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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농산물 값, 늘어만 가는 농가부채. 거의 모든 품목에 걸쳐 가격파동이 불어닥치면서 어렵사리 새해를 맞이한 우리 농촌에도 새로운 희망의 싹이 트고 있다.

어려운 우리 농촌 농업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전자경매. 21세기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농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전자경매가 서울시 가락시장을 비롯한 전국 농산물 도매시장 곳곳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동영상 보기 '21C 디지털 농산물 유통혁명'


동영상 보기 '2002년 전국 도매시장이 바뀐다'


농산물 유통문제는 그동안 해결되지 않은 해묵은 숙제로 인식돼 온 것이 사실이다. 산지 농민은 밭을 갈아엎는데도 불구, 도시 사람들은 비싼 값을 지불하고 농산물을 사다 먹어야 했고, 빗나간 가격 예측과 출하조절 실패로 공급 과잉과 부족을 반복하며 들쭉날쭉 하는 농산물 값은 도저히 통제가 불가능해 보이기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도매시장에서 벌어지는 갖은 비리와 잘못된 관행은 도시 사람들과 농촌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농산물 유통을 둘러싼 고질적인 병폐를 뜯어고치려는 움직임이 시장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다. 검은 장막에 쌓여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듯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고 우리 농산물시장이 투명하고 안정적인 농산물 수급과 가격 조절을 이끌 수 있는 정보창고로 그 면모를 쇄신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 변화의 중심이 바로 디지털 농업혁명의 선두주자로 떠 오른 전자경매이다. 그동안 농산물 도매시장에서는 중매인들이 경매사에게 원하는 가격을 손짓으로 전달해서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중매인이 낙찰받는 수지식 경매방식을 취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 전자경매가 실시되면서 중매인들은 응찰단말기에 원하는 가격을 입력해서 대형 전광판을 통해 가장 높은 가격을 적어낸 낙찰자를 한눈에 알아 볼 수 있게 됐다.

전자경매는 낙찰되는 즉시 낙찰자와 경락가격을 공개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가격 조작 여지를 크게 줄였다. 또 경매사가 중매인들이 제시하는 가격을 미처 보지 못해 낙찰자가 엉뚱하게 바뀌어 버리는 부작용을 최소화했다. 말하자면 마치 유리잔을 들여다보듯 도매시장에서의 농산물 거래과정이 투명해지는 셈이다.

그동안 도매시장 경락가격은 낙찰받은 중매인이 소속 도매법인을 통해서 정산한 가격을 기준으로 제공돼 왔다. 이러다 보니 실제 낙찰가격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고 있다는 의혹을 사기 일쑤였다. 전자경매는 거래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의혹을 지우고 농산물 가격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특히 경락가격과 중매인, 그리고 출하주에 관한 기록이 거래가 이뤄짐과 동시에 전산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경매를 거치지 않고 마치 경매를 한 것처럼 꾸미는 '기록상장'과 같은 부정유통행위를 차단할 수 있다.

전자경매는 또한 전국 도매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정보를 실시간으로 농민들에게 전달함으로써 출하를 앞둔 농민들에게 보다 살아 있는 출하지원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그동안 도매시장에서 거래된 가격은 정산이 끝난 한참 뒤에야 취합해서 제공되기 때문에 경매시장에 맞춰 출하를 해야 하는 농민들은 시장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농산물을 내놓는 일이 잦았다. 가격정보를 한참 뒤에야 받을 수 있으니 그때그때 시장 상황에 걸맞은 출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전국의 도매법인은 전자경매 가격자료를 도매시장 관리사무소로 보내고, 출하주와 물량, 낙찰가격이 낱낱이 기록된 가격자료는 다시 한국농림수산정보센터를 통해 인터넷으로 뿌려진다. 앞으로 전자경매가 완전히 정착되면 농민들은 서울 가락시장과 인근 도매시장을 실시간으로 번갈아 비교하면서 출하지와 출하시기를 선택, 보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소득을 높일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전자경매는 시행초기 많은 진통을 겪어야 했다. 우선 기존 거래관행에 익숙해져 있는 시장관계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전자경매를 실시하면 모든 거래과정이 투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기존 관행을 고집하는 시장상인들의 거부감이 적지 않았던 까닭이다.

농림부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전자경매를 실시하는 도매법인들에게 우선적으로 지원혜택을 부여하는 정책을 펴왔다. 전자경매를 하지 않고서는 시장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게끔 만들었다. 이제 시장 관계자들에게 있어 거래의 투명화와 공정성 제고는 '선택'이 아닌 '의무'가 돼 버렸다.

일부 품목에 대한 전자경매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비교적 좁은 지역에서 거래되는 고추, 오이, 과일 등은 전자경매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5톤트럭 단위로 거래되는 무 배추 등은 전자경매에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로 5톤트럭 단위로 거래되는 무 배추 등을 취급하는 대아청과는 이런 우려를 말끔히 씻고 차상경매 품목의 전자경매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동 전자경매 차량이 드넓은 장소를 누비면서 무선응찰기를 통해 전자식 경매를 하는 진풍경이 서울시 가락시장에서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동안 포장이 가능한 일부 품목에 한해 제한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던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고 전품목 전자경매라는 디지털 농산물 유통시대가 막을 올린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 가락시장은 사과, 배, 버섯, 오이 등 15개 농산물에 불과하던 전자경매 대상품목을 지난달 28일부터 토마토, 멜론, 포장수박, 단감, 유자, 무, 배추, 상추, 깻잎, 쑥갓, 시금치, 청경채, 치커리 등 29개 품목으로 늘렸다.

서울시 농수산물공사에 따르면 현재 가락시장 전자경매 대상품목의 전자경매율은 물량 기준으로 55% 정도이다. 나아가서 가락시장 상장경매품목인 49개 농산물에 대한 전자경매가 올해 안에 정착될 것이라고 한다.

전자경매는 서울 가락시장에서 지방 시장으로까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말 22개 공영도매시장 중 7개 시장 15개 도매법인이 이미 전자경매를 실시한 데 이어, 조만간 7개 시장 28개 법인도 전자경매 시행에 동참할 방침이다. 또 2002년 말까지 22개 공영도매시장 58개 도매법인 모두가 전자경매를 실시할 예정이다. 바야흐로 디지털 농산물 유통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상만 농림부 시장과 담당사무관은 "전자경매는 농산물 유통 전반에 걸친 개선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농민들뿐만이 아니라 소비자들에게도 큰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유통과정이 투명해지고, 거래의 공정성이 확립되면 그동안 잘못된 거래관행으로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던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21세기를 맞이하는 농산물 도매시장에서는 상인들과 출하주들, 모두 우리 농업의 해묵은 숙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들떠 있다. 이런 와중에서도 얼마전 전자경매를 둘러싼 그릇된 부정유통 관행으로 논란이 빚어져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기도 했다. 결국 전자경매를 통해 비롯된 디지털 농업혁명 또한 '정보통신'이 아닌 '사람'이 일궈 나가야 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기사와 함께 제공된 동영상은 한국농림수산정보센터 정보지원팀에서 일하고 있는 이대용 씨가 촬영 편집을, 김성희 씨가 리포트를 도맡아 제작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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