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촌
함경도지역의 계속된 흉년과 조선말기 탐관오리들의 학정을 피해 1899년 김약연을 중심으로 한 집단이 이주하여 장계, 이주 등 10여개의 한인자연부락을 통합하여 조선을 밝게 하자는 취지로 명동이라 이름하고 명동촌 을 건설한 것이 오늘 날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시효라 할 수 있다. 많이 거주할 때에는 천 가구가 넘었단다
ⓒ신민구201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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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에 몸담으면서 교사.교육활동은 현장단위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구조에서도 변혁이 되어야만 참교육에 이른다고 봅니다.그래서 짧은 소견을 대중적인 전자공간을 담보하고 있는 오마이뉴스를 통해 전달하고 합니다. 저서로 [자본론노트],[청소년을위한백두선생경제이야기]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