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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선물한 저녁식사

선선한 기온이 불러온 마음의 여유
24.10.08 13:47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더위가 사라지니까 분노도 함께 없어진 것 같지 않아요?"
어제 산책길에서 위의 말을 시작으로 나는 지난 날을 돌아보며 뜨거웠던 여름의 끝자락, 성실한 주부의 밥할 의무를 온전히 외면했음을 고백했다.

자연스레 여름내내 뭘 먹고 지냈는지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입맛이 없으니 집에서 만들어먹기보다 외식에 의존했다고, 외식메뉴마저 비슷비슷했던 기나긴 여름이 눈앞에 그려졌다.
집에서 먹을 반찬들조차 인스턴트와 반찬가게의 음식에 의존한 시간들.
그 중 떡갈비는 먹을 땐 달콤하나 먹고나면 속에서 거북함이 느껴진다는 내 말에 지인은 말했다.
집에서 간단히 만들어 먹을 수 있다고.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의 대명사인 떡갈비가 간단하다는 말에 평소라면 대번에 반박했을 내가 서늘한 가을 앞에 온순해진걸까. 가만히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먼저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다진 것으로 반반 준비하고 야채는 집에 있던 당근,양파,대파 정도면 된다고 했다. 간도 소금간이면 충분하다고 하셨다.
이어 지인은 마치 요리를 시작한 것처럼 손을 사용한 설명을 시작했다.
고기와 야채를 함께 주무르는 듯한 동작에 이어 마치 눈앞에 네모난 쟁반이 있다는 듯 네모 모양을 그리고 그 위에 만들어진 고기와 야채가 한몸이 된 덩어리를 하나씩 올렸다.

보이지 않는 냉장고 문이 열리고 쟁반을 넣었다.
적당한 시간이 흐르면 고기가 단단해질 거라는 간단한 멘트와 함께 마치 진정 휴식하는 듯한 짧은 순간이 지났다.
이윽고 손은 투명한 냉장고 문을 열고 동그랑땡을 꺼냈다.
그리고 정말 식사시간이라도 된 듯 이제 두 손은 계란을 풀어서 후라이팬에 자작하게 부쳐냈다. 훌륭한 어린이 반찬의 완성이었다.

눈 앞에서 마임 한편을 본듯한 기분이었다.
아무 준비도 없었지만 손을 사용해서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잠시 그 손의 움직임에 취해 휴식했다는 것도 느껴졌다.
한번 머릿 속에 그려진 동그랑땡 작업과정은 이유 없는 자신감을 주었다.
헤어지는 길, 내 발길은 마트로 향했다.
이미 집에 다진 소고기도, 야채도 있었기에 돼지고기 갈은 것만 산다면 얼마든지 완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식사 시간이 다가오자 기다렸다는 듯 미뤄둔 설거지를 시작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중간에 야채다지기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아이에게 기회를 준답시고 덩치만 믿고 맡겼다가 야채가 온동네에 영역표시를 하긴 했지만, 그래서 아이에게 큰 소리를 치는 후회스런 짓도 해버렸지만 어쨌든 동그랑땡은 짧은 시간안에 척척 완성되었다.
나름대로 검색해둔 블로그를 참고해서 마늘도 넣고 후추, 간장, 미림, 설탕까지 넣은 고기덩어리를 계란물까지 입혀 후라이팬에 부치니 떡갈비 부럽지 않은 달짝지근하고 육즙 가득한 향이 코를 찔렀다.

함께 준비한 묵은지 김치찌개와 함께 단출하지만 입맛은 만프로 충족시키는 저녁밥상이 완성되었다.
음식을 만드는 내내 지인의 손짓이 함께 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함께 음식을 만들기라도 한 양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떡갈비를 닮은 부드럽고 맛있지만 간편하게 만든 동그랑땡에 온 가족이 미소를 지으며 식사를 마무리했다.
서늘한 가을바람과 집밥이 주는 아련함은 마음에 여유를 선물했다.

이런저런 기분좋은 감정에 취해 저녁시간 보리차까지 끓여내 환절기 기침을 하는 아이와 사이좋게 나눠마셨다.
따뜻한 집에서 직접 차린 밥상으로 배를 채우고 각자의 할 일을 하며 가을이 왔음을 온전히 느꼈다.
날씨의 힘을 느꼈다고 하면 오버일까.
문득 가을에 정복당한 듯한 하루였다는 생각이 든다.
마찬가지로 간단한 돈까스로 아이의 건강을 보살피고 싶어지는 걸 보면 가을은 만만한 상대가 아님이 확실하다.

오늘도 건강한 음식과 함께 행복한 가을날 되기를 바래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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