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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하루 잘 지내!"
제 남편이 나직이 말합니다.
"자기나 잘 지내. 난 항상 잘 지낸다구!"

큰소리로 톡 쏘아주니 눈인사만 하구 나갑니다. 그 야윈 뒷모습을 보니 가슴에 커다란 눈물 보따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와 목이 얼얼해 집니다. 하지만, 참습니다. 퉁퉁 부은 눈으론 학교에 갈 수 없으니까요.

제 남편은 사흘동안 감기로 아팠습니다. 그리고 오늘 비로소 출근하는 것이지요. 올 겨울 들어 벌써 제가 아는 한 세 번째입니다. 두 번은 가볍게 넘어가는 것처럼 보였지요. 하지만, 세번째는 제대로 걸렸답니다. 전 속으로 그랬지요. "쌤통이다."

전 나쁜 아내입니다. 어쨌든 그런 아픈 남편과 전 어제 크게 싸웠으니까요. 물론 저도 싸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까지 경우 없이 나쁘고 싶진 않았으니까요. 의리상 학교도 가지 않고 시중드는 흉내를 내고 있던 차였지만, 전 건성이었습니다. 남편이 너무 미웠거든요.

그러다, 저녁 식사시간에 일부러 만들어 놓은 꼬리곰탕국을 마다하는 남편에게 제가 "몰골하고는.." 하며 혀를 찼습니다. 제 남편 물 한 모금 못 넘기고 드러누웠었는데 갑자기 벌떡 일어나 면도하고(정말 못 말릴 성질입니다) 제 앞에 나타나 "그래, 이제 이 몰골 마음에 들어! 말을 어디 그따위로 하는 거야!"하며 안경너머 살기등등(!)한 눈으로 쏘아 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한 판 했습니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독감환자하고요.

여기서, 제가 좀 설명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근거없이 남편을 미워하는 아내라는 소린 듣고 싶진않거든요. 제가 이렇게 반응하게 된 데는 가슴아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대학생일 때였습니다.
하루 중 어느 때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부엌에 무심코 들어서는데 저희 엄마께서 꼬부려 앉으신 채로 뭔가를 하고 계셨지요.

"엄마! 뭐하세요?"
"으응. 밥 먹는다."
자세히 보니 엄마는 국에 밥을 말아 반찬 없이 들고 계셨습니다.

"그러면 좋게 않아서 먹지 왜 그래요?"
"으응 기운이 없어서."
"왜 어디 아파?"
"감기 때문에... 이놈의 감기는 좀 독하네..."

저는 엄마가 기분이 안좋다는 것만 알았지 감기에 걸리신 줄 모르고 있었던 거지요.
"약 먹었어요?"
"응."
"이제 다 나았나보네? 식사하시는 걸 보니!"

그리고 엄마 얼굴을 보니 많이 수척해 보이셨지요.
"아-아니, 좀 있어야 될 것 같아. 나으려고 밥 먹는 거야."
"나으려고 먹어?! 엄마도 참!"

좀 황당했거든요. 누구나 많이 아프면 밥을 못 먹는 거니까요. 내심 '울 엄마는 식욕도 좋다'라고 생각하였지요.

나중에 제가 결혼하고 감기 때문에 아팠을 때 저희 엄마가 전화를 하셔서 그러셨습니다. "네가 거느린 식솔이 몇 인가를 생각해봐라. 아프다고 누워있으면 더 아프고 아무도 너처럼 네가 하는 일을 해주지 않아 ,아플수록 밥이 보약이다. 먹기싫어도 삼켜봐라!" 그때도 그 말씀이 제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었습니다. 남편이 해주면 되고, 때론 아픈 것이 아내의 소중함을 일깨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만 생각했지요. 뭐 그다지 남편이 제 의도대로 깨달아주는 것 같진 않았지만요.

그리고, 제가 이곳 미국에 왔습니다. 때론 감기에 들기도 하고 다른 이유로 아프기도 더러 했습니다. 그럴때마다 편하게 드러누워 아파본 적이 없습니다. 신세지는 것보다 남 도와주는 것이 마음 편한 저는 우리 아이들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것을 부탁해야되는 것도 내키지 않고 ,또 쉽지만도 않습니다. 그러다, 사람을 찾을 수 없을 때는 영락 없이 아픈 몸 이끌고 가야됩니다. 짧게 아파야지 길게 아프면, 신세지기 미안한 마음에 몸져 누워있어도 편할리 없습니다. 게다가, 아플 때마다 밀려드는 우울증은 대책 없이 사람을 황폐하게 만들어 세상보는 눈을 흐려놓습니다.

이젠, 저도 아플 때 밥을 먹습니다. 그때마다 저희 엄마생각에 목이 메어 옵니다. 엄마가 왜그때 그러셨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니까요. 휴일날 아프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전 목이 아파도 국에 밥 말아 꾸역꾸역 먹습니다.

이런 산 경험(?)을 바탕으로 평소에 전 남편에게 늘 건강관리하라고 말해왔습니다. 아플 것 같으면 약먹고, 화나거나 스트레스 받더라도 식사를 꼬박꼬박 하기를 당부했습니다. 그건 일종의 부모로서의 책임감이며 상대방에 대한 의무감 같은 것이니까요.

그런데 제 남편 올 겨울 들어 감기가 벌써 세 번째인 것입니다. 약 먹으래도 약은 몸에 안좋다며 이불 뒤집어 쓰고 땀흘리며 끙끙거립니다. 식사도 입맛 없다고 거르기를 수차례입니다. 몸은 점점 야위어만 갑니다. 짜증을 넘어 거의 분노에 몸서리치고 있을 때 독감에 걸린 것이니 죽이라도 끓여 주는 것도 그나마 미운 정이 있어서였겠지요.

그러다 마침내 싸우게 되었으니 "아파 드러누울 수 있는 팔자니 부럽네"라는 막말까지 뱉어내고 만 것이지요. 나쁜 아내 만나 그런 팔자도 아니라며 신세 한탄을 하고 직장으로 갔을 지도 모를 남편을 생각하니 제가 과연 "내조"라는 단어를 알고나 있는 것인지 스스로 의심해 봅니다. 서로 의지하고 감싸줘도 외로울 수 있는 타향생활에 아프다는 핑계로 얘처럼 구는 상대방을 껴안아 줄 아량조차 베풀지 못하는 제 마음의 삭막함을 탓해봅니다.

학교로 가는 길에 유리창을 열고 차가운 바람을 쐬어도 참다참다 못해 쏟아낸 제 울음은 그칠지 몰랐습니다. 사는 게 왜 이런지요?

덧붙이는 글 | 제가 사는 동네는 비와 함께 겨울이 시작됩니다. 무척이나 한국의 눈이 그립습니다. 아니, 눈이 쌓인 산과 집들과 장독들과 놀이터들 그모두가 그립습니다. 눈이 따뜻하다는 느낌을 이곳에 살면서 알게되었습니다. 눈이 없는 이 동네, 그래서, 마음이 참 춥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감기가 들지 않았어도 우울해 했습니다. 하지만, 빠져나오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혼자서가 아니고 이번엔 도움이 필요했었지요. 그 와중에 제 남편이 감기에 걸렸습니다. 아주 지독한 감기였지요. 저도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데 말이예요. 감기조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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