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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사람은 끝까지 돌아오지 않거든. 돌아오지 않을 사람은 안 찾는 법이야.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법이지. 그렇게 생각 안 하나?"

▲ 0.5∼0.7평의 쪽방 모습.
ⓒ 강태성
추운 겨울, 쪽방살이를 하는 많은 사람들은 경제적인 어려움 보다 0.5평 방 안에서 혼자 외로운 생활을 하는 것을 더 힘들어하고 있다.

쪽방은 '쪼갠 방'의 준말로 0.5평 내지 0.7평짜리 방이다. 부엌, 화장실, 욕실조차 없는 단지 '잠만 잘 수 있는 방'이다. 과거 70∼80년대 판자촌을 떠올리면 어떤 방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서울에만 5곳이 쪽방 동네를 이루고 있으며, 남대문 지역에서 쪽방살이를 하는 사람들만 1천여 명에 이른다. 점점 빈곤층이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경제적으로 궁핍한 쪽방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연말연시에 반짝 찾아오는 "구원의 손길"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외로움을 함께 나눴으면 한다.

남대문 쪽방동네 '나사로의 집' 김흥용 목사는 "쪽방동네 사람들은 인생의 막다른 길에 서 있기 때문에 남은 건 '악'밖에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소외된 이들에게는 언제나 함께 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숙자가 아닌 당당하게 살아간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는 흔히 쪽방동네에 산다하면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노숙자를 생각하는 등 일종의 편견을 가지고 대하려는 경향이 짙다.

이에 대해 김 목사는 "노숙자들이 쉼터로 이용하는 영등포 쪽방도 있지만, 이들도 '일세'를 내기 위해 종이박스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당당한 사람들이다"라며 이런 편견은 이들을 오히려 더 힘들게 하는 요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대문 지역에 사는 1천여 명 중, 독거노인이 156명이고 기초 수급자는 180명으로 이들은 모두 일을 하며, '일세'를 내고 살아간다.

쪽방의 사용료는 일세와 월세로 나눠져 있고, 일세는 7000원, 월세는 18만원 정도이다. 그러나 몸이 불편한 독거노인들은 하루 7000원이 없어 구걸을 하러 다니기도 해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얼마나 더 살겠어. 그냥 이렇게 살다 가면 되는 거지"

쪽방동네 사람들에게는 하루 7000원을 내기 위해 힘들게 일하는 것보다 외로움이 더 큰 어려움으로 세상과는 벽을 쌓고 있다.

10년 넘게 남대문 쪽방동네에서 살고 있는 김아무개(75) 할아버지는 "그냥 나사로의 집에서 주는 음식하고 돈 좀 구해서 쌀이나 사다 먹으면서 지내다 세상 뜨면 그만이지"라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난 좀 낫지. 기초수급 대상자라 한 달에 31만원이 나오니까 방세는 안 밀리고 낼 수 있으니까"라고 덧붙였다.

또 한사코 "자녀들이 없다"고 하던 김 할아버지는 "사실 딸 둘이 있지. 큰 딸은 4살 때 잃어버려서 찾지 못했고, 작은 딸은 시집 간 후로 연락이 없어"라며 "안 찾는 게 좋지. 기억도 잘 안나. 몇 살인지도 잘 모르겠고…" 하며 말끝을 흐렸다.

또한 김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태어나 18살 때 한국에 왔어. 어려서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일은 다 기억나는데 얼굴이 기억나질 않아"라며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쪽방동네 사람들은 이렇게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방안에 홀로 남겨진 것에 힘들어한다. "돌아오지 않을 사람은 찾는 법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외로움에 지친 어두운 그림자가 비쳤다.

그러나 김 할아버지는 애써 태연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간간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외로움을 감출 수 없다는 듯 "설날 같은 날에는 그냥 방안에서 가만히 누워 있어"라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 옆방에는 거동이 불편한 채, 오늘 내일 하는 할아버지가 외롭게 누운 채 방치돼 있다. 김 목사는 "자식들이 분명 있다. 하지만 노인들이 말을 안 해서 결국 저렇게 혼자 죽음을 맞이한다"며 "찾는다 해도 오지 않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라고 전했다.

쪽방 동네 사람들은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 하다보니 어느 한 사람의 죽음도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뭘 말해 달라는 거지? 할 말 없어"

쪽방동네 사람들은 연말연시에 구원의 손길 혹은 관심 등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았고, 찾아온 이들을 거부하기도 했다.

쪽방에 어떻게 왔는지 말해달라는 질문에 한 할아버지는 완강하게 거부하며 "뭘 말해 달라는 거지. 할 말 없어. 그냥 잘 살고 있으니 가라"고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김 목사는 "평상시에는 찾아오지도 않고 관심도 두지 않더니, 날씨만 쌀쌀해지면 찾아와 취재 요청을 한다"고 말했다. 또 "전에 한 학생을 TV에서 촬영했는데 얼굴이 다 나오는 바람에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전학까지 갔다"며 "이런 일들이 많이 보도돼야 이들의 여건이 좀 더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외로움에 찌든 이들에게 이런 반짝 관심은 그 외로움을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다.

"등 밀어주며 사랑을 나눕니다"
[인터뷰] 나사로의 집 '때밀이 목사' 김흥용

▲ 나사로의 집 김흥용 목사
- 쪽방동네 사람들을 도와준 계기는 무엇인가?
"나도 없이 살다보니 자연스레 이렇게 된 것이다. 아마도 서울역 근처에서 이발해 주고 등을 밀어주다 보니 유명해진 것 같은데 그냥 자연스레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

- 나사로의 집에서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
"화요일에는 도시락을 배달해 주고 금요일에는 밑반찬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제공한다. 목욕탕을 신설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곳에 목욕탕을 만들어 동네 분들이 무료로 이용하고 있다. 또 쌀 모으기 운동을 통해서 쌀을 주기도 하는데, 아직까지 너무 부족한 것이 많아 때때로 이 일에 회의가 들기도 한다."

- 겨울철을 맞아 성금 같은 것이 예년에 비해 어떠한가?
"작년에 비해 더 부족한 형편이다. 그런데 이런 단체가 돈을 함부로 받는 것도 불법이다. 때문에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구두수선가게를 운영해 모자라는 운영비를 보충해 가며 그럭저럭 운영하고 있다."

- 쪽방 동네에 독거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데 자녀들이 모두 없나?
"있다고 해도 말을 하지 않는다. 다 죽어가면서도 말을 하지 않는 이유를 부모 심정이 아니면 모를 것이다. 자녀들이 부양 할 수 없는 가정형편일 수도 있고…. 자녀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것이다. 나도 부모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어 자녀들 문제에 있어서는 조심스럽다."

- 정부에 요구하고 싶은 것은 있는가?
"없다. 정부도 많이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아직까지 부족하지만 난 더 나아질 거라 믿는다. 실제로 기초생활수급자가 28명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180명으로 늘어난 것도 고무적인 일이다. 또 이명박 시장도 찾아오는 등 많은 관심을 가져주는 것 같아 개선 될 것으로 믿고 있다."

- 쪽방 동네 사람들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분들이지만 무언가 재활 같은 게 필요하지 않나?
"당연하다. 언제까지 이 곳에 머물면서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생계 유지를 하는 것도 힘이 들고 방값을 내는 것도 힘이 든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300만원 적금 운동'을 하고 있다. 이 운동은 3백만원 정도 저축을 하면 70% 자금을 무보증으로 빌려주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임대아파트라도 얻어서 이 곳을 나갈 수 있다. 물론 3∼4년 동안 200만원도 모으기 힘든 실정이지만 노력을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생각인가?
"65살 정도까지 하면 좋겠다. 나도 아픈 곳이 많아 힘이 들지만 그래도 그 나이까지 이 일을 하게 되면 만족할 것 같다."

- 연말연시만 되면 취재 같은 것이 많이 들어올 텐데…
"그렇다. 지금도 많은 신문사에서 찾아와 동행 취재를 부탁하지만 동행취재는 내가 하는 것이지 기자들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그게 무슨 취재인가?

쪽방동네 사람들의 실상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 찾아가 만나보고 느끼고 해야 더 좋은 글이 나오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또 연말연시뿐만 아니라 인권적인 측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 기초 생활수급자는 어떤 기준이 있는가?
"일단 자녀가 있으면 안 되고, 병이 6개월이라는 진단서가 있어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 그러나 내년에 저소득계층. 차상위 계층과 아울러 기초 생활수급자도 지원비와 조건이 완화될 것이라고 보도된 것이 있어 더욱 많은 분들이 정부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 강태성

덧붙이는 글 | e조은뉴스에 송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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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분야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보고 듣고 느끼는 그 순간순간을 말입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택한지 얼마 되지도 못했지만 제 나름대로 펼쳐보고 싶어 가입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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