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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만포구 당시의 사진을 표지로 한 <구만리지> 책자
ⓒ 장선애
"육지에서 생산하는 쌀을 위시한 곡식 구만석(九萬石)을 이곳에서 서울로 보냈다고 한다. 이는 내포평야의 크기를 말해주는 것이다. 예로부터 소금은 식생활에 있어 으뜸가는 조미료다.(중략) 내포의 소금은 이곳, 구만포를 거쳐 조달됐다.”- <구만리지> 61쪽

마을의 역사를 책 한 권에 담은 리지(里誌)가 예산군내 최초로 발간됐다. 예산군 고덕면 구만리 경로회(회장 김수철)가 ‘구만리 경로당 창립 33주년 기념’으로 펴낸 ‘구만리지’는 270쪽 분량에 구만리의 어제와 오늘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육지에서 생산하는 쌀 등 곡식 구만석을 구만포에서 서울로 보냈다 하여 구만리라고 불리웠다는 이 마을은 지금도 ‘황금들판’이라 부를 정도로 풍부한 곡창지대다.

리지에는 과거 구만포가 있어 바닷물이 들어왔던 시절의 이야기, 예당저수지가 축조되기 전 드넓은 평야의 농사를 위해 있었던 6개의 보에 관련된 상세한 내용 등 전설 같이 전해지던 옛 이야기가 구체성을 띠고 있다. 구만리에 살고 있는 성씨조사를 하다보니 현재 주민 이름이 모두 나오고 행정통계보다 더 정확한 수치기록의 성과를 이루게 됐다.

책이 발간되기 까지 소요된 시간은 3년 여. 2001년 관계자를 소집한 뒤, 2002년 편집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난 1일 발간기념행사를 가졌다.

▲ 마을역사지를 만든 구만리의 산증인들
ⓒ 장선애
우리의 역사기록 수준이 정부차원에서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마을단위의 자료가 남아있을리 만무. 그러다보니 ‘산증인’인 경로회원들의 기억이 가장 귀중한 자료가 됐다. 표지 사진이 된 구만포구 사진을 구하는데도 수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이 날 행사에는 군수, 국회의원, 군의원 등 많은 기관단체장들이 참석해 그 의의를 기념했다. 책 발간에 들어간 예산은 모두 1100만 원. 마을 기금 500만 원에 출향인사들의 찬조금 300만 원, 그리고 군으로부터 300만 원의 보조를 받아 충당했다.

마을세대수를 기준 해 모두 300권을 발행했는데 뜻밖에 외지에서 요청이 많아 책이 부족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사실 증명, 말로만 안돼”
50년 넘게 일기 써 와… 이홍용 집필위원 "기록 정신" 강조

“구만리는 내가 태어나고 나를 키운 땅입니다. 이곳에서 살아온 감사함을 표하고, 머잖아 이곳을 떠나야 할 나이가 돼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유달리 전설과 문화, 역사, 인물이 많은 우리 마을의 기록을 남긴다면 후손들에게 교훈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농사일 바쁠 땐 잊었다가 다시 자료를 모으고 글 쓰기를 하다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두툼한 분량의 리지 내용 대부분을 집필해 낸 사람은 올해 69세의 이홍용(사진) 옹이다. 벌써 5대째 구만리에서 살고 있다는 이 옹의 마을역사 사랑은 19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예가이던 당숙 어른의 유언과 경로당 창립자인 문명렬씨의 당부가 계기가 돼 리지의 중요성을 통감했으나, 그간 여러가지 농촌사정으로 형편이 허락하지 않아 미루어오다가 27년만에 그 뜻을 이룬 것이다.

그래서 이 옹은 김수철 회장에게 큰 고마움을 느낀다고 거듭 강조한다. 역사지를 내는데 선뜻 동의하고 독려해 마을기금을 집행하고 경로회원들의 증언채록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한 때문이다.

재작년 자신이 다니는 구만리 성결교회의 70년 역사도 집필한 바 있는 이 옹은 50년 넘게 일기를 꾸준히 써올 정도로 기록정신이 몸에 배어 있다.

조상들이 억울하게 재산을 뺏기는 것을 보면서 기록을 자세히 해 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통감했다는 이 옹은 자녀들에게도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기록”이라면서 그 중요성을 강조하곤 한다.

이 옹은 또 이번 집필작업에서 무엇보다 큰 수확은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도움을 준 많은 이들이 있지만 특히 삽교중학교 황인선 교사에게 받은 감명은 지금도 새롭다고 소개한다.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어느 날 전화가 왔습디다. 자신을 예산군향토사연구회원이라 소개하며 혹시 도울 일이 없겠느냐는 거지요. 마침 육필로 쓴 원고를 컴퓨터에 입력하고 교정을 봐야 할 일이 난감하던 터에 부탁을 했더니 그 많은 일을 도맡아 해줬어요. 하도 고마워 점심 한끼 대접할래도 마다하면서. 세상에 그런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또 고마워서….”

이 옹은 “리지 발간이 생각보다 시간이 길어져 그 사이 혹시라도 증언을 해 주신 90세 안팎의 회원들이 책을 못보시게 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들 정정하셔서 기쁩니다. 이제 할 일을 했다는 생각에 감격스럽습니다”고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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