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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며칠 전만 해도 강의실에 앉아 있는 일이 참기 힘들 정도로 더웠는데 순식간에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대자연의 섭리 앞에는 삶도 그 무엇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나 봅니다.

언제부터인가 사회 과학 도서에 관심이 많아져 소설을 홀대하고 있는 저에게 괜찮은 소설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책은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으로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었습니다. 도서관 책꽂이 가장 아래 외롭게 3권이 꽂혀 있었는데 빳빳한 표지가 의미하고 있는 것은 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았구나 하는 것과 함께 사랑 받지 못하고 있었구나 하는 두 가지였습니다.

예전의 저는 홍수처럼 쏟아져 있는 소설 가운데 어떤 것을 읽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홍보가 잘 된 소설 중 하나를 골라 읽곤 했었습니다. 홍보가 잘 되어 있다는 것이 그만큼 좋은 작품일 것이라는 막연하고도 위험한 발상을 해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무렵부터는 스스로 좋은 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글쓴이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출판사도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별명이 '똥구멍'인 주인공 한동구는 난독증에 걸린 초등학생으로 어른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묘한 감정 다툼을 비교적 해학적인 어투로 서술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초등학생의 신분으로 담임선생님을 사랑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늦게 태어난 것을 자책하기도 하는 모습은 책을 읽는 내내 불쑥불쑥 웃음이 찾아들게 만들게도 했고, 저의 어린 시절 모습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부분도 많아 무릎을 칠 때도 있었습니다.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생각들을 이렇게 눈앞에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풀어낼 수 있는 작가의 놀라운 문장력에 감탄하면서 줄곧 흐뭇한 마음으로 소설을 읽어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할머니의 바지에 그려져 있는 아메바같이 생긴 기이한 모양이 금세라도 꿈틀거리며 기어 나올 것 같다는 표현은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첫사랑의 선생님은 암울한 시대의 희생양이 되어 버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동생 영주마저도 세상을 버리게 되면서 소설은 막바지로 접어들게 됩니다. 소설의 배경이 되고 있는 70년대 후반부터의 생활상은 우리들에게 아날로그 시대를 회상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언제 생각하더라도 애틋하기만 한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있게 만드는 아주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가을 향기에 너무 취해있지 않기 위한 좋은 방법이 될 듯 합니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 -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심윤경 지음, 한겨레출판(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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