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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래된 사진첩을 꺼내 보았습니다. 사진첩에는 제가 살아온 역사와 과거가 살아 있습니다. 개구리가 올챙이적을 생각하지 못한다고 우리는 과거를 많이 잊고 삽니다. 과거의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오늘을 이루는 것인데, 사람들은 가끔 현재가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것처럼 살아가곤 하지요.

 

때로는 잊고 싶은 기억도, 반추하고 싶은 추억도 있어 가끔 사진첩을 뒤척이게 됩니다. 오늘은 아주 옛날 사진을 보고 싶어 오래된 사진첩을 꺼냈는데, 뜻하지 않은 사진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가족이 강남구 삼성동에 채 완성이 되지 않은 집에 이사를 왔을 당시인 1977년도의 사진들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사진을 보고서는 여기 위치가 어디인지 아실 분들이 아무도 안 계실 것입니다. 혹여 삼성동 토박이가 이 기사를 보셔도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있는 외딴집 한 채를 보고서 이 자리가 바로 지하철 삼성역이 지나가는 코엑스몰 옆자리라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여기가 서울로 편입되기 전에는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이었다고 하는데, 그때부터 사셨던 분들도 눈치 채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네요.

 

아버지는 땅에 가상의 선만 그어져 택지 분양을 할 때 이 집터를 사서 이사왔다고 하십니다. 어머니는 처음 이사 왔을 때 외딴집이라 도둑이 무서우셨다고 합니다. 실제로 우리집에는 심심치 않게 도둑이 많이 들었습니다. 언젠가는 도둑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가서 곤혹스러웠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민은 점차 새 집들이 들어서고 강남이 개발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당시 저는 테헤란로 너머에 있는 도곡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현재 대치동에 위치하고 있는데, 어머니는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하게 넓었던 테헤란로를 걸어서 다니는 저에게 차 조심하라고 당부를 하며 학교에 보내셨습니다. 그때 같이 테헤란로를 건너며 학교를 다닌 초등학교 동창이 있었습니다. 테헤란로를 지날 때면 그 친구는 부모님 대화를 어깨 너머로 들은 풍월로 이 곳이 명동처럼 번화한 곳이 될 것이라고 아는 소리를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그런 이야기에 지기 싫어하는 성격인지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우겼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논밭 사이에 널찍한 테헤란로 주변으로 명동 같은 번화가가 들어설 것이란 이야기를 10살짜리 어린 아이가 납득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어른이 되고 보니 제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와 지금은 연락이 되지 않지만, 아마도 그 친구의 아버지는 저의 아버지보다는 이재에 밝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강남에서 몇 번 이사 끝에 몇 십억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데 그 친구와 내가 지금 만난다면 사회적 지위가 많이 달라져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은 우리 집 건축 현장 옆에서 경기고등학교를 바라보고 찍은 사진입니다. 다행히 사진첩에는 1987년에 같은 곳을 향해 찍은 사진이 남아 있어서 변천사를 눈으로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위의 사진은 거의 같은 곳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찍는 각도가 약간 틀어져 있지만 코엑스몰 자리가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1987년까지만 해도 나지막한 산 위에 있는 경기고등학교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2004년 현재의 사진에는 아셈타워와 인터콘티넨탈 호텔로 경기고등학교가 시야에 가려서 보이지 않습니다.

 

1987년 사진을 보면 도로에 전혀 차가 없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 곳의 교통량이 적어서, 이 도로를 운동장 삼아 야구를 많이 하였습니다. 가끔 자동차가 지나가면 자동으로 '타임'이 되어 경기를 중단했습니다. 지금 같으면 상상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제 기억으로 한 회에 한 대 정도의 자동차만 지나가서 동네 야구를 하기에는 적당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른쪽으로 보면 당시에 종합전시장으로 불리었던 곳이 보입니다. 종합전시장 공사를 시작했을 때 저 담을 넘어가 공사장에서 타일이나 공사용 재료를 훔쳐서 놀았습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별 필요가 없던 공사용 타일을 무서운(?) 인부 아저씨들 눈을 피해가며 훔쳤는데,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절로 웃음이 납니다.

 

처음 저의 가족이 이사 왔을 때에는 약간의 거짓말을 보태서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시야가 확 트여 있었습니다. 언덕을 뛰어다니며 개구리를 잡았습니다. 현재 코엑스몰 자리에는 커다란 저수지가 있어서 그 곳에서 모기장으로 조그만 물고기를 잡아, 콜라병에다 담아 놀곤 했습니다.

 

다음 사진은 저의 집에서 잠실 쪽을 바라본 전경 사진입니다. 멀리 학생 체육관이 보이고 현재에도 남아 있는 삼성역 옆의 건물이 보입니다. 지금 저 건물 1층에는 편의점이 있습니다. 지금 비슷한 위치에서 사진을 찍었더니 공항터미널로 인해 완전히 시야가 가려져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타워팰리스를 누르고 강남 최고급 아파트 값을 경신했다는 현 I-Park 자리를 향해 찍은 사진입니다. 산 밑의 봉은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 자리에 자리를 잡고 있지만 나머지는 전혀 바뀌어 있습니다. 멀리 I-Park자리가 그냥 민둥산의 언덕 형태로 보이고 있습니다. 옛날에 그 곳에는 철거민들이 임시 거처를 지어 살았다는데, 그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새삼 궁금해집니다.

 

지금 I-Park와 봉은사는 외장 유리로 인한 반사광 때문에 갈등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봉은사는 수행에 방해된다고 하고, I-Park를 짓고 있는 현대산업개발 측은 햇빛 반사광으로 인한 피해 보상은 전례가 없다고 난색을 표하고 있답니다. 여하튼 이 때의 봉은사가 수행하기는 참 좋아 보입니다. 예전에는 저녁 6시면 봉은사에서 치는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렸습니다. 지금은 도시화 되어서 종을 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우리 집을 찍어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집이 부동산 시장에서 환금성이 약한 사도집이라 전경 사진을 찍는 데 실패하였습니다. 사도집은 대문이 양쪽 집에 막혀 입구가 두 집 사이로 들어가 있는 집을 말합니다. 택지 분양을 할 때, 돈이 별로 없으셨던 아버지가 가장 싼 땅을 구입하는 바람에 그렇게 되셨다고 합니다.당시에 상품가치가 없던 사도집 터를 구입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학창 시절을 보내고 어른이 된 지금까지 이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집터가 잘 팔리는 곳이었다면 저의 가족은 일찌감치 강남을 떠나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얼마 전 TV에서 박통 시절, 지도에다 자를 대고 줄긋는 작업으로 강남 개발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물론 과장을 조금 섞은 이야기겠지만, 그곳에 그은 줄에 들어가 인생의 중요한 시절을 다 보낸 사람 입장에서는 그 프로그램을 보는 시선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강남은 칠팔십년대 고도 성장의 한 상징처럼 보입니다. 선거권이 생긴 이래 저는 전국 단위나 서울시 단위 선거를 제외하고, 국회의원 선거나 지자체 선거에서 한번도 제가 투표한 지역 후보가 당선된 적이 없습니다. 고도 성장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린 사람들에게 기존 체제나 성장 전략에 대한 저항이나 비판은 금기시 될 수밖에 없는 심리적 기제가 있는 곳이지요.

 

저는 제2의 강남을 90년대 분당에서 보았습니다. 경부고속도로를 지나는 옆으로 고층 빌딩과 아파트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어서는 것을 보고 70년대의 강남이 부활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분당은 정치적 성향도 어찌나 강남과 똑같은지 가끔은 소름이 돋기도 합니다. 강남구 의회가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 재산세 인하 의결은 지난 70년대 고도성장의 수혜를 빼앗길 수 없다는 몸부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이사 왔을 때 어김없이 봄이면 날아와 집을 짓던 제비가 있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고 어느 해인가 제비는 어디선가 힘들게 구한 짚으로 보금자리를 지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진흙을 구할 수 없었던 제비는 집을 지으려고 짚을 몇 번이고 집 처마 밑에 붙이려다 실패하고 또 실패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떠났습니다. 강남이 개발되면서 저는 제비뿐만 아니라 같이 뛰어놀던 개구리를 떠나 보내야 했고, 물고기를 잡고 놀았던 저수지가 메워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타워팰리스로 상징되는 강남의 부는 개구리와 제비가 떠난 자리에 세워진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철거민들이 지나간 자리에 오늘의 평당 2000만 원이 넘는 아파트가 서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이런 사실을 많이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나와 주변의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강남#테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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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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