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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학교들은 어떻게 할 지 모를 일이지만, 우리 학교의 경우 내가 막 고3이 되어서야 0교시 수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 방송사의 아침 먹여 보내기 캠페인으로 인해서, 내 딴에는 0교시 수업이 학생들을 괴롭히는 공교육의 폐단으로만 보였다.

그리고 나는 잠이 많은 편이라, 일찍 일어나는 것 자체에 대해 반감이 아주 강했다. 또한 그것이 공부를 위한 일이라면……. 그래도 말없이 잠을 줄여야 했다. 나는 매일아침, 가족들 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고 가장 먼저 나간다.

개학일로부터 두 번째 주 월요일에 시작된 0교시 수업. 나는 이것으로 인해 괴로움을 느낀다. 그 모자란 잠을 채우라고 내 자신이, 나로 하여금 계속 요구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비단 나만의 일만은 아니리라.

사실, 수업 시간 중에 주위를 살짝 둘러보면 0교시 수업을 듣는 반인원의 약 3분의 1은 비몽사몽 상태다.

“저네들이나 나나 졸린 것은 마찬가지군.” 졸고 있는 다른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와 너무도 같은 모습의 반 아이들에게서 연민의 정마저 느낀다.

그래도 나는 졸 수 없다. 내 옆에 있는 우등생친구 놈만은 눈을 반짝이면서 아주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는데, 나라고 질 수는 없는 것이다.

0교시 수업이 내게 주는 것은 비단 이러한 졸리움 뿐만은 아니다.

앞서서, 마음 놓고 졸 수 없는 이유를 말 했듯, 내가 수험생이라는 것에 대해 강한 자각이 든다. 그리고 더 중요한, ‘대학’이라는 어쩌면 멀고도, 막연한 상대에 대한 ‘냄새’가 0교시 수업으로 인해서 더 가깝게 느껴진다.

나는 배가 아주 예민해서 부담이 가면 배가 아픈데, 요즘 상태가 그렇다. 긴장감은 내 마음의 주변부에서 마음의 정 가운데로 자리를 잡아가는 듯해서, 이것이 껄끄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 상황이 싫다. 그래서 내가, 가끔가다가 불유쾌하다 싶은 표정이면 이런 이유가 주요하다고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

나는 긴장할 수밖에 없고, 그 이유로 조금 괴롭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괴롭다고 말하고 있을 뿐, ‘힘들다고’ 까진 말하고 있지 않다. 진정 힘들다면, 힘들다는 넋두리조차, 입에서 뱉어낼 기운이 없을 것이기에 말이다.

그리고 ‘고등학생’이라는 존재가 편하다고, 혹은 진정 편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힘들다’라는 표현을 아끼고 싶다. 세상에 나간다면 얼마나 ‘힘든’ 일들이 많겠는가.

그보다 나는 지금의 이 상태를, 언젠가는 극복 할 수 있는, 어떤 목표를 향한, 아주 짧은 과도기로만 생각하고 싶다. 일곱 달 이라면 긴 것일까?


적응이라는 상태로 하여금 얻을 수 있는 것

‘어두운 터널에도 밖이 있듯이, 언젠가는 끝나겠지.’
나는 요즈음 이런 생각을 자주 하면서 스스로를 달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자기주문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하는지, 점차로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수월해진다.

0교시 수업을 듣기 위해 일어나고, 야자를 하고, 뉴스가 하는 밤이 되어서야 학교를 걸어 나오는 일이, 자꾸 반복됨에 따라서 이것이 마치‘생활’처럼 되어가나 보다.

그리고 어제의 짜증과 내일에 대한 부담감에서 오는 초조도 조금씩은 사그라진다. 어쩌면 이러한 상황을 가리켜 ‘적응’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명확히 말하기엔 조금 자신이 없다. 어디까지나 초보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응’이라는 상태는 현재에서 바라는 단계를 이름이다.)

‘적응’이라는 것. 수년 전에 군대 갔다 온 아는 형이 이르길, 군대 가기 전에는 그곳이 그렇게 싫어 보였는데 군대 갔다 오니 체중이 불어올 정도였다고. 이유야 어쨌든 군대 가서 잘 적응하기만 한다면 어떤 면에서 편하더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보편적으로 사람에게 있어서 이 ‘적응’이라는 메커니즘은 매우 중요한 것이리라.

그것이 ‘있고, 없고’에 따라서 세상을 달리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어떤 상황에 ‘적응’한다면, 일상이 보다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나의 경우를 일례로 보면, 요즘 학교가고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일련의 일상행위들에 대해서 퍽이나 관조적인 입장을 취해 나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세상을 여유롭게 볼 수 있다는 일련의 증거인 것이다.

나는 졸려서 짜증이 난다거나 하는 상황을 자꾸 잊으려 한다. 그보다는 상쾌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이웃 여고생들의 아리따운 면모와 맞닥뜨릴 수 있는 설레임 등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그리고 봄이 점차 만연해짐에 따라 만나게 되는 주변풍경을 즐긴다는 것 또한 그러한 일의 일환이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도시 매연에 찌들어 죽어버린 것이 아닌가 했던, 시커먼 나무들도 흰 벚꽃을 피워내고 있다. 나는 그러한 풍경을 즐기며, 갖은 책들로 인해 무겁긴 하지만 흡사 등산가방을 닮은 책가방을 등에 메는 것 조차 운치있어 한다.

또한 아침마다 내 눈앞에 펼쳐지는 거리는 매우 한가롭게만 보인다. 차도 별로 없고, 사람도 적다. 그리고 내가 있다.

그건 그렇고 요 며칠 사이에 버스 정류장 뒤에 산발해 있는 노란 개나리가 꽤나 볼만하다. 그것으로 인해서 잠시 무엇에 관한 걱정도 졸리움도 잊을 수 있다.

우리 수험생과 힘겨운 분들께 격려를

3월 말에 학교에서 모의고사를 봤다. 내 수준에서 볼 때면 흡족하다.

그런 말을 했더니 엄마는 “그거 가지고 되긴 모가 되냐? 그래 가지고 서울에 있는 대학이나 갈 수 있을 것 같아? 더 올려야지.” 조금은 쓴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엄마의 말씀이다. 칭찬은 못해줄 망정.

수능은 아직 남았고, 이 성적대로라도 그날까지 유지나 할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이 든다.

그건 그렇고 칠판에 쓰여진 ‘수능까지 며칠?’을 보니 시험까지는 216일 정도가 남아있다. 많이 남은 것인가? 괴로움의 잣대로 생각한다면 그렇다. 빨리 끝났으면…….

반면,공부할 분량을 보면 암울하다. 시간이 부족하겠는가? 아직도 멀었군. 그렇게 스스로도 조금 혼란스러운 감이 없지 않다.

그래도, 지금의 심리 상태는 앞서 고백했듯이 안정일로다. 여유가 있다. 나는 단지, 결과가 어떻더라도 지금의 심리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나 스스로를 조절할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 비겁한 합리화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래서 나는 아직까지도, 내 수험생 생활에 완전히 적응하지는 못했나 보다. 적응의 기미는 보이지만……. 성숙해 간다고는 해도 어설픈 점이 많다.

어쩌면, 이러한 상황이 나에게만 국한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나와 비슷한 많은 수험생 여러분 역시도. 그래서 힘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나처럼 ‘적응’초보의 단계에서 헤매지 마시고 덜컥 적응해 버리시라고. 비록 나는'적응'을 완전히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것의 중요성 만큼은 누차 생활 속에서 깨닫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에 대해서 ‘힘들다고’ 생각하시는 많은 분들께도 말씀드리고 싶다.

'적응하면 조금 덜 '힘들'게 느껴질 수 있을 겁니다. 힘내시고 적응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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