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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의 소설은 왠지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이 암울해서 일지도 모르지만 속속들이 우리들의 속내를 들켜서는 아닐까.

언제나 무라카미 류는 인간의 감추어진 생각과 모습 그리고 시선을 섹스에 담아내고 있다. 그것도 비정상적인 섹스, 아니 그것이 정상인지 비정상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하튼 그는 그렇게 인간의 감추어진 욕망과 그로 인해 부서지는 인간의 모습을 성을 통해 이야기한다.

그래서 항상 읽기 쉽지 않고 불편함을 몸소 느낀다. 그러면서도 그를 찾게 되는 것은 그만이 가진 독특한 힘 때문이다. 그것을 정확하게 그리고 세밀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고흐가 왜 귀를 잘랐는지 아는가’라는 소설이다.

소설은 화가 고흐가 귀를 왜 잘랐는지 아는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하여 인간 본연의 나약한 모습 속에 아련한 연민을 자아낸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마약, 섹스 등으로 점철되지만 외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소설의 주인공은 증권회사의 싱크탱크에서 7년 간 일하다 비디오 제작회사로 회사를 옮긴 마야시타. 그는 뉴욕에서 비디오 촬영 도중 그곳 노숙자 가운데 한 일본인을 만난다. 그 노숙자가 처음 걸어오는 말이 “고흐가 왜 귀를 잘랐는지 아는가?”이다.

이 말은 앞으로 그가 겪어나갈, 한때는 철저한 계산과 이성만이 통용되던 싱크탱크에서 근무했던 그가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는 출발점이 된다. 이후 그는 노숙자가 건네준 전화번호를 통해 게이코라는 여자를 알게 되고 그녀를 만나기 전 ‘엑스터시’(이 책의 원제이다)라는 마약을 경험한 후 그녀를 직접 만나게 된다.

그녀를 만나 두 사람의 SM(사도마조)와 관련된 경험을 듣게 되면서 서서히 그들의 세계에 빠지게 된다. 이후 마치 노예처럼 그녀가 명령하는 대로 뉴욕으로 돌아가 다시 노숙자 야자키를 만나고 곧 이어 파리로 날아가 이 둘과 묘하게 얽혀 있는 레이코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올 때는 게이코의 명령대로 3겹의 콘돔에 싸인 마약을 입으로 삼킨 채였다.

그렇게 몇 번의 운반자 노릇을 하던 중 비행기 안에서 콘돔이 터져 서서히 죽어가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소설의 내용만 본다면 전혀 정상적인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기에 거부감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 그들의 아련한 모습에서 동질감과 연민을 느낀다. 마약에 의지해서 자신의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발 없는 새와 같은 게이코와 야자키, 그러던 야자키는 끝내 노숙자의 길을 택했고, 게이코 역시 자신이 믿었던 남자가 떠난 모든 책임이 다른 여자에게 있다고 믿어버린다. 그리고 자신 또한 파멸의 길로 나아감을 알면서도 두 사람의 세계에서 발길을 되돌릴 수 없는 주인공들.

이들은 세상에 존재함을 스스로의 타락을 통해 알 수밖에 없었으며 그것만이 그들의 삶을 그나마 지탱해주는 끈이었던 것이다. 이 속에 감추어진 인간의 심연을 고흐와 연결시켜 류는 잘 짚어내고 그려냈다.

이것은 류의 코드이다. 그와 맞는 코드를 지니지 않았다면 이 소설도 심히 불쾌해질 수 있다. 그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으로 마약과 섹스로 삼고 있지만 그것은 그가 선택한 표면적인 색체이다.

그 속에서 부서지는 줄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삶의 한계. 그것이 바로 류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닐는지.

고흐가 왜 귀를 잘랐을까. 그것은 고흐 자신만이 아는 진실이다. 그것은 죽어도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류는 인간으로써 이 땅을 살아가는 비애와 슬픔을 느꼈으리라 추측하며 소설 속에서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의 모습일 수도 혹은 타인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한들 류의 소설은 인간의 심연 속에 감추어진 것을 꼭 집어내기에 우리가 그의 소설에 열광하는 게 아닐까.


고흐가 왜 귀를 잘랐는지 아는가

무라카미 류 지음, 권남희 옮김, 창공사(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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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분야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보고 듣고 느끼는 그 순간순간을 말입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택한지 얼마 되지도 못했지만 제 나름대로 펼쳐보고 싶어 가입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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