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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인숙
3년 전 오스트리아의 낯선 도시에서 3주를 보낼 기회가 있었다. 내가 묵었던 집은 도심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었는데, 우리 식으로 말하면 소위 신도시라고 할 만한 곳이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그저 일에서 해방되었다는 기분에 도취되어 할 일없이 집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기만 했다. 비가 온 날이 며칠 있었지만 대개는 날씨가 맑아서 집 근처를 걷거나 때로는 용기 내어 좀 멀리 가보는 모험도 해볼 만했다.

구획이 잘 된 거리에 들어선 네모반듯한 집들이 비슷비슷하기도 하고, 거리 이름도 낯설어서 좀 멀리 갔다가는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한번은 집에서 직선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낮은 울타리로만 구분되는 주택들이 겉은 비슷해 보이지만 실은 제각기 집주인의 기호에 따라 다르게 꾸며져 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됐다.

정원수만 해도 장미 일색인 집이 있는가 하면, 이름 모를 갖가지 활엽수들이 숲처럼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집이 있었다. 아이들이 있는 집인 듯 나무들 사이에 그네가 매어져 있거나 물이 반쯤 차있는 접이식 수영장이 펼쳐져 있는 곳도 있었다. 하다못해 울타리 근처에 세워놓은 우편함마저도 제각기 다른 빛깔과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직선이 끝나고 옆으로 꺾이는 막다른 곳에 이르렀을 때 그 집이 있었다. 엄밀히 말해, 그 집은 조금 전 지나쳐 온 다른 집들보다 더 아름답다거나 기이하다거나 눈길을 끌 만큼 잘 손질된 정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잘 정돈된 이웃집들과 대조적으로 어떤 방만함 같기도 하고 무심함 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다. 아마 주인의 손이 오랫동안 가지 않은 듯 갈대 같기도 하고 쑥대 같기도 한 식물들이 가슴 높이까지 자라 있는 정원은 바랜 수채화 같은 인상을 풍겼다. 누군가 살고 있기나 했을까?

집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것이 싫증나면 도심에 있는 책방에서 모르는 활자들을 구경하거나 장미 기르기며 케이크 만들기, 창고 만들기 등 취미생활을 다룬 컬러 화보집을 펼쳐보며 시간을 보냈다. 어떤 날은 내가 아는 독일어 소설이 몇 권이나 있나 세어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이 그 때 나의 인생 사용법이었던 셈이다.

조르주 페렉의 『인생사용법』은 『사물들』에 이어 내가 두 번째로 읽은 그의 책이다. 그러나 이 책으로 나를 이끈 것이 몇 년 전 나온 『사물들』에 대한 기억의 힘만은 아니었다.
어렴풋이 남아있는 기억이란 변형과 왜곡을 벗어날 수 없는 법이다. 인생은 포크나 나이프처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그 자체라는 고정관념에 묶여있는 나로서는 이 제목이 주는 어떤 방자함에 대한 복수심에서 첫 장을 펼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은 다른 이들과 구별되는 나만의 영역을 남긴다'

거의 10년에 걸쳐 쓰인 이 책은 『소설들』이란 부제가 붙어 있고 1976년 6월 23일 오후 8시 무렵, 시몽클뤼베리에 거리 11번지 지하 2층과 지상 8층 짜리 건물에 들어있는 99칸의 방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시간과 공간이 고정되어 있기는 하나 실제로 여기서 다루어지는 이야기는 이런 시간과 공간의 편협함을 훌쩍 뛰어넘는다.

가령, 이야기의 중심인물 중 하나인 바틀부스는 지금 막 439번 째 퍼즐을 맞추다가 숨을 거둔다. 그러나 바틀부스가 여기 시몽클뤼베리에의 아파트에서 숨을 거두는 이 순간까지는, 그의 종조부 제임스 셔우드가 1870년에 호흡기 환자를 위한 젤리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에 힘입어 유니쿰(Unicum-세상의 유일한 진귀품을 찾는 일) 추적에 몰두하다 희대의 사기꾼들에게 가짜 성배를 사는 사실들이 선행해야만 한다.

또 제 83장은 지금은 화가 위팅의 아틀리에로 꾸며진 다락방 12호에 1949년까지 오노레 부부가 살았는데, 그 부부가 일해 주었던 대법관 당글라르 부부의 도둑질이 어떻게 들통 나 감옥에 가게 됐는지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식이다. 1층에 있는 마르시아 부인의 골동품 가게도 전 주인인 마구 제조인 알베르 마시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마시는 신기록을 세운 자전거 경주자였으나 운이 안 따라 포기하고, 자신 때문에 사고를 당해 얼굴이 흉측하게 변한 마르게를 자기 누이동생과 결혼하게 만든 인물이다.

러시아 출신의 여자 성악가, 낙태한 무용수, 처가에 얹혀사는 젊은 부부 이야기에서 퍼즐 제작자 윙클레의 아내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마치 현재의 시간과 공간은 하나의 점에 불과하지만 이전의 무수한 점들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눈여겨볼 만 한 것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우리의 방 한구석에 무심하게 놓여 있는 사물들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곤 한다는 것이다. 마치 '생명 없는 사물들을 움직여 그 속에 각인된 우리 삶을 되살리는 것을 목표'로 하듯, 우리 삶의 말없는 증인들일 수밖에 없는 식당, 부엌, 욕실 등에 놓여있는 사소한 사물들에 대한 섬세하고 빈틈없는 묘사가 사람 이야기에 앞선다.

'같은 건물 주민들은 서로 몇 센티미터 거리를 두고 살고 있으며 단지 벽 하나가 그들을 갈라놓는다. 수도를 틀거나 변기에 물을 내리거나 불을 켜거나 식탁을 차리는 동일한 동작을 동시에 행하며 층에서 층으로 건물에서 건물로 그리고 거리에서 거리로 반복되는 수십 가지 생활 습관들을 동시에 수행한다.' 그러나 이 공통 사용법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구별되는 독특한 어떤 영역을 남겨두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65억 인구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인생을 '사용하고' 있을 것이며 시몽크뤼벨리에 거리 11번지의 아파트 99칸 방들이 보여주는 장면들 역시 그 일부분일 따름이다. 책을 덮으면서 나는 어쩐 일인지 3주간의 휴식 동안 걸었던 그 낯선 길들과 반듯한 집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직선거리가 끝나는 곳에 버려진 듯 서 있던 그 집을 생각했다.

그 집들에는 어쩌면 바틀부스가, 윙클레가, 그리고 모렐레가 살고 있었을 것이다. 옆으로 나를 스치듯 지나간 그 책방의 손님들 중에는 시노크가, 알타몽이, 모로가 있었을 것이다. 조르주 페렉은 천재적 방식으로 우리 인생의 사용법 몇 가지를 보여주었다. 수많은 인용과 목록, 유쾌하고도 절망적인 이야기와 수준 높은 위트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지적 체험이다. 이 굉장한 책을 읽는 데 내 인생 일부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준 출판사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참여연대 정기간행물 [아름다운사람들이 만드는 참여사회]신년호에 실린 글입니다.


인생 사용법

조르주 페렉 지음, 김호영 옮김, 문학동네(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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