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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오후 민교협 소속 100여명과 민변 소속 30여명 등 130여명의 교수와 변호사가 서울 명동성당부터 광화문 네거리까지 두시간 동안 국가보안법 연내폐지를 촉구하는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동영상 화면 캡쳐)
ⓒ 오마이뉴스 김호중

60년 4.19혁명 당시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민주화 시위를 벌였던 청년학생들이 교수가 되어 다시 광화문 거리에 섰다. 44년만이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이하 민교협·공동대표 김세균외)는 28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부터 광화문 네거리까지 두시간 동안 국가보안법 연내폐지를 촉구하는 거리행진을 벌였다. 이번 거리행진에는 민교협 회원 100여명을 비롯,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원 30여명 등 모두 130여명이 참여했다.

대학교수들 "국가보안법 다시는 설 수 없도록 하자"

오후 3시경 명동성당 들머리를 출발한 교수단 행렬은 북적이는 명동거리 한복판을 지나며 "국가보안법 폐지하여 민주개혁 실천하자", "남북관계 역행하는 국가보안법 폐지하자" 등 구호를 반복해서 외쳤다.

대학교수들과 변호사들이 거리행진을 함께 벌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거리행진에 나서기 전 조영근 교수(경남대 경제학부)는 참가자들에게 "교수들의 갈고닦은 전문지식을 모두 동원해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며 결의를 다졌다. 권오헌(양심수후원회회장)씨도 "오늘은 교수와 변호사들이 한데 모여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역사적인 날"이라면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양심수가 없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격려했다.

이석태 변호사(민변 회장)는 "국가보안법 폐지 막바지에 이르는 때 교수들과 변호사들이 함께 모여 감회가 새롭다"면서 "오늘 행진은 시민들에게 가장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국보법 폐지의 당위성을 알린 자리였다"고 강조했다.

도심 한복판에 행렬이 들어서자 지나가던 시민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슨 일인가" 묻기도 했다. 교수단이 을지로입구 지하철 역 안으로 진입하며 "국가보안법 폐지"를 외치자 지하철을 타려는 시민들로부터 집중적인 시선을 받았다.

최종 도착지인 광화문 영풍문고 앞에 도착한 행렬은 그 자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고, 주요 참가자들이 발언을 시작했다.

▲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 오마이뉴스 김호중
신영복(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4·19 당시 학생 신분으로 걸었던 이곳 광화문 거리를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다시 걷고 있다"며 남다른 소감을 밝혔다. 신 교수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국가보안법이 다시는 설 수 없도록 하자"고 결의를 다졌다.

손호철(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최근 세계 각국의 진보지식인들이 모여 회의를 했는데 다들 '한국은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있느냐'고 놀라워하더라"면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은 진보가 아니라 수구와 보수를 분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상익(서울대 의대) 교수노조 위원장은 "한때 일본에서 우리나라를 야유하는 말로 한국을 의미하는 '강꼬꾸'와 감옥을 의미하는 '강고꾸'가 있었다"면서 "그러나 차가운 감방 밖에서도 우리는 (국보법으로 인해) 진정 자유롭지 않았다"고 밝혔다.

황 교수는 특히 "전두환·노태우보다 더 질긴 법은 국가보안법"이라고 강조한 뒤 "김원기 국회의장은 '지둘러'라고 하지 말고 국회의장의 권리가 아닌 의무로써 직권상정을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2004년 한국사회, 교수들이 차가운 거리 서성이게 만든다"

국가보안법과의 '질기고 오랜' 인연을 토로하는 교수도 있었다.

강정구(동국대 사회학과) 교수는 "94년 한반도 전쟁위기 당시 <역사비평>에 '미국과 한국 전쟁'이라는 글을 발표했는데 각주를 95개나 달고도 국가보안법 위반인지 아닌지를 놓고 몇 번이나 자기검열을 했다"면서 "지금까지도 글을 쓸 때마다 국가보안법 위반은 아닌지 읽고 또 읽는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또 "국가보안법이 없다고 정말 안보불안이 생기는 것인가"라고 물은 뒤 "북한 주도의 안보불안보다 미국 주도의 전쟁으로 인한 안보불안이 더욱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유초하(충북대 철학과) 교수는 성명을 통해 "2004년 한국 사회는 우리 교수들로 하여금 차가운 거리를 서성이게 만든다"면서 "오늘 우리가 거리에 선 것은 60년이 가까운 지난 세월 우리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고 사회적 공포를 조장한 유령을 연내에 축출하기 위함"이라고 이날 거리행진의 의미를 강조했다.

오후 5시경 끝마친 거리행진은 "반인권악법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 "국가보안법 폐지하여 민주개혁 실천하자"는 구호로 막을 내렸다.

"세계 지식인들 앞에서 창피했다"
[인터뷰]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오마이뉴스 김호중
- 세계 지식인들이 한국에 국가보안법이 있음을 알고 놀랐다던데.
"지난 1일부터 7일까지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열리는 '인류를 지키기 위한 세계 지식인과 예술가대회'에 참석했다. 전 세계의 주요 지식인, 예술가들이 모이는 모임이다. 세계 주요 지식인들은 한국이라고 하면 보통 두가지에 관심을 가진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국가보안법이다.

이들이 나에게 '국가보안법이 어떻게 됐냐'고 묻기에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하자 '노벨평화상 받은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들은 '한국이 민주화된 줄 알았는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창피하더라."

- 국가보안법이 없어지면 국가안보가 불안하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국가보안법이 없다고 안보위협을 받는 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국가보안법은 국방 예산이 아니라 간첩과 관련된 문제다. 국가보안법 없다고 북한에 동조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우파들은 종종 '자신들이 모든 것을 이뤄냈다'고 하면서 왜 (국가보안법폐지 상황에 대해) 자신감을 안가지는가."

- 17대 국회의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앞으로 우리 역사가 어떻게 평가받을지 고민해야 한다. 국가보안법과 관련해 4자회담이 열렸지만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 국가보안법 문제를 제기했을 때처럼 국가보안법 문제를 풀어나가야 되는데 불필요한 이념논쟁만 하고 있다. 수습도 되지 않고 시간낭비만 하는 것이다.

여야가 싸우고 직권상정 운운하지만 그럴수록 국민들로부터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당위를 얻고 명분을 쌓아야 한다. 국민들을 설득하는 노력을 보이지 않고 이념논쟁으로만 끌고 가서는 안된다. 국가보안법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법리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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