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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섭아, 형 라이브 공연 한번 하기로 했다!"

며칠 전 전화를 하신 형님이 답답하게 돌아가는 세상이야기를 하다가 이야기 끝 무렵 불쑥 꺼낸 말입니다. 10여년 전 아주 잠시 노래를 하다가, 지금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마흔셋 되신 형님이 늘 마음에 담고 살아왔던 개인콘서트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올해로 결혼 10주년을 맞이하면서 원래는 형의 노래를 아쉬워하던 친구들과 작은 카페를 빌려 추억거리를 만들어 보려고 생각했답니다. 그러다 음악계에 있는, 가깝게 지내는 후배가 아예 정식 콘서트를 한 번 하자고 제안하면서 전문공연장을 임대하고 티켓도 파는 진짜 공연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보다 나이가 9살이나 많은 형은 어린 시절 저에게 형이라기보다 부모님과 비슷한 어른이었습니다. 가끔 재미있게 놀아주기도 했지만 방학숙제를 안해 혼난 기억도 있고 한 두 번 부모님을 대신해 학교에 찾아오기도 했던, 어렸을 적에는 조금 무서웠던 형이기도 했습니다.

형은 내가 존경하는 사람

동시에 형은 어린 시절 저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80년대 초반 암울했던 시기에 대학생활을 시작했던 형이 가끔 세상을 향해 던졌던 한마디는 어린 저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렇다고 형이 소위 말하는 의식이 있거나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청년이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당시 다수가 그랬겠지만 형은 그저 어려운 사회적 상황 속에서 괴로워하고 아파했던 평범한 학생 가운데 한사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하튼 고등학교 때 누군가 내게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길래 대뜸 형이라고 이야기를 했던 걸 보면 형의 영향이 정말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때까지 존경하는 인물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하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만 형이 던지는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세상에 대해 조금씩 눈을 뜨게 되었고, 덕분에 가끔 생각이 건전하지(?) 않은 아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형의 노래에 대한 애정은 아마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작은 스피커가 하나 달린 카세트라디오를 사오셨는데 그때부터 형은 열심히 음악을 듣기 시작했고 저도 형이 듣는 노래를 따라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형은 기타를 마련해 열심히 배웠고 집에 있을 때면 자주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처음에는 기타를 배울 때 불렀던, '꽃반지끼고', '모닥불' 등의 고전가요를 부르다가 점차 라디오에서 들었던 팝송, 가요 등이 메뉴로 등장했습니다. 군에 입대할 무렵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입영전야'를 부르던 형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노래를 부르던 형, 평범한 직장인이 되다

학교를 졸업하면서 형은 그때나 지금이나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이라는 모 대기업에 입사했습니다.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출근하는 형의 모습에 제일 흐뭇해 하셨던 것은 역시 엄마였습니다. 대구에 사시는 이모는 요즘도 가끔 '가는 그때가 제일 멋있었다 카이'라고 형의 그때 모습을 이야기하시기도 하구요.

형이 직장인이 된 것은 저에게도 그리 싫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소풍이 끝나고 반친구를 우루루 끌고 가 형이 사주는 햄버거를 얻어 먹은 적도 있고 가끔 형에게 받는 용돈도 저에게는 꽤 짭짤했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형에게는 그 삶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형이 직장 생활을 그리 내켜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별로 없었고, 이게 반항의 표시라며 형은 가끔 일부러 넥타이를 삐뚤게 매고 있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당시 한여름에도 반팔 와이셔츠를 못입는 분위기였다는 회사에 들어가서는 어김없이 바로 맸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2년쯤 지난 어느 날부터인가 더 이상 정장을 차려입고 출근하는 형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엄마로부터 형이 음악을 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저를 비롯한 가족들은 호기심반 기대반으로 형의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그러던 몇 달 후 형이 자신의 사진이 붙어 있는 음반을 들고 왔습니다. 정말 독집 앨범을 낸 것이었습니다. 형의 사진이 붙어 있는 앨범을 만지작거리며 가족들은 그저 신기해 하기만 했습니다.

가수로 데뷔했지만...

형의 음반이 나온 몇 달 후 단기사병-흔히 방위병이라고 하지요–으로 입대해 신병훈련소에 있던 저는 절친한 친구의 안부편지를 통해 "형이 TV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저도 나중에 녹화해 두었던 비디오를 통해 TV에 나온 형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노래를 하면서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지만 형은 진짜 가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졸지에 가수 동생이 되었고 가끔 버스 안 라디오에서 형의 노래가 흘러나올 때면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대구 이모는 가수 조카를 두었으니 한턱 내라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등쌀에 당시 제일 비싼 아이스크림을 10개나 샀다면서 즐거워하셨습니다. 여하튼 평범한 저희 집안에서 형의 방송출연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형의 인기는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아니 인기라는 말을 쓸 수 있는 정도도 아니었다고 하는 게 더 솔직할 것 같습니다. 굳이 변명거리를 찾자면 형과 비슷한 시기에 혜성처럼 등장한 서태지라는 무서운 아이가 몰고온 광풍에 휩쓸려 소리없이 밀려버린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쨌든 그 후로 형은 한두 번 더 TV에 출연했고 라디오에서 형의 노래가 가끔 나오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로 형의 첫 음반은 빛을 보지 못한 채 창고에 쌓이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형은 간혹 무슨 행사에 가서 노래를 했던 것 같은데, 어느 날인가 형은 '더 이상 그런데 가지 말아야지'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형이 어디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후 형은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하시던 조그만 사업을 작은형과 함께 꾸려나가며 단란한 삶을 살았습니다. 한번은 2집에 쓰일 곡이라며 처음 듣는 곡을 가져와 들려주기도 했지만 잘 풀리지 않았는지 그 이후에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젊은 날의 꿈을 이루는 '라이브 콘서트'

가끔 노래하던 시절에 어울리던 친구와 후배들이 집으로 놀러오면 "(다른 친구들이) 작은 카페라도 빌려 공연 한 번 하면 어떻겠냐는"는 이야기를 한다며 형은 마음 한켠에 여전히 남아 있는 아쉬움을 드러내고는 했습니다.

그러던 형이 드디어 칼을 뽑아든 것입니다. 그것도 기성가수들이 주로 선다는 전문 공연장에서 말입니다. 장소를 계약하러 갔을 때 공연장 관계자도 형같은 보통 사람이 단독 콘서트를 하는 경우는 처음이라며 신기해 했답니다.

포스터를 제작하기 위해 사진도 찍고 퇴근 후 열심히 첫 무대를 준비하면서 형도 제법 긴장된 것 같구요. 형이 무대에 선다는 소식에 저도 처음에는 약간 당황했지만 형이 늘 마음에 품고 있던 일을 드디어 이룬다는 생각에 무척 기뻤습니다. 결혼 10주년을 맞이하는 형수님과 조카들에게도 아주 멋진 선물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구요.

작년 봄, 둘째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이후 저희 가족들은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부모님께서 느끼시는 고통은 말할 것도 없었고 가끔 전화를 하면 형님의 핸드폰 벨소리도 무척이나 우울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번 무대가 형님을 비롯한 우리 가족 모두가 갖고 있는 먼저 떠나 보낸 작은형에 대한 아픔을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이번 공연에 형이 내건 타이틀은 '386 Forever'입니다. 젊은 시절 가졌던 꿈을 잃어버린 채 어느새 40대의 삶을 살아가는 자신의 또래에게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새로운 시간을 꿈꾸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형의 바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무쪼록 음반을 낸 후 11년만에 열리는 단독 공연이 그동안 형이 가슴에 묻고 살아왔던 음악에 대한 정열을 아낌없이 발휘하는 멋진 무대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형이 원한다면 가끔 노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40대 분들께, 당당하게 무대에 서는 형의 모습이 젊은 시절 품었던 이런 저런 꿈들을 다시 한번 꿈꾸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마흔 셋에 첫 단독 무대에 서시는 형님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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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독일에서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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