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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형숙
자기 일이 아니면 무관심한 게 우리네 현실이다. 그깟 논 500평 갈아엎는다고 세상이 바뀌겠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1년 동안 힘들게 지은 농사를 단 10분도 안 되어 망쳐지는 그 심정은 아마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추석만 지나면 바로 수확할 수 있을 만큼 다 자란 벼를 보며 쓴 웃음만 짓는 서진석(43)씨의 착잡한 심정을 사람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 논을 갈아엎기 전에 익산 농민회에서 플래카드를 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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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진석씨가 찹찹한 심경을 토로하며 갈아엎고 있는 논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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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10시부터 진행된 논 갈아엎기 투쟁은 11시가 다 되어서야 끝을 냈다. 투쟁이 진행되는 1시간 내내 서진석씨는 기자들의 눈을 피해 다 자란 벼를 흘깃흘깃 훔쳐보며 “착잡하다”고만 말했다.

당초 익산시 금마 검문소 사거리 주유소 건너편에서 실시하기로 했던 투쟁이 당일 아침 장소를 현영동으로 변경하게 됐다. 금마의 논도 현영동의 논도 서씨의 땅이다. 그의 아내는 논을 갈아엎는지도 모른다.

서씨는 어렸을 적부터 농사일을 거들다가 7년 전에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가 농사일을 선택한 이유는 쌀이 좋아서다. 어찌 보면 참 식상한 대답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사람은 쌀을 안 먹으면 못 산다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 모형숙
이번 논 갈아엎기 투쟁은 전국에서 치러지는 행사로 전라북도 정읍과 김제, 완주, 고창, 익산에서 동시에 실시한다. 또한 참가 농민들은 흙탕물에 가라앉은 벼 대신 수확포기 각서를 전국적으로 취합해 청와대로 보낼 예정이다.

한편에서는 '어떻게 논을 갈아엎을 수가 있는냐?', '그런 극단적인 방법은 결코 옳지 않다'고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쌀이 수입되면 좋지 않겠냐고, 훨씬 저렴하지 않겠냐고, 우리도 수입해야 우리 물건도 사 줄 것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다.

▲ 트랙터가 논 한가운데를 휩쓸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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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서씨는 "10년 전에 냉해를 입어서 수입한 적이 있었는데, 정작 우리가 필요할 때 사게 되면 비싸게 수입할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쌀이 수입되고 농사짓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수입쌀은 금값이 될 것이라는 것은 어린 아이들도 아는 사실이다"고 말했다.

논을 갈아엎은 트랙터가 논으로 갈 때는 모인 이들은 '로타리친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500평이면 쌀 80㎏이 12개에서 13개 정도가 생산된다. 쌀 값을 한 가마에 16만원으로 계산했을 때 1200평당 순수하게 남는 돈은 70∼80만원이라고 한다. 사실 돈으로 따지면 서씨의 논 500평에서 나오는 쌀값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없냐는 질문에 서씨는 “쌀수입 개방만은 절대 안 되며 추곡수매제 폐지는 양보할 수 없다”고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26.7%. 예전에는 농민에게 쌀은 자식과도 같다고 비유했다. 농사 지어서 힘들게 자식들 대학공부도 시키고, 결혼도 시키며 생활을 유지해 왔다. 아버지의 주름살만큼 어머니의 굵어지는 손마디만큼 우리네 땅에는 삶의 애환이 담겨 있다.

“창고 가서 막걸리 한잔하고 가세” 라는 한 농민의 목소리가 가을 햇살 속에서 더욱 씁쓸하게 들려왔다.

▲ 수확을 앞둔 벼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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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탕물에 잠긴 벼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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