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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남북문제, 북핵문제, 국내 문제까지 어려운 문제가 많습니다. 말씀도 듣고 싶고 해서…."

노무현 대통령은 6일 낮 12시 청와대로 초청한 12명의 각계 원로 앞에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옆에 배석했던 유인태 정무수석은 "역사의 고비마다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온 어르신분들을 모시고 최근 국론분열 양상에 대한 고견을 듣고자 초대했습니다"라고 거들었다.

대북송금 특검제을 둘러싸고 사회적인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노 대통령이 각계의 의견을 듣고 있다. 6일 각계 원로 초청 오찬 간담회는 그 첫 시작이었다. 7일에는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를 초청해 오찬을 가졌고, 9일에는 민주당 지도부와 만찬이 예정되어 있으며 야당과의 만남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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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이 6일 청와대에서 열린 각계 원로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도광환
6일 간담회에서 가장 연장자였던 이돈명 변호사가 "정권 출범과 더불어 5년 동안 많은 민중세력, 특히 시달리고 버림받아온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펴주시리라 확신한다"며 건배를 제의했다. 이후 문이 닫히며 비공개로 진행됐다.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이 자리에서 원로들은 노 대통령에게 어떤 조언을 했을까. 대북 송금 해법을 놓고 '국론분열 양상'으로까지 표현되는 현 상황을 놓고 원로들은 어떤 '지혜'를 이야기했을까.

참석자는 김지길(80) 목사, 박형규(80) 목사, 함세웅(61) 신부, 류강하(64) 신부, 법장(62) 스님, 청화(59) 스님, 이돈명(82) 변호사, 조준희(65) 변호사, 강만길(70) 상지대 총장, 리영희(73) 한양대 대우교수, 임재경(67) 한겨레신문 부사장, 송기숙(68) 전남대 교수다.

<오마이뉴스>는 이날 참석한 12명의 각계 원로 중에서 7명을 접촉했다.

대북 송금 특검에는 부정적이지만…

이날 간담회의 주된 주제는 대북송금 특검제 문제와 북한핵 문제였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원로 모두 '한반도 비핵화'의 뜻을 폈다.

이돈명 변호사는 "북한이 핵을 가지면 안된다는 것은 대부분 일치했다"고 말했다. 강만길 총장도 "대부분 한반도에 핵이 있는 것이 옳지 않다는데 동감했다"면서 "그런데 그러려면 북에 전력사정이 좋지 않으니 기름을 주거나 케도(KEDO) 공사가 진척되거나 해야 하는데, 기름도 끊고 케도 공사도 중단하면서 원자로 건설도 하지 말라고 하면 북은 죽으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래서는 안된다. 뭔가 숨구멍을 틔어주어야 하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대북 송금 특검 문제에 대해서도 원로들은 대게 부정적인 입장을 표했다. 하지만 해법에 대해서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최종적인 차이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있었다. 야당을 최대한 설득해 보되 안될 때는 어찌할 것인가.

"남북 관계를 위해 어쩔 수 없다면 거부권도 행사해야"

강만길 총장은 간담회 직후 강원도 원주 상지대학교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이렇게 말했다.

"특검은 처벌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닌가. 여러 가지 북쪽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만약 현대 쪽 사람들이 처벌을 받으면 개성공단 사업 등에 지장이 있을 것이다. 내가 얼마 전에 북에 갔다왔는데 개성공단 현장에 갔었다. 600만 평을 개발하고 있다. 굉장한 대공사다. 남북관계 개선에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이다."

- 특검은 하더라도 처벌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뜻입니까.

"나는 야당과 교섭하고 타협해서 특검은 안했으면 좋겠다는 쪽으로 이야기했다. 나는 특히 남북관계가 경색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광주로 가면서 통화했던 송기숙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가능하면 이 문제는 통치권 차원에서 특검이 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북쪽 사람들을 보면서 자기 체제에 대한 태도가 굳어있고 자기 자존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이쪽에서 자기들의 체면과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행위에는 대단히 민감하다. 우리가 조금 잘 산다며 뻣대는 것을 대단히 질색한다. 이런 이야기를 (노 대통령에게) 했다. 특검으로 수사를 하게 되면 야당에서 그야말로 북쪽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문제가 나올 수 있다. 남북관계에 별 도움이 안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봐야 한다. 내 주장은 정치적으로 야당과 타협을 보다는 것이다."

이돈명 변호사와 청화 스님은 보다 분명히 '대통령의 거부권'을 언급했다. 가장 연장자였던 이 변호사는 간담회 직후 사무실에 있었다.

"대통령이 지금까지 한 것처럼 국민에게 해명이랄까 설득을 열심히 하고, 한나라당과 대립적인 관계보다는 되도록 협조를 구해서 가능한 한 원만하게, 불만이 있는 부분은 개정안을 내든가 하는 방법으로 갔으면 한다.

그런데 정 안되면, 해결책이 안나오고 팽팽히 맞설 때, 할 수 없이 거부권도 행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거부권을 행사하면, 정부 출발 초기이고, 그것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염려스럽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 최선을 다해서 국민에게 해명하고 야당의 협조를 구하고, 이것저것 다 했는데 방도가 없을 때…."

청화 스님은 "50년간 냉전대결 빙벽이었는데 그것을 녹이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되지 않았겠는가"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어떤 사실이나 성과에는 배경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그 배경은 배경 자체로 둬야 하는 것이지 그것을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밝히면 사실이나 성과 자체가 훼손될 수 있다. … 한나라당의 저의가 무엇이든 국회라는 공식 의결기구를 통과됐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존중할 필요가 있다. 다만 한가지 흠결은 있다. 다수의 의석으로 밀어부쳐 통과시킨 것이다. 그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대통령은 그 유감스러운 점을 지적해 다시 재협상 하도록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융통성 없이 형식논리를 주장한다면, 그때 가서는 어쩔 수 없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좋다고 본다."

"남남갈등도 무시할 수 없다, 거부권은 신중해야"

하지만 다른 의견도 있었다. 임재경 한겨레신문 부사장은 "특검 자체 여러 내용이 잘 됐다고는 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그렇다고 완전히 비토하는 것은 대통령에게 상당히 부담이 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대통령이 정쟁에 휘말리게 된다. 발목이 꽉 잡힌단 말야. 내 주장은 특검제 재협상이라고 할까? 정부의 의견을 충분히 알리고, 대북 파장을 감안한 재협상을 한나라당에 요구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에도 그냥 비토하는 식으로는 곤란하지 않을까 한다."

- 재협상을 요구했지만 안됐을 때는요?

"그것이 문제인데, 진심이 전달되면 협상이 그렇게 쉽게 결렬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런 이야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 및 그의 보좌진들이 남북화해협력을 상당히 진척시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남북화해협력 정책에 대한 국민의 설득 노력이 부족했다. 완전한 공개는 곤란하겠지만, 시시콜콜 다 밝히는 것이 아니라, 큰 줄기는 이야기해야 한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보통 보수 표가 나오지 않는다고 될 수 있으면 그런 이야기를 안하거든. 선거 때도 6·15 자체만 이야기하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이야기를 안한단 말야. 국민을 설득하고 동력을 끌어내는 것은 언론인도 아니고 관료도 아니고 정치인이 해야 한다."

조준희 변호사는 6일 밤 전화통화에서 "아직 시간이 조금 있다. 15일 내에 공표하거나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으니, 그 사이에 우선 국민들 앞에 이 법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어떻게 문제인지에 대해 알려야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다음에 거대 야당과 진심을 가지고 협상을 하라. 어차피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것은 국회 중심의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데 이 사안부터 이렇게 부딪히면 힘들지 않겠는가. 그래서 대통령이 진심을 가지고 야당과 협상을 해라.

그랬는데도,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도 안됐을 때에는 어떻게 하느냐. 이게 참 어려운 문제인데, 어떤 사람은 그럴 때는 남북관계에 흠집을 내지 않는 방향이 국익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남남갈등을 심화시키지 않는 것이 국익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중에서 남남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방향으로 했으면 좋겠다. 첫 국회의결인데, 국회중심의 정치를 하겠다고 했는데, 아무리 그것이 잘못됐다고 하더라도 거부권 행사 쪽으로는 안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류강하 신부는 영남정서에 대해 말하면서 '정면 돌파'의 뜻을 표했다.

"나는 대통령에게 영남 정서에 대해 이야기했다. 영남의 분위기를 보면 거부권 행사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대통령이 되면서 그분에게 거는 기대는 '당당하게 할 것 같다'는 것이다. 당당하게 정면돌파를 했으면 좋겠다. 특검을 받아들여서 조사할 것은 조사하라는 것이 영남지역 정서다. 다만 대외관계이지 않은가. 미묘한 문제가 있을테니 그런 문제는 국회와 의논을 해서, 아무튼 거부권 행사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이야기했다."

예정보다 20분 초과…노 대통령 "참고해서 신중히 처리하겠습니다"

이날 간담회 자리는 당초 1시간30분간 예정되어 있었으나 2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참석 원로들은 간담회의 분위기는 진지하면서도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노 대통령은 내내 듣기만 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잘 들었습니다. 잘 참고해서 신중히 처리하겠습니다"라고만 말했다.

간담회 이후 송경희 청와대 대변인은 "참석한 원로들께서는 북핵에는 반대하며 특검제 문제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국민에게 호소하고 야당과 긴밀히 대화하고 풀어가라고 당부했다"고 짧게 브리핑했다.

"전체를 보지 않고 그중 하나만..."
[최연장자 강원룡 목사가 '불참'한 까닭은?]

▲ 강원룡 목사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계획대로라면 6일 대통령과 각계 원로 간담회의 최고 연장자는 강원룡(85) 목사였다. 하지만 강 목사는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 자리가 대통령 취임식 이후 첫 외부인사 초청 청와대 행사(취임식 날 외빈 만찬 제외)라는 점을 생각할 때 강 목사의 불참은 의외였다.

강 목사는 전날인 5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초청은 받았는데 갈지 안갈지 아직 마음을 정하지 않았어"라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설마 정말 참석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음날인 6일 오후 2시경 간담회 취재를 위해 다시 전화했다. 하지만 그는 "나는 오늘 안갔어"라며 오히려 "무슨 이야기들이 오갔데? 보도도 안나오던데…"라고 되물었다.

강 목사는 불참 사유를 묻는 질문에 "어제 이야기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그는 전날 통화에서 "특검 문제와 관련해서 여론을 들으려고 모인다고 하는데, 그런 모임에 가고 싶지 않아서…. 우리나라는 말한 것 전체를 보지 않고 그중 하나만 빼내서 하니 그게 싫어"라고 말했다. 그는 "비공개로 만나서 듣겠다고 하면 얼마든지 가겠지만, 이것을 공개하니 결국 특검에 대해 반대하나 찬성하나 이런 것이 될텐데, 전체를 봐야지"라고 덧붙였다.

강 목사는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노 대통령에게 하고싶은 이야기는 많았다. 그는 '가면 대통령에게 무슨 조언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동서독 관계도 잘 알고 있고, 미국이 닉슨 대통령 시절에 중국·소련과의 관계를 어떻게 개선했는지도 잘 알고 있다. 그 사람들이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돈과 물건을 주는 것은 으레 있는 일이야. 그것을 따지는 것은 적절치 않아. 그러나 방법이 우리와 차이가 있지.

나는 독일이 했던 방법을 본받으면 좋겠다. 지금 '서독이 동독에 얼마를 줬네, 아니 얼마를 줬네' 그러는데, 나는 그분들이 한 내용을 잘 안다. 저번에 전 서독 수상인 바이체커가 와서 우리에게 이야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 사람들 참 많은 원조를 했다. 주로 세가지 방법으로 했는데, 첫번째 인도적인 것은 교회를 통해서 했고, 두번째 정부가 하는 것은 철저히 상호주의를 통해서 했고, 세번째 심지어 그들(동독)이 원할 때는 소련을 통해서 도운 일도 있다.

나는 그것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관계개선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정부에서 돈을 준 것도 마찬가지다. '돈을 얼마나 줬네' 이런 것을 따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현대같은 기업체를 통해서 했다는 것은 못마땅하다. 더구나 50년간 독점권을 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독일은 다 여야간 협의해서 했지 한번도 그냥 한 적이 없어…."
/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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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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