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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른 줄기에 저토록 왕성한 생명력이 들어 있구나!
ⓒ 박소영
지루했던 장맛비 때문에 텃밭을 돌볼 수가 없었다. 비가 그치기를, 아니 단 하루라도 비가 쉬었으면 하고 기대했건만 질긴 장맛비는 약 올리듯 그칠 줄 몰랐다.

그렇게 우리 텃밭은 장장 보름여 동안 외롭게 버려지고 말았다. '얼마나 컸을까? 혹 집중 호우에 다 쓸려 내려 가지는 않았을까?' 난생 처음 해 보는 심각한 텃밭, 아니 '자연' 사랑이었다.

그래서 며칠 전 소나기가 한 차례 퍼부은 뒤 우산을 챙겨 들고 밭으로 향했다. '주말농장'의 푯말이 붙여진 입구에서부터 풍겨나는 짙은 풀 내음! 잠시 후 그 내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의 텃밭 사랑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인적 없는 텃밭은 밭이 아니었다. 농장 주인 할아버지도 장맛비를 피해 어디론가 떠나셨는가 보다. 어디가 이웃 텃밭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애초에 밭을 일굴 때 쳐 놓은 붉은 색 노끈은 초록색에 묻혀 보이질 않았다.

밭이란 사람의 힘으로 일구어진 땅이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왕성한 초록 잔치 앞에서는 인간의 힘이 헤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었다. '아, 자연의 원시성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채소가 '풀'이 되는 순간이었다.

6살 난 아들 녀석의 키보다 더 높이 자란 봉숭아는 단단하고 두툼한 가지들을 내밀고 있었는데, 꽃잎들이 벚꽃처럼 화려하게 떨어져 있다. 이랑은 뻗칠 대로 뻗친 고구맛잎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숲을 이룬 들깨도 깻잎 채취를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깻잎 전을 좋아하는 남편이 신신당부했는데 말이다. 아들 녀석은 가지를 따 보겠다더니 가지 몸통을 두 동강 내고 만다. 풀섶 깊숙한 곳까지 손을 넣기가 무서웠던 모양이다.

흠뻑 젖은 풀잎, 풀잎 사이를 높이 뛰기 하는 작은 메뚜기들, 그리고 농장 뒤로 보이는 고층 아파트…. 그 속에서 우리 모자는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언제쯤 자연과의 '자연스런' 만남을 가질 수 있을까.

▲ 나무가 되어 버린 봉숭아. 우리 밭의 가장 큰 수확물(?)이다.
ⓒ 박소영
▲ 땅 끝까지 내려온 가지의 풍성함에 그저 놀랍기 만하다.
ⓒ 박소영
▲ 고추를 들어 보이며 좋아하는 아들 녀석.
ⓒ 박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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