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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이 세상에서 제일 쓸쓸한 장면을 묻는다면 전 주저 없이 학생이 떠난 교정을 꼽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씨름을 할 때는 '이 녀석들!'하며 고함을 치기도 하지만 일요일이나 휴일 일직근무를 하느라 혼자 창가에 서서 텅 빈 운동장을 보면 그렇게 을씨년스럽고 쓸쓸해 보일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떠난 빈자리는 어른의 그것보다 더 더욱 큰 것 같습니다. 내일이면 제가 담임한 우리 반 아이들의 졸업식이 있습니다. 교사가 되어 졸업식 광경을 지켜보면서 느낀 것인데, 요즘 아이들은 제가 졸업하던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제가 졸업할 때만 하더라도 진학을 하는 아이나 공장의 근로자로 취업한 친구나 모두 졸업식만큼은 꼭 참석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졸업식 날에 한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의 얼굴을 보고 안부도 묻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졸업식에 참석하는 아이들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저희 학교는 중고병설학교라 중3 아이들은 거의 한 울타리 안에 있는 병설고등학교로 진학해서인지 졸업식에 모두 참석하고 교복도 거의 입습니다.

하지만 사회로 진출하는 고3녀석들은 졸업식에 제 시간에 도착하는 것도 촌스럽게 생각하는지 식이 시작하고 얼마 지나야 어슬렁어슬렁 나타납니다. 물론 그 전날 담임선생님이 졸업식에 꼭 참석하라고 전화를 합니다. 간혹 졸업식에서 상을 받는 녀석조차 불참하는 바람에 다른 녀석이 대신 상을 받아줘야 하는 웃지 못할 일도 일어납니다.

여하튼 그렇게 녀석들은 어슬렁어슬렁 나타나 식은 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사진 몇 장을 찍은 후 총총히 학교를 떠납니다. 그렇게 최후의 한 아이가 사라지고서야 교사들은 퇴근을 합니다.

요즘에야 덜해졌지만, 초임교사 때는 제가 고3이나 중3 담임이 아닌데도 졸업식날 그렇게 쓸쓸하고 서운할 수가 없더군요.

내일도 아마 그렇게 졸업식은 끝나리라 생각됩니다. 졸업식을 마친 뒤에 하는 마지막 종례도 녀석들의 빨리 마쳤으면 하는 눈빛을 의식해서 서둘러 끝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어영부영, '나가서 잘 살라'는 식의 말 몇 마디를 내뱉고 쫓기듯이 녀석들과 헤어져야 하겠지요.

담임을 하다 보면, 늘 반아이들이 꼭 자식 같다는 생각으로 일 년을 보냅니다. 우리 반 아이들의 흠이 곧 저의 흠이 되고, 우리 반 아이들의 자랑이 곧 저의 자랑이니까요. 그렇게 일 년을 보내다 졸업을 시키게 되면 꼭 자식을 출가시키는 부모의 심정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텐데, 혹시 새로운 담임선생한테 미운 털이 박히면 어떠하나? 이 아이의 특수성을 새로운 담임선생님은 이해를 해 주실까? 고3학생이라면 대학에 가서 좋은 친구, 훌륭한 선배를 만나야 할텐데 하는 등등의 걱정을 합니다.

그렇게 졸업식을 마치고 주인을 잃은 교실과 운동장을 보노라면, 그 쓸쓸한 마음을 어디에 비하겠습니까? 놓친 열차가 더 아름답다고 합니다. 지난 일 년간 어쩌면 저와 반아이들이 서로 잘 한 것보다는 아쉬운 것이 더 많기 때문에 더 더욱 헤어짐이 섭섭하고, 그래서 지난 일 년이 더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보가 배울 수 있는 유일한 학교는 경험뿐이라는데 선생이 되고서야 십수년 전 저를 졸업시킨 은사님의 쓸쓸한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군요.

쓸쓸하고 외로워지는 것은 제가 감담해야 할 몫이고, 어쨌거나 내일이면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 29명의 제 자식이 부디 좋은 선배, 선생님, 친구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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