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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딸아이의 손을 잡고 동네서점에 갔습니다.
명분은 아내의 국어 교재를 구하는 것이었지만 딸아이는 '그림 조각 맞추기'를, 저는 제가 읽을 책을 더 염두에 두고 있었지요. 그러니까 부녀가 모두 제사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겁니다.

서점에서 딸아이는 아동서적 코너에서, 저는 교양도서 코너에서 각자가 잇속을 정신없이 챙기고 있는 찰라에 아내가 서점에 나타나더군요.
서점에 온 본래의 목적을 내팽개치고 자기 잇속만 차리고 있던 부녀는 순간 미안함을 느끼고 서둘러 중고등학생의 교재 코너로 얼른 발길을 돌립니다.

그것도 잠시뿐, 딸아이는 새로 나온 동물그림카드를 손에 쥐고 주인아주머니에게 달려가고 있고 저는 책값을 지불하기 위해 제 지갑을 열 필요가 없는 호기를 놓칠 수 없어 정신없이 책을 고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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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욕심이야 황석영의 <삼국지>를 통째로 집어들고 싶지만 아무래도 10권의 책을 한꺼번에 아내에게 결제를 하라는 것은 좀 미안한 일이지요. 텅 빈 제 지갑을 한탄하면서 장정일의 독서일기(1~3)를 집었다가 다시 놓습니다.

그러다 <비판적 지성인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눈길이 머뭅니다. 비판적 지식인이라는 문구가 80년대 후반기를 대학에서 보낸 제게 묘한 향수로 다가오더군요. 더구나 책을 펴낸 곳이 '인물과 사상사'라 최근의 시사문제에 무관심했던 저의 관심을 더욱 끌더군요.

표지엔 문성근, 김어준, 홍세화, 진중권, 변정수(무식하게도 저는 요즘 오락 프로그램에 나오는 모델 변정수인줄 알았습니다) 오연호, 유시민, 윤도현 밴드의 이름이 보였습니다. 이 이름을 보고 이 책을 그냥 내려놓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래서 주저 없이 책값을 계산했습니다. 집에와서 요즘 읽고 있는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3권'을 잠시 내려두고 이 책을 침대에서 집어들었습니다. 이 책은 인터뷰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역시 최근에 읽은 <장충동 김씨를 위한 책 이야기>에서 인터뷰도 아주 재미있는 글쓰기의 형태라고 느꼈던 터라 더욱 빨리 이 책을 읽게 됐습니다.

인터뷰는 아무래도 글로 쓴 의견보다는 약간 더 캐주얼 한 분위기라 솔직 담백한 메시지를 받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하지만 문성근의 인터뷰 부분은 솔직히 제가 워낙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면서 읽기가 쉽지 않더군요.

이 책에서 발견한 특이할 만한 것은 간통, 혼인빙자간음, 미스코리아, 공창 등과 같은 한때 이슈가 되었던 사회현안에 관한 같은 질문을 여러 인터뷰 당사자들에게 물었다는 겁니다. 진보적, 비판적 지식인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좋은 장점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제가 글을 올리고 있는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의 인터뷰도 아주 흥미로웠는데 아쉽게도 인터뷰한 날짜가 2001년 10월 26으로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였다는 겁니다. 하지만 당시의 오연호 기자의 포부와 오늘날의 오마이뉴스의 발전상을 비교하는 일도 재미있더군요.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고 한참이나 뒤에 제 책장 한 구석에 오연호 기자의 '한국이 미국에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발견하고 한참이나 반가워한 기억이 있는데 그의 인터뷰의 한 구석에 이런 부분이 있더군요.

지(이 책을 쓴 지승호) : 기억에 남는 뉴스게릴라는 ?
오 : 자기 딸, 가족 이야기를 쭉 써 올리는 이봉렬 기자, 쌍둥이 딸 키우는 이야기를 올리는 이일화 기자, 교사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올리는 박준호 기자 등 자기 체험을 꾸준히 써 올리는 분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비록 제 이름이 박준호가 아닌 박균호이지만 참 기쁘더군요.
이 인터뷰를 한 시점이 한국에서 영향력 있는 언론8위로 선정된 때이고 그 언론사의 대표로부터 이름이 언급되었다는 사실이 뿌듯하지 않은 시민기자가 있겠습니까?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면서 오마이뉴스가 주는 상을 두 번이나 받았고 많은 잡지사로부터 원고청탁을 받았으며(딱 한번 거절했습니다) TV와 라디오에 수차례의 출연제의를 받았으니 사실 오마이뉴스에 감사해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죠.

사실 오연호 기자의 인터뷰를 보고 반성한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어쨌든 이 책을 통해 지적 파파라치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필요할 때는 돼지우리에 가서도 싸운다는 유시민, 기자는 '무당'이라는 오연호기자 등을 만날 수 있었고 간통와 혼인빙자간음에 대한 '윤도현 밴드'의 의견을 한 권의 책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지요.

비판적 지성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 지승호의 누드토크

지승호 지음, 인물과사상사(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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