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면 우리의 ‘존재함’이란 ‘거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주거 자체가 우리 자신이라는 말인데 우리 자신을 매매나 요행의 가치로 취급하고 있으니 지속되지 못하는 우리의 삶에 문화가 생겨날리 없고 건강한 공동체가 형성될 리 만무하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소모적이고 투쟁적이 되어가는 것일 게다.

▲ 건축, 사유의 기호
ⓒ 돌베개
<건축, 사유의 기호>의 저자 승효상은 <빈자의 미학>(1996), <지혜의 도시, 지혜의 건축>(1999) 등을 펴낸, 우리 시대의 건축에 대한 새로운 사고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대표적인 중견 건축가다. 20세기를 주도했던 서구 문명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건축철학 ‘빈자의 미학’을 토대로 꾸준한 작업을 하고 있다.

저자는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면서 우리 시대에 건축을 바라보는 시각이 왜곡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오직 돈벌이의 대상으로만 바라 보는 건축에 대한 개념이 곧 우리 존재함, 거주하는 것의 본래 의미를 왜곡하게 된다는 것이다.

책의 제목에서도 암시한 바와 같이 저자는 건축을 통해 끊임없이 건축에 대한 현대적 사유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그 실마리가 곧 우리 삶의 지배하는 하나의 사상적 토대가 될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

이와 같은 작업을 위해 저자는 20세기 불멸의 건축물 16가지를 소개하면서 건축을 통한 시대적 사유의 틀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이런 건축에 대한 사색의 흔적들을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관시킴으로써 건축이 가지는 근본적인 의의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묻고 있다.

건축이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우리의 삶을 조직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게 건축의 설계다. 집의 모양은 그 조직체의 결과이며 단순히 집의 모양에만 관심을 갖는 것은 건축을 일개 조형물로 보는 잘못된 관점이다. 건축은 ‘공간’에서 본질적인 힘을 얻는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를 지속시키는 것은 공간의 힘이며 그 공간의 법칙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결국 우리를 변화시킨다. 그래서 한 공간에 오래 산 부부는 결국 닮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주거는 우리의 삶 자체이며 우리의 존재다.

곧 건축은 우리 삶을 짓는 것이며, 기술도 예술도 아닌 그 중간태로서 자리매김 된다는 것을 저자는 역설한다.

르코르뷔지에의 ‘르 토로네 수도원’과 ‘라 두레크 수도원’에서 도미니크 데로의 ‘파리의 국립 도서관’에 이르는 다양한 건축물에 대한 치밀한 사색과 고증을 통해 저자는 일관된 사색의 틀을 형성하게 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빈 공간, 곧 여백의 미에 대한 지향 의식이다. 근대화가 이루어 놓은 단절과 빈 틈 없는 건축의 흐름에서 벗어나 빈 공간, 즉 여백에 대한 건축적 의미에 초점을 두고 있다.

저자는 이런 점들에 착안해 건축이 가지는 의미를 공간적·시간적 상황의 연속선상에서 본다. 기본적으로 좋은 건축은 합목적성, 시대와의 연관성, 장소와의 관계에서 고려되어야 한다고 서술한다. 합목적성은 말 그대로 ‘~답게’와 상통하는 의미이고, 시대와의 관련성은 건축이 시대의 풍속과 문화를 담는 거울이라는 점이고, 그리고 장소와의 관계는 건축은 공간적·시간적 성격이 한 땅의 특수한 조건을 만들고 그런 지리적·역사적 컨텍스트를 가지게 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서양의 건축에 대한 사색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불멸의 건축을 통해 우리 건축에 대한 비판적 사유의 흔적을 남겨 놓는다.

건축은 강력한 기억장치이며 우리의 정체성은 총체적 문화인 건축을 통하여 확인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건축을 시대의 거울이라고 칭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시대의 건축 거울을 통해 비쳐지는 서울은 도무지 600년 역사를 가진 고도(古都)라고 믿기 힘든 급조된 풍경이다. 아무리 경복궁을 복원하였다 하더라도 박제일 수밖에 없는 그런 건축은 진실이 아니다. 오히려 악다구니하는 지금의 도시 풍경이 천박해도 그것이 우리의 삶터인한, 그 기억을 재개발 속에 남긴다면 그것은 진실의 건축이며 귀중한 현대의 유적이 된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짓고 너무도 쉽게 허무는 것 아닌가.

건축은 다름 아닌 우리 삶 그 자체의 흔적이다. 그 흔적이 남긴 자리는 곧 우리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그런 흔적이 물욕에 의해 타락해 버린 지금 우리에게는 진정한 건축, 아니 진정한 삶의 흔적으로서의 건축이 사라지고 있음을 저자는 역으로 서양의 건축을 통해 드러내려 한 것은 아닌가 짐작해 본다.

건축, 사유의 기호 - 승효상이 만난 20세기 불멸의 건축들

승효상 지음, 돌베개(2004)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