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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그릇 드시죠.
ⓒ 김규환
오늘(22일)은 작은 설인 동지(冬至)입니다. 오늘 정오(正午) 석불사(石佛寺 석굴암)에 맑은 햇살이 쫙 비췄을 걸 생각하면 선조들의 지혜가 놀라울 뿐입니다.

해가 짧아져 이러다 밤만 있는 세상이 될까 염려하다가도 동지죽 한 그릇 먹고 나면 한 살을 더 먹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지요. 신정(新正)보다 더 기다려지는 이날은 우리집엔 대 명절 중 하나입니다.

아직도 20년이 훨씬 더 지난 과거에 동지죽을 푸짐하게 끓이시던 어머니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꼬추(?) 달린 남자아이들은 새알심을 만들지 말라'며 극구 말리셨지만 우겨서 내 나이만큼은 만들어야 한다고 끼어 들었죠.

정성껏 한 솥 가득 끓여서는 동쪽 담벼락에 차리고 방 윗목에 차려두고 손을 싹싹 비벼 뭔가를 열심히 빌었던 어머니. 널찍한 양푼에 담아서는 집안 곳곳에 그 붉은 팥죽을 뿌렸습니다. 방 구석구석과 벽, 천장 기둥에 훅훅 뿌려 액을 몰아내셨습니다.

▲ 팥을 일어 돌 골라내고 앉히기
ⓒ 김규환

혼인 후 첫해만 빼고 매년 동지죽을 끓여 먹습니다. 올해는 나서지 않아도 될 듯 합니다. 어느새 아내가 제 솜씨를 추월했습니다. 나서지 말라는 이야기도 하는군요. 해마다 솜씨가 늘어갑니다.

우린 1년을 돌아보며 온 가족이 둘러앉아 새알을 크고 작게 만듭니다. 아이들 입에 쏘옥 들어가기 좋게 작게도 만들고 입안 가득 쫀득거리게 만들어 동지팥죽을 끓입니다. 아이들도 이제 동참합니다. 이젠 주방 위로 피신할 필요도 없답니다.

해강이 솔강이는 어린이집에서 진흙을 몇 번 갖고 놀고 집에서 수제비 끓일 때 밀가루를 갖고 놀아선지 동글납작하게 몇 개 만들어 거들어 줍니다.

▲ 비싸더라도 국산을 써야 요리가 쉽습니다. 중국산은 2시간 삶아도 돌덩이 같이 꽝꽝합니다.
ⓒ 김규환

올해는 '노동지'라고 해서 '애동지'와 다르게 부릅니다. 음력으로 11월 열흘을 기준으로 그 이전에 들면 '애동지'라 해서 동지팥죽을 끓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애동지'면 이듬해 크고 작은 일이 많다는군요. 다행히 올 동지는 팥죽을 끓여 먹을 수 있으니 악귀를 쫓는다는 뜻에서 한번 용기를 내서 끓여 드셔보세요.

국내외로 다사다난했던 2003년이었습니다. 며칠 남지 않은 '우왕좌왕(右往左往)'했던 한 해를 이제 훌훌 털고 2004년-아니 '이 천사'를 양팔을 짝 펴고 품어옵시다. 새해에도 돈은 많이 못 벌어도 하고자 한 일 모두 잘 되길 바랍니다. 아내와 해강이 솔강이도 한 살씩 더 먹은 만큼 더 씩씩하고 건강하길 빌어 봅니다.

▲ 찹쌀가루 익반죽을 되직하게 해주세요.
ⓒ 김규환

<동지죽 끓이는 과정(5인분 기준)>

하나: 먼저 팥 800g 정도를 사서 손으로 골라내든지 조리로 일어 돌을 골라내세요.

둘: 팥을 잘 씻은 다음 물을 넉넉하게 잡아 한번 끓고 나면 물을 따라버리고 다시 끓입니다. 끓으면 불을 줄여 푹 삶아줍니다. 타지 않게 잘 살펴야 합니다.

▲ 해강이도 같이 만들고 있죠? 솔강이는 지금 딴 짓을 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귤 먹는 게 더 좋은가 봅니다.
ⓒ 김규환

셋: 국산 팥은 대략 1시간 반쯤 걸리는군요. 중국산은 3시간 가량 걸리니 가능하다면 팥은 국산을 쓰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따뜻할 때 으깨서 팥물을 받아두십시오.

넷: 찹쌀 가루를 1kg 정도의 양에 물을 끓여 익반죽을 한 후 10여분 뒀다가 새알심을 만들면 됩니다. 그래야 수분이 고루 퍼지고 차지게 됩니다. 찹쌀 가루를 반 그릇 정도 뒀다가 바닥에 얇게 뿌려두면 일이 수월하고 둥그런 새알이 만들어지면 엉겨붙지 않게 조금씩 뿌려주세요. 새알 만들 때는 아이들을 위해서 조그만 것도 만들고 약간 큰 것도 만들어 어른들 한 입 가득하게 만들어도 좋습니다.

▲ 완성된 새알심. 좀 넉넉히 하세요.
ⓒ 김규환

다섯: 어느 정도 새알심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을 보아 팥물을 앉히고 바닥을 한두 번 저어 줘 눌러 붙지 않게 해주세요. 쓰다 남은 찹쌀 가루를 조금 흩어 뿌려주면 훨씬 걸쭉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너무 많이 넣어도 틉틉해져(너무 진해져) 죽다운 죽이 안됩니다.

여섯: 물이 펄펄 끓으면 뜨거운 것 튀지 않게 조심해가면서 새알을 넣고 조심스레 저어주세요. 아래 가라앉았던 것이 위로 둥둥 뜨면 대체로 익었다고 보면 됩니다. 잠깐 더 끓이다가 꺼주세요.

▲ 잘 휘저어 줘야 눌러 붙지 않고 탄내도 나지 않아요. 가마솥이 없으면 코팅 솥에 하면 초보자도 쉽게 할 수 있답니다.
ⓒ 김규환

일곱: 입맛에 따라 설탕과 굵은 소금으로 간을 해주세요. 설탕을 많이 넣으면 달아서 먹기 힘들게 되니 조금씩 두 숟갈 정도만 넣으시면 깔끔한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소금도 최대한 늦게 넣어야지 일찍 넣으면 뿌렸던 찹쌀가루가 쉽게 응고되어 진한 맛을 볼 수 없게 됩니다.

▲ 동동 뜨면 다 익은 건데 사진이 없군요.
ⓒ 김규환

여덟: 다 끓었다 싶으면 바닥을 한두 차례 살살 저어 엉기지 않게 해주세요. 만약 탔다면 이건 다 된 밥에 뭐 빠트린 격이 되니 잘 저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이 때 쫀득쫀득한 새알 한 알을 입에 넣어 보십시오. 잘 익었지요? 그럼 잠시 놔두시고 동치미를 미리 채로 썰기도 하고 네모로도 썰어 먹을 준비를 하십시오.

아홉: 상에 동치미만 차려도 됩니다. 동지죽과 동치미가 잘 어울립니다. 날씨가 따뜻하여 동치미 국물이 시원치 낳으면 미리 썰어서 냉동실에 넣어 뒀다 드시면 끝내줍니다.

▲ 이것 한 그릇만 드셔도 든든합니다.
ⓒ 김규환

열: 조금 넉넉하게 끓였다가 내일 아침에 드시던가 밤에 간식으로 먹으면 좋습니다. 보관은 베란다나 바깥에 두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날이 추우면 살얼음이 얼어 사각이며 이(齒)마저 시리고 얼음 동동 뜬 동치미와 함께 먹으면 정신이 바짝 날 지경입니다.

▲ 직접 끓이기 겁나시면 가까운 재래시장에 가서 후딱 한그릇 드십시오. 이런 아름다운 풍경도 곧 사라지겠지요?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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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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