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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리아 에보라(Cesaria Evora)'라는 가수가 있다. 포르투갈 가수인 그녀는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이미 3천만장이 넘는 앨범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월드뮤직계의 스타다. 전 세계를 도는 그녀의 순회공연은 가는 곳마다 매진을 기록하는데, 흔치 않게 매진이 되지 않은 나라가 있었다고 한다. 바로 한국이다. 아마 한국인들은 대부분, 나와 마찬가지로, 그녀가 누구인지도 모를 것이다.

예전보다 미국 팝송의 위력이 크지는 않지만, 아직도 우리는 지금 미국에서 인기있는 가수 이름 정도는 알고, 아는 노래도 다 몇 가지씩은 있다. 그러나 지금 유럽 쪽에서 어느 가수가 인기인지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프랑스의 샹송이나 포르투갈의 파두 같은, 미국 이외 나라의 대중가요 곡을 몇 곡이라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이 정도 되면 우리나라에서는 직업 음악평론가 아니면 상당한 음악 마니아일 것이다.

물론 우리가 어떤 가수를 좋아하고 어떤 음악을 듣는지는 우리 자유다. 꼭 유럽이나 남미 쪽 대중가요를 더 즐겨 들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음악이든 영화든 만화든 간에, 우리가 미국이나 일본 같은 극히 일부 나라 외에,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의 대중문화들을 풍부하게 받아들일 기회가 있었는가?

음반 가게에서, 이탈리아든 쿠바든 인도 음악이든 간에, 그 음반들의 양이 미국 쪽 음반의 10분의 1이라도 되는가? 1년 중에 극장에서 개봉하는 아프리카나 아랍권 영화의 수가 할리우드 영화의 100분의 1이라도 되었는가? 왜 세계적으로는 수백만부가 팔린다는 유럽의 유명만화가 우리나라에서는 책 구하기도 힘든 건가?(단행본으로 간간이 나오기는 하지만, 판매량도 시원찮고, 무엇보다 꾸준하게 나오지 않는다.)

신문에서 가끔 유럽 등의 만화를 소개하는데, '전세계적으로 수백만부 팔린' 식의 표현에 어리둥절해 한 사람이 나 혼자만인 건 아닐 것 같다(우리나라에선 책 표지조차도 구경 못 한 건데!).

우리의 외국 대중문화 수입은, 이렇게 너무나 극히 일부 나라에만 치우쳐 있다. 대부분 미국이 차지하고 있고, 최근에는 일본 쪽도 꾸준하게 유입되고 있다. 그러나 그 외, 유럽이나 남미, 아프리카와 아시아 쪽의 대중문화는 우리에게는 거의 생소하기 짝이 없다.

당연한 일이다. 평소에 접할 기회조차 없었으니. 접할 기회도 없는데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애초에 외국 문화를 받아들일 기회조차도 한두 가지로 제한된 것을, 마치 다양한 기회가 있는 듯이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화에게 있어, '다양성'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다양한 느낌과 사색을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하고 다양하게 수용하는 데서 문화의 생명력이 나오는 것이다. 다양한 창조를 위해선, 우선 외부에서의 문화의 유입도 다양성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극히 세계의 일부분 지역만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우리의 문화는 속박되고 다양성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지-특히나 미국의 패권주의적인 문화정책에 예속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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