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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눈 내린 고향마을 풍경
ⓒ 김도수
겨울철이 되면 고향 진뫼마을은 논배미에 납작 깔려 있는 볏짚들만 불어오는 겨울바람에 흔들거릴 뿐 마을은 너무나 조용합니다.

마을에 들려오는 소리라곤 나뭇가지 위에서 ‘짹짹’ 소리 지르며 떠드는 참새 떼와 마을 앞 농로용 시멘트 다리 수문 구멍에서 졸졸 흐르는 섬진강 강물소리뿐, 마을은 깊은 산중에 있는 산사의 겨울처럼 너무나 조용하기만 합니다.

마을사람들은 겨울철이 되면 농한기가 되니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아침식사가 끝나면 곧바로 마을 회관으로 모이기 시작합니다.

▲ 마을회관 현관의 신발들
ⓒ 김도수
회관 방에는 지난 가을, 모 방송국이 기증한 대형 텔레비전이 놓여 있습니다. 진뫼마을은 두메산골이라 그런지 그 동안 텔레비전 화면이 깨끗하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유선방송 라인이 설치되어 여러 채널이 깨끗한 화면으로 잘 나오니 마을 사람들은 하루 종일 텔레비전 앞에 모여 긴긴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회관 방에서 점심과 저녁을 공동으로 지어먹습니다. 쌀은 돌아가면서 가지고 오고 반찬은 “누구네 집에 김치가 맛있게 익었네, 싱건지 맛이 끝내주네, 청국장이 맛있게 떴네” 소문이 나면 들고 옵니다. 또 어떤 날은 “우리 집에 아들이 왔다 갔다”며 고기와 생선을 들고 오기도 합니다. 그렇게 부식을 조달하며 마을 사람들은 겨우내 회관 방에 모여 점심과 저녁을 공동으로 지어 먹습니다.

연로하신 분이 댁에 있는 어머니들은 끼니때가 되면 식사를 차려드려야 하므로 먼저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 외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회관 방에 모여 공동으로 밥을 지어먹습니다.

어머니 홀로 사시는 분들은 집에서 혼자 밥을 해 드시려면 심란하기도 하고 밥맛도 없을 텐데 마을 사람들과 함께 밥을 해먹으니 밥맛도 좋고 식사시간도 즐겁습니다. 또 회관 방에서 여럿이 모여 놀면 적적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홀로 사는 집에 하루 종일 보일러를 틀지 않아도 되니 비싼 기름 값을 절약해서 좋습니다.

▲ 겨울철이면 무를 땅 속에 저장해 놓고 먹는다
ⓒ 김도수
연세 드신 분들은 저녁을 먹고 나면 어둡기 전에 집으로 돌아갑니다. 밤늦게까지 함께 놀면 좋을 텐데 밤눈이 어두워 집으로 돌아가다 넘어지면 큰일 이기 때문에 일찍 집으로 돌아갑니다. 마을 사람들과 밤늦게까지 이야기 하며 함께 놀지 못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어머니 아버지 발걸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긴긴 겨울밤을 홀로 지새울 일이 너무 적적하기 때문입니다.

주말이면 고향에 돌아가 밭농사를 짓고 사는 나도 겨울철이 되면 농한기가 되어 특별히 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말마다 고향에 가지 않았는데 맛있게 익은 싱건지가 떨어져 오랜만에 찾아 갔습니다.

▲ 눈 덮인 김장독
ⓒ 김도수
싱건지를 김치냉장고 용기에 퍼 담아 놓고 마을 사람들 안부가 궁금해 아내와 함께 회관으로 갔습니다. 회관 방에는 어머니들이 빙 둘러앉아 민화투를 치고 있고 아버지 몇 분은 벽에 기대어 텔레비전을 보고 있습니다.

진뫼마을은 지금 16가구에 34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 중 연로하신 분이 네 분 계시고 대부분 60이 넘으신 분들입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매일 회관 방에 나와 노는 것은 아닙니다. 불규칙적으로 나오시거나 아예 나오지 않은 분도 있습니다.

홀로 농사지으며 사시는 어머니 몇 분이 보이지 않습니다. 농한기 철을 맞이하여 서울 아들네 집으로 올라간 것입니다. 자식들이 “농한기 철이나 서울로 올라와 손자들 재롱도 보고 자식들 곁에서 편히 쉬다 봄 되면 다시 내려가라”고 간청하기 때문에 자식들 집으로 모두 떠난 것입니다.

▲ 마을 앞에 서 있는 정자나무
ⓒ 김도수
회관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을 사람들은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 대해서 그런지 몹시 나를 반깁니다.

“아이고메! 도수, 언제 왔능가? 참말로 오랜만이네.”
“예, 조금 전에 왔습니다.”
“근디 눈이 겁나게 많이 왔는디 어치게 왔데아. 눈 많이 오면 차길 미끄러웅게 요럴 때는 댕기지마. 잉”
“여그만 눈이 요로케 많이 내려부렀고만이라우. 참말로 진뫼가 꼴짝은 꼴짝인가벼. 곡성쯤 올라옹게 눈이 보이기 시작허도만 여그 옹게 겁나게 와부렀네요.”
“밥 안 묵었으면 돼아지 찌개에다 밥 좀 묵제 그려. 돼아지 찌개 쌈박허니 맛있어.”
“아니라우, 아까 큰집서 많이 묵었고만이라우.”

“근디 100원짜리 화토 치요?”
“아니, 우리들이 뭔 돈이 있다고 돈내기 화토를 치겄어.”
“어저께 한수양반 큰아들, 작은아들, 며느리, 딸들이 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한턱 내고 갔고만. 요것 조것 몽땅 사 들고 와서 한 이틀은 묵어도 남아 불겄어. 그래서 오늘 저녁 남은 반찬에 저녁밥 짓기 화토를 치고 있어. 저녁에 밥 짓는 사람 미리 정할라고 화토를 치고 있는 것여.”

▲ 눈 내린 고향마을이 멀리 보인다
ⓒ 김도수
민화투를 치고 있는데 글씨를 쓰고 읽을 줄 아는 담배 집 아줌마가 화투 점수를 노트 맨 뒷면 표지에 적어 내려가고 있습니다. 큰 글씨로 점수를 써 내려간 담배 집 아줌마는 “300점 내기를 치는데 왜 그렇게 점수가 안 나는지 한 시간쯤은 친 것 같은디 아직도 날라먼 멀었다”며 노트 표지 앞면에 다시 화투 치는 사람들 이름을 적고 있습니다.

윗목에 놓인 밥상 위에는 콩나물과 두부를 넣어 끓인 돼지찌개가 먹음직스럽게 놓여 있습니다. 밥을 안 먹었다면 돼지찌개 한 그릇 덜어서 맛있게 말아먹고 싶었으나 배가 불러 눈요기만 하고 말았습니다.

밥상 아래는 마을 어르신들께서 드신 대두병이 한 병은 절반쯤 남아 있고 한 병은 텅 비어 있습니다. 알싸하게 혀끝을 자극하는 소주 한 잔, 맛있게 끓인 돼지찌개에다 한 잔 쭉 들이켜고 싶었으나 몰고 온 차 때문에 침만 꼴깍꼴깍 삼키다 방벽에 기대어 텔레비전만 바라보고 계시는 아버지들께 소주병을 들고 다가갔습니다.

▲ 눈이 내려 기분이 좋은지 송아지가 마을 앞에 나와있다
ⓒ 김도수
“술 한 잔 드실라요? 겨울철이면 얼매나 심심하세요. 마을에 남자들이 몇 분 없응게 겁나게 쓸쓸하지요? 잉.”

“인자 마을에 남자들 몇 명 안 남아부렀어. 벌써 내가 마을에서 남자로는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이 묵어부렀는디 뭐. 세월이 참말로 근방여. 내 우게로 겁나게 사람들이 많았는디 어느 날 뒤돌아봉게 요로케 되아불더랑게. 이 집 저 집 왁짜찌끌허게 떠들며 놀던 때가 엊그제 같은디 인자 마을이 너무나 조용해져 부렀어. 봄 되면 들에 나가 일이라도 헝게 하루가 빨리 가분디 겨울철이면 일도 없응게 하루 종일 심심히 죽겄어.”

밖으로 나오니 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아내는 퍼 담아 놓은 싱건지 용기를 비닐봉지 속에 넣고 마을을 빠져 나가려고 서두르기 시작합니다.

눈이 내리자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던 참새 떼들이 더욱더 ‘짹짹’ 소리를 지르며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강물에 소리 없이 내려앉으며 사라지는 눈발은 강물의 깊이를 더하며 남해로 흘러갑니다.

마을이 너무나 고요해 자동차 가속 페달을 밟는 것조차 미안해 나는 천천히 달리며 마을을 빠져나갑니다.

▲ 마을 앞을 휘돌아 나가는 섬진강
ⓒ 김도수
내리는 눈발은 굵어지기 시작하고 눈 내리는 마을을 뒤로 하며 나는 다시 삶의 터전으로 돌아갑니다. 한때는 마을 회관 방이 떠나갈 정도로 고함을 질러대며 회의를 하던 아버지들. 이젠 다 떠나고 몇 분만이 하얀 머리카락을 방벽에 기대고서 방 가운데 앉아 민화투를 치고 있는 어머니들 모습이나 바라보아야 하는 마을이 되어버렸으니 골목마다 생기 넘치던 마을은 이제 너무나 적막하기만 합니다.

지금쯤 고향마을 회관 방에 불은 꺼지고 마을 앞 농로용 시멘트 다리 수문 구멍에서 졸졸 흐르는 섬진강 강물소리만이 고향마을을 밤새도록 지킬 것입니다.

불 꺼진 고향마을에 언제 다시 집집마다 불은 켜지고 노랑나비 한 쌍 훨훨 춤을 추며 마당을 빙빙 도는 그런 햇살 고운 찬연한 봄이 내 곁에 찾아오려는지 진뫼마을의 겨울은 너무나 길게만 느껴집니다.

덧붙이는 글 | 김도수 기자는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고향마을로 돌아가 밭농사를 짓고 있고 전라도닷컴(http://www.jeonlado.com/v2/)에서 고향 이야기를 모은 <섬진강 푸른 물에 징검다리>란 산문집을 내기도 했습니다. 

이 글은 전라도닷컴(http://www.jeonlado.com)에도 송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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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정겹고 즐거워 가입 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염증나는 정치 소식부터 시골에 염소새끼 몇 마리 낳았다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모두 다뤄줘 어떤 매체보다 매력이 철철 넘칩니다. 살아가는 제 주변 사람들 이야기 쓰려고 가입하게 되었고 앞으로 가슴 적시는 따스한 기사 띄우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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