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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 죽거든 너그 아배 옆에 묻지 말고 화장해라. 아배 묘도 파서 화장하고 그래야 너그들도 편하다.”
“….”
“내는 땅에 묻히는 거 싫다. 그냥 화장해서 산이고 바다에 훌훌 뿌리삐라. 내 마음대로 세상 어디든 돌아다니구로.”

폭탄선언입니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이런 말 한 번도 없으시던 어머니가 올해 들어 부쩍 마음 약한 말씀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툭툭 던지십니다. "하루를 살기가 여간 지겨운 게 아니다", "어디가 아프다" 하시는 말씀에 아무것도 해드릴 수가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송구한 모습만 보입니다.

▲ 김녕김공요한태득지묘
ⓒ 김병기
며칠 전 한식 때 아버지 산소엘 갔다 왔습니다. 매년 어김없이 설 명절, 추석과 한식 때 공식적으로 산소를 찾을 뿐만 아니라 더러 생각이 나면 가끔씩 들러보는 아버지의 산소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양산천주교묘지에 묻히신 지 벌써 19년째가 됩니다. 지금 고3인 딸아이가 태어나던 해에 돌아가셨으니 말입니다.

어머니 또한 홀로 되어 사신 날들이 이토록 색바랜 사진처럼 오랜 세월이 지났습니다. 남들은 부부가 오래도록 사랑하며 사는데 지아비 먼저 저 세상에 보내고 홀로 사시는 동안, 세월이란 게 참 허탈하기도 했을 것이고, 그 원앙처럼 사는 부부들이 부럽기도, 샘이 나기도 했을 것입니다.

지나가는 말씀으로는 언제나 혼자 사는 게 편하고 좋다고 하십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영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내 자신이 가만 생각해봐도 부부가 함께 해로를 하는 게 더 좋지 어느 누가 먼저 세상을 등진다는 것은 서로에게 아쉽기도 하고 힘든 일인 것입니다.

“문디, 영감탱이….”

말을 잇지 못하고 가슴 속에 금방 들어 찬 섭섭함 때문에 눈시울이 붉게 잡힙니다. 그렇게 문둥이 같은 영감이라고는 하지만, 때로는 입에 담지도 못할 말을 내뱉곤 하지만 당신의 속마음으로는 말할 수 없이 지아비가 보고 싶고 그리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아버지 나이 오십 다섯의 일입니다. 환갑도 지나지 않은 그 젊디젊은 나이에 세상을 버렸으니 당시 갓 오십 줄에 들어선 어머니의 서운함은 대단한 것이었겠지요. 그리 젊은 시절에 혼자가 되셨으니 혼자서 지내기가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너그 애비는 젊었을 때 한량이었다. 동네 여자들이 열이면 열, 모다 침 질질 흘리고 따랐제. 처음 죽었을 때는 누가 꽃도 자주 갔다가 꽂아놓더니만… 인자는 그 여자도 죽었는지 어쨌는지 통 꽃이 안 보이제?”

약간은 퉁명하게, 또 약간은 시기하는 투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랬습니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 사귄 여자가 있기는 있었던 모양입니다. 몇 해 동안 어김없이 명절 전에 산소를 찾아와서 꽃을 꽂아두고 간 여인이 과연 누구인지 궁금하게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렴풋이 그 여자가 누군지 알겠다고 말씀 하시면서도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으십니다.

“인자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한 번 가 봐야지.”

그러며 어머니가 따라 나섰습니다. 이때쯤 온 들판에 피어나는 쑥을 캐기 위한 목적도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쑥은 약으로도 쓰이고 쑥국을 끓여 먹으면 그 구수한 냄새와 맛이 일품이며 떡을 하기도 하는 등 여러 음식 재료로 사용됩니다.

요즈음은 집집마다 성능 좋은 냉장시설을 갖추고 사는 터라 쑥을 겨울까지 저장하였다가 겨울에 숙취 해소를 위한 해장국 대용으로 국을 끓여 먹기도 합니다. 겨울에 먹는 쑥국이 일품입니다. 쑥이란 놈은 이렇게 사람에게 좋은 것이다가도 묏등에 피어나면 천지에 무용지물이 됩니다.

아버지 산소에는 거짓말 같이 쑥이 나 있지 않았지만 앞과 뒤쪽 그리고 옆의 남의 산소들은 모두 쑥이 한가득 피어나서 난리가 났습니다. 쑥이란 놈은 그 생명력이 질기기도 할 뿐더러 씨앗을 퍼뜨려 온 천지로 퍼져나가는 팽창력이 무섭습니다.

뿌리는 또 얼마나 깊숙이 내려 박히는지 쑥이란 놈이 묏등 위에 퍼지는 날에는 묘를 다 망칩니다. 남아나는 잔디가 없을 뿐더러 그 쑥을 뿌리 채 뽑아버려야 다시 안 돋아나기 때문에 온통 퍼진 쑥을 다 뽑아버리면 산소가 또한 엉망진창이 됩니다.

아버지 산소를 손보는 것이 아니라 남의 집 산소를 한참 동안 손봐주고 나서 아버지 산소에 술을 한 잔 올려 절을 합니다.

“자식들 잘 살구로 잘 좀 돌봐주소.”

이게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들의 자식들에 대한 영원한 기도일 것입니다. 집에서 제사를 지낼 때도 그랬습니다. 틈만 나면 자식들 잘 되라고 기도를 올립니다.

▲ 쑥을 캐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 김병기
공동묘지를 내려오는 도중 한쪽에 차를 대고 들판으로 내려가 쑥을 캐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미리 가져온 비닐 봉투를 한 손에 쥐고 다른 한 손에는 칼을 쥐고 어머니, 며느리, 나 이렇게 각자 흩어져 캐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약 한 시간 정도만 캐고 휑하니 집으로 가려 했지만 지천으로 깔린 쑥들을 보고 일어서려니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배가 고픈 것도 참아가며 예상 시간을 두 시간 이상이나 더 넘겨버렸습니다.

“성재 아빠, 이제 가지요. 배도 고프고…. 어머니는 아직도 배 안 고프세요?”

제 집사람의 성화에 못이겨 살며시 일어섰는데 쑥을 캘 때 까지는 괜찮았던 배가 고팠습니다. 시장기가 못살게 구는 찰나에 제 집 사람이 덕신(경남 온산면에 소재)의 처가로 가서 점심을 하고 집으로 내려가자고 말합니다.

“야야, 안 된다. 사돈한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 그라고 빨리 집에 가서 내 약도 먹어야 되고….”

어머니는 한사코 제 처가에 가는 걸 반대합니다. 어머니는 괜히 가서 민폐를 끼쳐드려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 집사람이 이미 연락을 해놓은 상황이라 아니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서 부리나케 차를 몰아 처가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점심을 잘 얻어먹고 장모님이 채마밭에서 거둔 파며 여러 채소들을 얻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시집간 딸은 다 도둑이라 했던가요.

장인 장모와 함께 식사 후에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어머니는,

“인자, 죽어야지예. 더 살아서 뭐 합니까? 자식들한테 폐만 끼치고. 이 만치 살았으이 많이 살았지예.”

아버지 산소를 찾은 지가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 지금에도 죽으면 화장해 달라는 어머니의 말이 내 귓전에서 달아날 생각을 않습니다. 그러던 중 오늘 제 손전화에 메시지가 하나 날아들었습니다. 초등학교 동기 놈이 어제 죽었다는 연락입니다.

‘부고, 12회 동기 김xx 10일 사망. 11일 동기회 문상 19시 30분까지 영락공원 장례식장.’

애초艾草
-김병기

칠순이 넘은 그녀가, 마흔 며느리가 바람 속에서 쑥을 뜯는다.
몇 발짝 앞 그녀는
흰머리 흩어지는 건너 저편에서 생머리로 사내 젖먹일 들쳐 업고
곯은 배로 삶을 뜯고 있었다.
언제나 손끝에 맺히는 세월은 멸치젓같이 비릿하거나 허기졌다.
젖을 불려야 하는 것은 그녀의 몫이었지만
비쩍 마른 젖퉁이는 이미 그녀의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낮의 봄볕이 따가운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가닥가닥 움츠려드는 저물녘
집을 향해 떼는 발걸음은 하늘 아래 칭칭 감긴 그냥 그대로
꿈쩍도 않고 무겁기만 한 것이었는데,
삶은 언제나 그랬다.
퉁퉁 부은 눈두덩의 다섯 등살에 못 이겨
한 줌의 쌀에 쑥을 섞어 안치곤 밤하늘 한없이 쳐다보았을 것이다.
파랑 같은 삶이 온 종일 그녀 앞에 앙버티고 서 있어
허리께며 무릎께에 박힌 서느런 뼈마디들을
하나 둘 뽑아내곤 뚝뚝 분질러 남몰래 가슴 속 깊이 묻었을 것이다.
지난 기억들이 불쑥불쑥 돋아나서는 소리 소문도 없이 지는데
며늘아기가 배고프다 한다.
어느새
봉지 한가득 어린 쑥들이 세상 바깥으로 목을 내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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