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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동의 나이팅게일, 저는 정신과 간호사입니다.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지친 간호사의 뒷모습 ⓒ 남궁예슬
 
그녀는 올해 28살, 정신과 3년 차의 간호사다. 늘 밝고 상냥한 얼굴에 '하하하' 웃어넘기는 긍정적이고 무던한 성격의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꽤 개인적이고 조심스러운 부분이고, 보수적인 집단 특성상 그녀의 신상에 대해서는 익명으로 함구하고 인터뷰를 시작하려고 한다.

병원은 몇 번 정도 이직하였고 정신과로 진로를 선택한 이유가 어떻게 되나요?

졸업 후 바로 취업하여 올해 3년 차로 병원은 3번 이직하였습니다. 첫 번째 들어간 곳은 대학병원이었는데 대학병원에서 처음부터 정신과로 들어가진 않았어요. 대학병원에도 정신과는 있지만 TO가 거의 없고 주로 뱅뱅 돌아서 원래 그 병원에서 일하던 간호사들이 부서 변경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더 많아요. 대학병원에서 일하다 보니 너무 업무적 강도가 심하고 체력이 남아나지 못했어요. 제 생활을 가질 수도 없었고요. 그래서 대학병원을 그만두고 다른 병원으로 옮겼어요. 간호학 수업을 받을 때도 다른 공부는 대부분 생물에 대한 이과적인 요소가 강했는데 정신과 수업은 인문학적인 요소가 있어서 재미있게 공부했었고요. 그리고 실습할 때 정신과 실습이 제일 저한테 맞더라고요. 겉으로 보기엔 그냥 '환자들이 하는 신기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투약하면 되는 곳이구나!'라고 생각했었거든요. 물론 나중에 일하다 보니 그게 아니라는 건 금방 깨달았지만요.

정신과 간호사로 일하는 직업의 여건은 어떤가요?

다른 간호사 일에 비하면 육체적 피로는 덜해요. 그리고 봉급도 보통 샐러리맨보다는 좀 더 받는 편이고요. 자세하게 말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려요. 병원마다 다르고 또 과마다 다르거든요. 그리고 갑자기 호출 때문에 병동으로 뛰어가야 하거나 그런 일이 자주 있는 편도 아니고요. 그래도 병원의 환자를 돌보는 직업이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돌발 상황이 벌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늘 긴장을 가지고 일합니다. 보통 정신병원은 아예 신경정신과 전문병원으로 독립적으로 있어요. 그리고 제가 일하는 병원은 폐쇄병동을 보유하고 있어서 간호사들은 보통 폐쇄병동에서 일하고 있어요. 다른 간호사들처럼 '퐁당퐁당'을 하고 있답니다. (day & night 근무를 말하는 의료종사자들의 용어)

정신병동에서 일하면서 힘든 일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모든 직군이 그럴지 모르겠지만 스트레스죠. 모든 일이 안 힘든 일 없겠냐마는 이 일도 가랑비에 옷 젖듯 스트레스가 쌓여가는 게 느껴져요. 육체적 스트레스는 쉬거나 자면 직접적으로 풀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이 정도면 괜찮지 뭐가 힘들어!'라고 생각하는데 문득 괜찮지 않다는 게 느껴져요. 쉬어도 풀리지 않는 피로가 사람을 무기력하고 한없이 가라앉게 만들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선생님을 힘들게 하나요?

하하. 아무래도 정신과에서 일하면 만나는 환자들이죠. 몸이 아프듯 그분들도 질병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시는 걸 알아요. 대학교 내내 배웠던 내용이니까요. 하지만 그분들이 하시는 매일 똑같은 말들. 내가 해야 하는 매일 똑 같은 설득, 매일 다투고 환자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가끔씩 저도 멍해져요. 같은 환자들을 몇 년째 보기도 하고 그 환자가 아니더라도 같은 증상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은 보통 그 비슷한 말을 하고 또 그 비슷하게 무리한 요구를 하거든요. 증상이려니 하고 감정 컨트롤을 하는 편이에요. 환자를 단지 환자로 바라봐야지 어떤 감정적인 교류를 하는 한 사람으로 바라보면 그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어져요.

선생님을 가장 힘들게 하는 분들은 어떤 종류의 환자이신가요?

이제 웬만한 건 익숙해져서 괜찮은 편이지만 PD 환자들은 여전히 애먹는 환자예요. 인격장애 환자들을 PD라고 불러요. 쉽게 말하면 블랙컨슈머 같은 환자들이에요. 끊임없이 항의하고 꼬투리를 잡아요. 그리고 또 내과적으로 안 좋은 사람. 보통 신경정신 전문 병원에는 내과 기계들이 잘 갖춰진 편이 아니에요. 예를 들어 석션기 같은 것도 하나 정도뿐이고요. 갑자기 환자가 산소포화도 떨어지는 내과적으로 위험한 상황이면 힘들어져요.

환자를 돌보는 일 외에도 힘든 일은 어떤 부분일까요?

대학병원에서 처음으로 이직했을 땐 간호사치고 몸이 편해서 너무 행복했어요. 그렇지만 앞에서 말했듯 환자를 대하는 일도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가 쌓여가요. 눈앞에서 난동 피우는 환자보다 몇 년간 폐에 붙은 타르처럼 떨어지지 않는 이 스트레스예요. 나는 분명 안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똑같은 걸 반복하고 다투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설득해야 해요. 어떤 환자들은 병동에서 거의 일생을 보내는 경우도 있는데 매일 이상한 소리를 듣다 보면 저도 이상해지는 기분이에요. 일반 병동에서는 몸이 힘들지 이런 일이 평소에 있는 게 아니잖아요. 매일 총으로 사람들을 쏴 죽이겠다느니 이런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마음이 병들어가는 것 같아요. 피폐해져요. 이런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사실 막막하기도 하고요.

같은 환자를 몇 년 동안 본다고 하셨는데 정신병동에 감옥처럼 평생 못 나오고 그런 경우도 있나요?

법 제도가 바뀌어서 몇 개월마다 한 번씩 퇴원을 해야 다시 입원할 수 있어요. 그래서 집에서 돌볼 수 없을 만큼 중증 환자의 경우는 하루 정도 외박하고 다시 입원해요. 거의 평생을 여기서 사는 케이스도 있어요. 그런 사람이 의외로 꽤 많아요. 앞서 말했듯 요즘은 폐쇄병동에 입원하는 절차도 복잡해지고 원한다고 쉽게 되지도 않아요. 환자 인권에 대해서 많이 개선됐어요.

어떤 병에 걸린 환자들이 가장 많은 비율로 병동에 수용되어 있나요?

스키조(조현병), 그 조현병 환자와 조울증 환자의 비율이 90퍼센트 정도 돼요. 제가 근무하는 곳이 폐쇄병동이기 때문에 스스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힘든 환자들을 돌보고 있어요.

그분들은 대개 어떤 증상을 보이시나요?

환자마다 제각기 달라요. 스키조는 대부분 망상이에요. 환청, 망상, 피해망상처럼요. 증상이 심하면 공격적으로 변하기도 해요. 귓가에 누군가가 끊임없이 조종하듯 말을 걸거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을 현실이라고 믿거나 그런 거요. 그리고 조울증은 기분장애에 속해요. 조증과 울증을 같이 가지고 있어서 기분이 좋을 때는 막~ 좋다가, 갑자기 우울에 빠지고요. 그냥 감정 변화랑 달라요. 병적이거든요. 조증과 울증의 끊임없는 반복이에요. (조증은 어떤 증상인가요?) 조증은 쉽게 말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기분이 너무 좋은 거예요. 어떤 조울증 환자들은 이 조증이 올 때를 즐기기도 해요. 의욕이 엄청 넘쳐서 다 해내지도 못할 일을 마구잡이로 벌린다거나 돈을 감당 못 할 만큼 엄청 써서 집을 날리기도 하고요. 갑자기 이성에 대한 욕구가 폭발적으로 생긴다거나 충동 조절이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갑자기 다른 사람들하고 싸우거나 길거리에서 옷을 홀딱 벗고 춤추는 등 기분 조절이 아예 안되는 상태에요. 그러다가 울증이 찾아오면 급성으로 우울해지고요.

한 인간으로서 무섭거나 소름 끼치거나, 혹은 화가 날 때도 있지 않으신가요?

아뇨. 단호하게 없어요. 처음부터 소름 끼치거나 무섭진 않았어요. 학교에서 이미 책으로 봤던 증상들이고 그 증상들이 이렇게 나타나는 걸 실제로 보니 오히려 좀 신기했어요. 근데 그것도 다 처음 얘기고 지금은 그냥 지쳐요. 화가 날 기운도 없을 만큼 지쳐요. 어차피 간호사 공부를 할 때 처음부터 왜 그분들이 그렇게 행동하시는지 다 배웠고 이해하니까요. 그런데 저희랑 달리 보호사분들은 욱해서 환자분들과 싸우고 소리 지르고 화내는 일들이 종종 있어요. (요양보호사가 정신병동에도 일을 하나요?) 아니요. 드라마나 영화 보면 환자가 발작을 일으킬 때 제지하는 일을 하시는 분들을 보호사라고 해요. 저희 간호사들은 그런 상황일 때 그저 '일이 힘들다.' 이렇게 생각해요. 환자를 돌보는 게 간호사의 일이고 제 업무니까요. 그런데 보호사들을 더 자극하면서 말도 안 되는 걸로 더 따지고 일부러 더 자극하는 환자들도 많아요. 관심 받고 싶으니까. 아무리 간호사라도 화가 날 때도 있지만 그걸 절대 환자에게 표출하지 않아요. 그냥 다음 사람에게 인계할 때 '나 화났다' 정도까지만 말하는 게 전부인 것 같아요. 이런 일로 화가 나고, 그걸 참기 힘든 사람은 이 일을 오래 못 해요.

간호사들과 의사와의 갈등이 있기도 하다는데 정신과는 어떤가요?

우리는 의사랑은 크게 마주치는 일도 없어요. 의사가 회진을 돌 때나 아니면 지시를 내릴 때 말고는 얘기가 잘 오고 가지도 않고요. 의사들도 사람인지라 의사마다 다 달라요. 간호사들의 보고 결과를 존중해서 처방하는 의사도 있는 반면 환자의 의사를 더 존중해서 처방하는 의사도 있어요. 본인이 직접 보지 않는 한 믿지 않는 그런 스타일이요. 여러 약을 처방해보고 환자에게 맞는 약을 고르는 작업이기 때문에 큰 마찰은 없는 편이에요. 약을 처방하는 건 의사의 몫이고 환자의 행동을 예의주시해서 약물에 대한 부작용을 살펴보고하고 환자를 보살피는 게 간호사 일이니까요.

요즘 조현병 환자의 범죄가 사회에 자주 대두되고 있는데 병동에도 환자의 수가 늘었나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조현병은 전 세계 1% 인구고 오히려 입원하는 환자의 수는 더 줄었어요. 환자 인권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면서 입원 조건이 전보다 많이 까다로워졌거든요. 입원 수속을 밟으려고 해도 입원이 잘 안 되는 경우도 많고요. 환자에 대한 인권교육도 필수 정기적으로 참여해야 해요. 입원을 한다 하더라도 의사 두 명 이상의 동의하에 진행되고, 또 무기한 입원이 아니라 중간에 의무적으로 퇴원을 해야 해요.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안 오니까 그 인원이 다 어디 갔나 해서 나중에 보니 다 치료감호소(정신 이상이 있는 범죄인을 수용하는 곳)에 가 있더래요. 그들이 범죄를 저지를 때까지 방치된 거예요. 학문적으로 봤을 때 인구 중 조현병의 수는 늘 일정해요. 병동에 환자가 줄었단 건 병동에 수용되어야 할 그들이 사회에 있단 거예요. 외래에서 진료받아 약을 타더라도 또 그걸 안 먹거나 그런 경우일 확률이 높아요. 당뇨처럼 평생 관리하는 병이에요. 그런데 환자들이 자기가 생각했을 때 괜찮다고 약을 함부로 끊으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왜 환자들은 자꾸 중간에 약을 함부로 끊을까요?) 부작용 때문에 그럴 거예요. 소화가 잘 안 되거나 살이 찌거나 계속 물이 먹히고 그런 것들이요. 부작용이 생기더라도 의사랑 상담 하에 약을 바꾸거나 지속해야 하는데 보통 외래환자들은 그렇게 잘 지켜지지 않아요. 그래서 입원 치료를 권하는 거고요.

그런데 오히려 외래 정신과에서는 진료를 받는 인구가 늘어났는데 어떤 이유라고 생각하세요?

현대의 경쟁사회에서 비롯된 극심한 스트레스도 있겠지만 그만큼 정신과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져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정신과를 다니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고는 했는데 요즘은 연예인들의 공황장애나 우울증으로 정신과를 찾았던 일화들도 보이면서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병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본인만의 스트레스 관리법이 있을까요?

보통 직장인들과 비슷해요. 퇴근하고 맥주 한 캔 마시며 영화나 드라마 예능 같은 것도 보고요. 쉬는 날에 집에서 처지지 않고 더 나가서 사람들 만나서 놀고 들어와요.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힘든 날은 코인노래방 가서 신나게 노래 부르고 들어오기도 해요. 시간 날 때 훌쩍 근거리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해요.

정신과 간호사로서 현대인이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관리하는 방법을 추천 부탁드려요.

보통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뻔한 얘기 말고는 할 게 없어요. 너무 힘든 일을 버티려고 하지 말고 취미생활을 찾아서 꾸준히 즐겨라. 정기적으로 땀 흘리는 운동을 하라. 뭐 그런 얘기요. 하지만 중증 환자의 경우에는 단 한 가지 강력한 당부가 있어요. 무조건 약을 잘 먹어야 해요. 꾸준히 제발. 입원까지 해서 상태가 호전되어 나가고도 약을 제대로 먹지 않아서 더 심해져서 다시 입원한 환자들도 많아요. 약에 부작용이 있더라도 자의로 끊는 게 아니라 반드시 의사와 상의를 하고 조절해야 해요. 절대로 마음대로 끊으면 안 돼요.

40여 분의 긴 인터뷰를 하며 살핀 그의 얼굴은 피곤이 잔뜩 묻어있었다. 힘들어도 이 일을 계속하게 되는 원동력에 대해서 묻자 크게 웃으면서 답변했다. "제 직업인걸요." 그 짧은 대답에 참 많은 의미가 느껴졌다. 고된 일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에게 조금 더 빨리, (많이) 통장에 단비가 내리길 바라며 인터뷰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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