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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지쳐 있었나봐 쫓기는 듯한 내 생활 /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몸을 부대어보며
힘들게 올라탄 기차는 어딘고하니 춘천행 / 지난일이 생각나 차라리 혼자도 좋겠네!

춘천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 오월의 내 사랑이 숨쉬는 곳
지금은 눈이 내린 끝없는 철길위에 / 초라한 내 모습만 이 길을 따라가네! 그리운 사람

차창가득 뽀얗게 서린 입김을 닦아내 보니 / 흘러가는 한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고
그곳에 도착하게 되면 술 한 잔 마시고 싶어 / 저녁때 돌아오는 내 취한 모습도 좋겠네!

춘천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 오월의 내 사랑이 숨쉬는 곳
지금은 눈이 내린 끝없는 철길위에 / 초라한 내 모습만 이 길을 따라가네!

그리운 사람 그리운 모습


▲ 2005년 겨울 가뭄으로 물이 많이 빠진 소양호 풍경
ⓒ 이인우

가수 김현철의 노래 <춘천가는 기차>의 가사다. 외로움에 젖은 과거를 회상하며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싣고 무작정 떠나는 춘천 여행을 노래하고 있다.

춘천은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가장 손쉽게 갈 수 있는 여행지 중 한 곳이다. 그곳에 가면 무언가 모를 낭만이 있을 것 같고 옛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날 것만 같은 그런 곳이다. 그래서인지 춘천행 기차는 늘 젊은 연인들과 삼삼오오 떠나는 대학생들의 모습으로 가득하다. 나 홀로 춘천행 기차에 오른 설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설 차례를 지내고 남은 연휴를 보내기 위해 오랜만에 춘천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춘천역에 도착해 바로 소양강댐으로 가는 좌석버스에 올랐다. 버스의 종착점인 소양강댐 근처에 도착하자 버스에서는 관광버스에서나 나올 법한 관광지 안내가 흘러나왔다. 소양강댐이 만들어진 목적과 시기, 규모, 그리고 주변 경관까지 마치 관광 가이드의 친절한 안내를 받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춘천에 여행 왔던 사람들이라면 소양강댐 정도는 다들 올라와봤으리라. 그러나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청평사' 방문은 머뭇거리게 마련이다. 나 역시 서너 차례 소양강댐에 왔으나 이번에 처음 청평사 방문을 결정했으니 말이다.

설 연휴에 추운 날씨 탓인지 선착장에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청평사로 떠나려는 배 안에는 이미 20여명의 승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출발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왕복 4천원하는 뱃삯을 지불하고 간단한 연락처를 기입한 후 나도 청평사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얼마 전 텔레비전 뉴스에서 겨울가뭄이 심해 올해 농사 차질이 예상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소양강댐에 담수된 물의 양을 직접 보니 올 겨울가뭄이 실감났다. 눈대중으로도 약 10여m 이상 낮아진 모습이었는데 그 물의 색깔만큼은 푸르고 시원했다.

그렇게 낮아진 소양강의 담수를 보면서 청평사를 향해 가다가 산등성이에 걸쳐 있는 물체 하나를 발견했다. 마치 돌로 만든 궤짝 모양이었는데 위에 덮개가 덮여져 있는 모습이 흡사 석관(石棺)의 모습 그대로였다.

▲ 낮아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석관(石棺)으로 보이는 물체
ⓒ 이인우
멀리서 카메라로 사진 몇 컷을 찍어 확인해 보니 흡사 뚜껑이 덮여진 모습이었다. 만약 누군가의 석관이 맞다면 소양호 관리사무소나 인근 문화재 관련 단체에서 수거해 조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청평사로 향했다.

젊은 연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고찰?

청평사까지는 뱃길로 약 10여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소양호의 갈수로 인해 청평사로 가는 선착장은 원래 있던 선착장의 위치보다도 약 500여m나 밑으로 내려와 있었다.

배에서 내려 청평사로 향하는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으나 동장군의 바람은 여행객들의 옷깃을 여미게 했다. 설 차례를 올리고 가족 단위로 또 친구들과 함께 온 그룹과 연인들의 무리를 뒤로 하고 나는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는 서둘러 청평사로 발길을 옮겼다.

▲ 청평사 전경. 가운데 보이는 문이 보물 164호 회전문이다.
ⓒ 이인우
청평사는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 오봉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고찰(古刹)이다. 시원(始原)을 쫓아보면 고려시대에까지 이르는 고찰이지만, 현재는 여행지나 데이트 코스로 더 많이 알려진 곳이다.

한 답사 관련 서적에서는 청평사를 한국의 수많은 고찰 중에 젊은 연인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곳이라고 설명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그러나 청평사 입구에는 다른 고찰의 사하촌(寺下村)과는 사뭇 다른, 한적한 모습을 보인다.

청평사를 오르는 길은 오봉산에서 내려오는 계곡의 개울을 따라간다. 개울을 오른쪽으로 하고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여행객의 시선을 잡는 첫 번째 볼거리가 바로 구성폭포다. 폭포라고 하기에는 조금 실망스러운 규모일지는 모르나 여름이면 주변 경관과 어우러진 폭포의 시원한 물줄기가 여행객을 이끌기에 손색없어 보인다. 겨울이라 흘러내리는 폭포수 대신 빙벽이 된 구성폭포를 카메라에 담고 계속 청평사로 발길을 옮겼다.

▲ 좌로부터 구성폭포, 평양공주, 삼층석탑 일명 공주탑
ⓒ 이인우

당나라 공주와 상사뱀의 슬픈 전설

청평사에는 공주와 상사뱀에 얽힌 슬픈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당나라의 평양공주에게 사랑하는 청년이 있었다. 그러나 청년은 당태종의 노여움을 사 그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다. 죽어서도 공주를 잊지 못한 청년은 상사뱀이 되었고 공주의 몸을 휘감고 떨어지질 않았다. 그 탓에 공주는 점점 야위어 갔으나 달리 해결 방법이 없었다. 공주는 중국의 여러 절을 찾아다니며 불공을 드렸으나 허사였다.

이때 신라에서 온 구법승의 말을 듣고 공주는 이곳 청평사에까지 오게 됐는데, 그 뱀이 청평사에서 벼락을 맞아 죽으며 공주의 몸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공주는 뱀의 시신을 거두어 정성껏 묻어주고 본국의 아버지께 이 사실을 얼렸다. 아버지 당 태종은 재상 춘축랑에게 금덩어리 3개를 보내 법당을 세우게 했고 공주는 구성폭포 위에 삼층석탑을 세우고 돌아갔는데 이때부터 이 탑을 공주탑이라 부르게 되었단다.

계속해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니 길 왼쪽에 청평사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진락공(眞樂公) 이자현의 부도탑과 그 오른편에 영지(影池)가 보인다. 그저 별스러울 것 없어 보이는 이 연못은 이자현이 청평사 주변에 방대한 정원을 가꾸면서 자연경관을 최대한 살려 만든, 지금까지 밝혀진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고려정원의 한 흔적이다.

사다리꼴로 가지런히 석축을 쌓고 바로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을 끌어들여 만든 연못으로 청평사가 있는 오봉산이 이 연못에 비치도록 했다고 해서 영지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청평사를 찾아 길을 오르다가 자칫 그냥 지나치게 될지도 모르는 이자현의 부도탑과 영지를 잠시나마 둘러보는 것은 이곳을 찾는 여행객이라면 꼭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 청평사의 일주문을 대신하는 소나무 두 그루
ⓒ 이인우

회전문은 중생을 위한 '마음의 문'

청평사는 한국전쟁 당시 회전문 일부를 제외하고는 건물 거의 모두가 소실되었다가 70년대쯤에 전각들을 짓고 회전문을 보수했으며 범종각과 요사채를 앉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건물은 고찰이라고는 하나 그 역사를 가늠하기가 어려울 만큼 새롭기만 하다. 회전문 앞에는 두 그루의 소나무가 일주문을 대신하고 서 있는데 꽤나 인상적이다.

▲ 보물 제 164호 청룡사 회전문. 축대와 기둥만이 예전 그대로다.
ⓒ 이인우
많은 사람들이 청평사의 회전문에 대해서 들어봤으리라. 보물 164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이 회전문은 조선 명종 때 보우대사가 중건했으나 한국전쟁 때 불타 제 모습을 잃고 축대만이 남았던 것을 다시 복원한 것이라 한다.

회전문이라고 해서 얼핏 빙글빙글 돌아가는 문을 연상했던 나는 일반 여느 사찰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고는 조금 실망한 것은 사실이다. 여행지에서 돌아와 책을 찾아보니 청평사의 회전문은 중생들에게 윤회의 전생을 깨우치기 위한 '마음의 문'이라는 사실에 또 한번 답사와 여행의 보람을 찾는 기회가 되었다.

회전문을 지나 대웅전으로 시선을 향하면 새로 만들어진 건축물들로 조금 비좁은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대웅전 양 옆으로 지붕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에 세워진 건물로 대웅전 앞은 마치 어느 양반집의 사랑채로 둘러싸인 좁은 마당인 듯 폐쇄된 공간감을 가지게 한다. 원래 있던 석축과 기단 위에 건물을 복원했다고는 하지만 조금 비좁다는 느낌은 지워지지 않는다.

지금 대웅전으로 명명된 이곳은 원래 국보로 지정된 극락전이 있었던 곳이란다. 그런데 6.25 전쟁으로 극락전이 소실되어 그 자리에 오늘의 대웅전을 세웠다고 한다. 그 이름이야 어찌됐든 그곳에 모셔진 불상과 그곳에서 합장하고 기도하는 중생의 마음은 한결같으리라.

▲ 공굴림으로 미려하게 조각된 대웅전 계단의 소맷돌
ⓒ 이인우
대웅전 정면에 있는 소맷돌은 예전 그대로의 원형으로 무지개처럼 공굴린 정교한 조각 솜씨가 매우 인상적이다. 세월의 시간을 말해주듯 대웅전 소맷돌에는 이끼와 바람의 흔적이 남아 있는 반면 얼마 전 새로 지은 전각의 계단에 설치한 대웅전의 그것을 흉내내어 만든 소맷돌은 기계로 반듯하게 조각해 낸 모습이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 대웅전 뒷쪽에 있는 극락보전
ⓒ 이인우
청평사 여행은 많은 기대를 가지게 했다. 비록 날씨가 너무 추워서 생각했던 만큼의 치밀한 여행은 되지 못했지만 혼자 떠나는 겨울여행의 추억을 간직하고 돌아온 것으로 만족한다. 또 한 가지 '청평사 회전문'의 비밀을 깨우친 것도 이번 여행의 소중한 소득이다.

덧붙이는 글 | 청평사 가는 길

◎ 춘천 => 소양강댐 

춘천역에서 12-1번 또는 춘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 11, 12번 을 타면 소양강댐까지 갈 수 있다. 만약 택시를 타고 간다면 약 1만5000 ~ 2만원 정도를 예상하면 된다. 

◎ 소양강댐 => 청평사 선착장 

소양강댐에서 100여m를 내려가면 선착장이 나온다. 청평사로 향하는 배편은 30분 간격. 왕복 4000원. 

◎ 청평사 선착장 => 청평사 

배편으로 청평사 선착장까지 대략 10분 정도 걸리며 선착장에서 청평사까지는 다시 30분 정도를 걸어야 도착할 수 있다. 청평사 관람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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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그리고 조선중후기 시대사를 관심있어하고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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