로 우수수 떨어지듯 나뒹굴었다.

"사람들을 구하라!"

우렁찬 고함소리와 함께 거친 얼굴에 다리를 절뚝이는 사내가 말에 탄 몽고병을 끄집어내려 칼로 찍은 후 말에 올라탔고 그 뒤를 이어 활과 총, 창을 든 병사들이 우르르 뛰쳐나왔다.

"속았다! 조선군이 더 있었구나!"

몽고병들은 더 이상 싸울 뜻을 잃은 채 도주하기 시작했고 그 뒤로 총탄까지 퍼부어져 몇 명의 몽고군을 더 쓰러트린 후에야 싸움은 끝이 났다. 몽고군을 치고 말을 뺏은 자는 바로 장판수였고, 김화싸움에서 전몰한 장령들의 시신을 거둔 후 돌아오는 길에 몽고병과 접전하는 한기영을 만나 구하게 된 것이었다. 한기영은 가슴에 화살이 박힌 채 숨을 헐떡이면서도 장판수에게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이미 조정은 항복을 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입네까?"

오는 길에 피난민들을 통해서 삼전도의 항복소식을 들은 터라 장판수는 방금 전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기영을 대신해 다른 병사들이 앞 다투어 몽고병의 횡포를 알려주었다.

"들리는 말로는 몽고병들만큼은 겨울을 조선 땅에서 난다고 하더이다. 그렇다면 저들의 그릇된 행동을 바로 잡는 걸 누가 하오리까? 그런데도 병마사께서는 조정이 이미 항복을 했으니 경거망동을 하지 말라는 명만 내리니 통분을 금치 못해 이렇게 영장과 함께 진을 나와 싸우게 된 것입니다."

얘기를 들은 장판수도 화가 치밀어 오르긴 마찬가지였다. 장판수는 옆에 있던 차예랑에게 남병사 서우신의 진영으로 찾아가 보자고 말했다. 차예랑은 이런 일은 물어볼 것도 없다며 대답했다.

"이 일은 장초관의 말을 무조건 따르리다."

장판수는 우선 상처가 깊은 한기영을 말위에 태운 뒤 전사한 병사들의 시신을 한곳에 거두어 둔 채 서우신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서우신이라하면 남한산성에 있을 때 함경 감사와 함께 2만3천이나 되는 원군을 데리고 온다던 소문이 있었던 자인데 왜 꼼짝도 안하고 있었는지 확인도 해볼 겸 잘 되었습네다."

장판수는 장렬하게 전사한 홍명구와 윤계남을 생각하면 어릴 적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 대한 것처럼 가슴이 찢어질 듯 했다. 장판수가 비록 미관말직인 초관에 불과하고 서우신이 병마사라고 하나 벼슬의 높고 낮음을 떠나 수많은 병사를 거느린 채 움직이지 않았던 것을 강하게 따지고 들 각오가 그의 속에는 다부지게 들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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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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