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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다른 골목집 친구> 표지
ⓒ 두산 동아
글머리에서 읽은 '여름에도 긴 양말을 신은 아이'를 통해 이 책의 분위기가 발랄함과는 거리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누런 책장 속에 박혀 있는 큰 활자가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려 나를 초등학교 시절로 이끈다. 어느새 내 얼굴엔 자그만 미소가 번지고 있다. 얇지만 수묵화 같은 색감으로 그려져 있는 세상이 다가온다.

황선미.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동화 작가다. '엄마'의 이름을 달고부터 동화에 관심을 갖게 된 나로서는 그녀의 위력이 몹시 궁금해졌다.

평소 시중 서점가의 창작동화들이 작가가 말하고 싶은 동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때가 많다고 생각해왔고, 또 억지스런 재미와 감동으로 어린이들에게 고정적인 사회관념을 그대로 답습시켜 주는 데서 크게 실망을 느낀 까닭이다.

여기 전학을 온 종호가 있다. 더운 날씨에도 무릎까지 올라오는 긴 양말을 신은 말라깽이 종호의 이야기.

미장원에서 일하는 엄마와 단둘이 사는 가난한 종호가 반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라면, 남 부러울 것 없는 화목한 가정에 사는 반장 다빈이는 모범생이다. 다빈이의 시점에서 쓰여진 이야기엔 다빈의 성격이 잘 그려져 있다.

끼리끼리 친하게 지내고 이유 없이 다른 아이들을 무시하는 아이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다빈이, 그러나 자신에게 다가오는 종호는 안쓰러우면서도 친해지기엔 뭔가 망설여지는 아이인지라 계속 탐색만 한다.

예기치 않게 종호를 한 도난 사건의 범인으로 몰고 만 다빈이는 종호를 의심했던 자신을 자책하며 괴로워한다. 그러다 다빈이가 용기를 내어 종호네 집을 방문함으로써 둘은 화해를 하고 친구가 된다.

아이들의 심리 묘사 돋보여

▲ '종호'를 밀고하고 괴로워하는 '다빈'
ⓒ 방대훈
자신에게 별 다른 고통이 주어지지 않는 한 함께 따돌리는 대열에 참가하게 될 때, 점점 더 옳고 그름의 판단을 인지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되곤 한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지경에 이른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다빈이의 심리 묘사가 뛰어나게 그려진다. 방관자가 될 수 없는 양심과 굳이 필요없는 에너지를 소모하기 싫은 이성은 결국 소중한 우정을 선택한다.

이제 책의 끝부분을 들여다보자. 다빈이와 종호가 함께 돈가스를 만드는데, 다빈이 엄마가 화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와 걱정에 싸인 다빈이는 종호의 집을 나와 골목을 나선다. 그 때 종호가 "윤다빈! 다시는 나랑 안 논다고 해!"라고 외친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별안간 울음이 가슴에 꽉 차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두워서 잘 안 보여도 괜찮았다.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내 친구에게 할 수 있는 대답은 그것뿐이었다. <본문 중에서>

그동안 어린 종호의 가슴에 얼마나 많은 아픔이 쌓였는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나가 보면 간혹 혼자 노는 아이가 눈에 띈다. 모래 장난을 하는 그 아이의 손은 느리고 지루하게 보인다. 아이들 세계에서 '혼자'라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아들 녀석에게 함께 놀라고 다그친다. 하지만 이미 형성된 아이들만의 놀이 방식이 제대로 통하지 않아 속수무책일 때가 많다.

그럴 때 부모인 내가 그들의 놀이에 끼어들면 훨씬 수월하게 놀이가 진행되고 서로 친구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왕따'란 몹쓸 이름을 없애기 위해선 아이들만의 세계일지라도 부모의 개입이 어느 정도 용인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좁게는 개인의 우정을, 넓게는 '왕따'라는 사회현상을 소재로 개인의 소외를 군더더기 없이 다뤄 철학적 무게감이 가뿐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막다른 골목집 친구

황선미 지음, 정지혜 그림, 웅진주니어(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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