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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리꽃을 바라보면 점순이 누나가 생각난다
ⓒ 이종찬
나는 어릴 적부터 꽃잎에 까만 점이 콕콕콕 박혀 있는 참나리꽃을 참 좋아했다. 먼지 하나라도 묻으면 금세 시들어 버릴 것만 같은 하얀 백합보다 먼지나 티끌이 묻어도 끄떡없는 참나리꽃이 훨씬 더 좋았다. 어릴 적 교무실 꽃병에 간혹 꽂혀 있던 그 백합은 손가락 끝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금세 시들어 버릴 것만 같았다.

그때 나는 백합이 양키를 쏘옥 빼다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연초록빛을 띤 길쭉한 꽃봉오리는 양키들의 긴 코처럼 느껴졌고, 하얗게 피어난 꽃잎은 양키들의 희멀건 얼굴처럼 창백하게 보였다. 게다가 백합은 흔히 볼 수 있는 꽃도 아니었다. 우리 마을 들판과 계곡을 샅샅이 뒤져도 백합은 한번도 볼 수가 없었다.

우리 마을에서 참나리꽃은 아주 흔했다. 황토빛 꽃잎에 점순이 누나의 얼굴처럼 까만 점이 촘촘촘 박힌 참나리꽃은 여름철이면 마당뫼나 앞산가새 어느 곳에서나 쉬이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참나리꽃 주변에는 호랑나비가 자주 날아다녔다. 마치 참나리꽃에 박힌 까만 점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빨아먹고 말겠다는 듯이.

"복아! 지금 너거 집에 나리꽃이 억수로 많이 핐제?"
"와? 또 나리꽃 구슬눈 따가(따가지고) 너거 집 장독대 옆에 심어 볼라꼬?"
"요번에는 좀 많이 따야 되것다. 이상하게 우리집에 그 구슬눈을 심었다카모 싹이 쪼매 트다가 고마 말라 죽어삔다 아이가."
"나리꽃은 물로 많이 주야(줘야) 된다카던데."


산수골 도랑가 앞에 우뚝 솟은 우리집에서 10여m 남짓 떨어진 복이네 집에는 참나리꽃이 참 많았다. 그 참나리꽃은 우리들이 여름방학을 시작할 무렵부터 그 길쭉한 입술을 뾰쫌히 내밀며 예쁘게 피어나기 시작하다가 여름방학이 끝날 때까지 그 붉으죽죽한 꽃잎을 펼쳤다 접었다 했다. 마치 알록달록한 호랑나비의 날개짓처럼.

▲ 참나리 마디에는 까만 구슬눈이 붙어 있다
ⓒ 이종찬
▲ 참나리꽃은 늘 땅을 바라보며 피어난다
ⓒ 이종찬
그때 나는 복이네 집으로 가서 참나리의 마디마다 마치 흑진주처럼 하나씩 박혀 있는 그 까만 구슬눈을 땄다. 그리고 서둘러 우리집으로 달려와 장독대 옆 조그만 뜨락에 조심스레 심은 뒤 끼니 때마다 물동이에서 바가지로 물을 퍼내 뜸뿍 뿌려 주었다. 우리집 장독대 옆에도 내가 좋아하는 그 참나리꽃이 예쁘게 피어나는 그날을 학수고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싹이 올라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나는 참나리의 구슬눈을 심은 곳을 살며시 파헤쳐 보았다. 구슬눈은 그대로 썪어 있었다. 그중 어떤 것은 마악 싹이 트다가 그대로 말라 비틀어진 것들도 있었다. 그때 나는 여름방학 내내 복이네 집에서 참나리의 구슬눈을 따다가 심었지만 구슬눈은 한번도 싹이 튼 적이 없었다.

"쯧쯧쯧~ 쟈는 마음씨도 억수로 착하고 얼굴도 참 이쁜데…"
"아, 낯빤데기(얼굴) 점만 아이모 황진이도 울고 갈 끼야."
"그라이 하늘이 골고루 다 안 주는 기라. 풍년이 들어가꼬 꼬부라진 허리 좀 펼라카모, 고마 우리로 놀리듯이 쌀값이 똑 떨어지는 거맨치로."
"나는 쟈만 보모(보면) 갑자기 맴(마음)이 뒤숭숭해진다카이. 마치 우리 딸내미(딸)라도 되는 거맨치로."


얼굴에 까만 점이 곰보처럼 빼곡히 박혀 있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이 그냥 점순이라고 불렀던 그 누나는 우리 마을에서 가까운 시장통에서 살고 있었다. 그때 점순이 누나의 부모님은 풀빵 장사를 했던가, 설탕 뽑기 장사를 했던가, 기억은 정확히 나지 않는다. 하여튼 무슨 장사를 하면서 퍽 어렵게 살았던 것만은 틀림없다.

점순이 누나가 살았던 그 시장통은 우리 이웃마을이었다. 하지만 우리 마을과 시장통 사이에는 제법 넓다란 도랑 하나가 가로 막고 있어서, 그리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또한 시장통에 가려면 벼가 마악 피어나는 신작로를 지나 조그만 다리 하나를 건너야만 했다. 그러니까 점순이 누나가 살고 있는 시장통은 가깝고도 먼 마을이었다.

▲ 내 어릴 적에는 '참나리'라 부르지 않고 그냥 '나리'라고 불렀다
ⓒ 이종찬
▲ 참나리의 비늘 줄기는 강장, 기침해소에 좋다고 한다
ⓒ 이종찬
그때 점순이 누나의 나이가 열아홉이었던가. 우리보다 다섯살인가 나이가 더 많았던 점순이 누나는 얼굴이 참 예뻤다. 누나의 턱은 갸름했고 크고 까만 두 눈동자에서는 '점…점…점순아! 오데 가노 점순아!'라고 우리들이 놀리면 금세 이슬방울 같은 눈물이 동그랗게 피어오를 것처럼 늘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입술이 유난히 붉었던 점순이 누나는 늘 땅만 쳐다보고 다녔다. 가끔 신작로에서 우리들과 마주칠 때에도 마치 죄 지은 사람처럼 얼굴을 푹 수그린 채 바삐 지나가곤 했다. 게다가 마을 어르신들과 마주칠 때에도 고개를 푹 수그린 채 허리를 90도로 수그려 인사를 했기 때문에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하는 것처럼 보였다.

"점…점…점순아! 오데 가노 점순아! 점 팔로(팔러) 가나 점순아!"
"예끼! 순 상놈 같으니라고. 조선 천지 누야(누나)로 가꼬 노는 넘들이 오데 있더노."
"그기 다 우리 어른들 탓 아이가. '나리'라는 멀쩡한 이름을 놔두고 어른들이 맨날 점순아 점순아 불러 쌓은께네 아(아이)들도 그대로 따라 한다 아이가."


나리? 그랬다. 나는 그때 점순이 누나에게도 '나리'라는 예쁜 한글 이름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하지만 아무도 점순이 누나에게 '나리야'하고 부르는 사람이 없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그저 '점순아'하고 불렀다. 점순이 누나 또한 어른들이 그렇게 부르면 늘 얼굴을 푹 수그린 채 '네' 하고 대답하곤 했다.

세상에. 그래서 점순이 누나의 얼굴 곳곳에 마치 운명처럼 까만 점이 촘촘촘 박히게 되었을까. 그리고 점순이 누나는 그 까만 점이 부끄러워 늘 참나리꽃처럼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땅만 바라보며 그렇게 다녔던 것일까. 까만 점만 아니라면 눈이 부셔서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그 예쁜 얼굴을 감춘 채.

▲ 참나리꽃을 빼닮은 점순이 누나는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 이종찬
▲ 황금나리꽃
ⓒ 이종찬
"누야! 내 좀 보자."
"와?"
"이거!"
"이기 뭐꼬? 나리꽃 아이가. 근데 니가 와 나리꽃을 내한테 주는데?"
"그냥."
"니는 이 나리꽃처럼 얼굴에 까만 점이 숭숭숭 박힌 내가 그리도 좋나?"
"킥킥킥!"
"어! 요 넘(놈) 좀 봐라. 대가리 소똥(버짐)도 안 벗겨진 넘이 지끔(지금) 내로(나를) 놀리 묵것다(놀려 먹겠다) 이 말이가?"


참나리꽃. 그래. 나는 지금도 참나리꽃을 바라보면 얼굴 곳곳에 까만 점이 콕콕콕 박혀 있었던 점순이 누나의 예쁜 얼굴이 떠오른다. 그때 그 점순이 누나는 내가 건네는 참나리꽃을 받으며 '요 녀석!'하고 내 까까머리에 알밤을 먹였지. 그리고 양볼을 참나리꽃처럼 붉히며 이내 담벼락 너머로 쏘옥 숨어 버렸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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