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서울대병원 본관 접수대. 고 백남기씨의 아내 박경숙씨와 큰 딸 백도라지씨가 섰다. 그렇게 10분이 흘렀다. 직원이 사망진단서를 발급해, 담담한 표정의 백씨에게 건넸다.
사인이 '병사'에서 '외인사'로 바뀐 사망진단서였다. 백남기씨가 지난해 9월 25일 눈을 감은 지 8개월 26일만의 일이다.
앞서 백남기씨 유족은 김연수 서울대병원 부원장과 면담했다. 이 과정에서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이 불쑥 찾아와 백씨에게 사과하기도 했다.
백도라지씨는 이후 백남기 투쟁본부가 서울대병원 시계탑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 참석해 개원 이래 처음으로 사망진단서를 수정한 서울대병원 쪽에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지난번 이철성 경찰청장의 사과를 '원격 사과'라고 규정하고 이를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백씨는 "세상 천지에 사과를 받을 사람이 알지 못하는데 사과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저희는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다"면서 "사과를 하려면 당사자를 찾아와서 해야지 자기 사무실에서 사과를 발표하는 게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사건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예의와 법도라는 것을 좀 지켜 달라"면서 "무엇을 위해서 이철성 경찰청장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사과를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이 청장의 개인 영달과 안위를 위해서 하는 사과가 아닌지 강한 의심이 든다"라고 밝혔다.
백씨는 이철성 청장이 사과하는 이유를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과문에는) 무엇 잘못해 사과하는지는 빠져있다. 살인적인 시위진압, 살인적인 직사살수로 돌아가셨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참회하라. 경찰 몇 천 명을 데리고 와서 병원을 둘러싸고 의료진, 환자, 환자 가족들에게 민폐 끼친 것, 부검을 시도해서 한 달 넘게 장례를 못 치르게 해 우리가족을 괴롭힌 것, 시민 걱정 시킨 것, 과도하게 공권력 행사해서 우리 사회에 불필요한 불안감 준 것 모두 사과하십시오."유족을 만나 사과하겠다는 이철성 청장의 발언을 두고 "보성 집에 찾아와서 사과하겠다고 하는데, 또 일방적으로 사과하겠다고 들이미는 것에 보니 어처구니없다. 정 오려거든 강신명 전 경찰청장과 함께 와라"라고 일갈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백남기투쟁본부, 백남기농민 법률대리인단, 서울대병원 노동조합, 윤소하 정의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 기자회견 내내 서울대병원분회 회원들은 '서창석 백선하 파면하라',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의료적폐 청산하고 서울대병원 바로잡자' 등의 내용이 적힌 푯말을 들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한 목소리로 진정성 없는 경찰의 사과를 지적했다. 박선운 백남기투쟁본부 공동대표는 "이 청장이 사과쇼를 했지만 달라진 건 없다. 경찰이 달라진 게 뭐있느냐"며 "적폐청산이 돼야 해결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최종진 투쟁본부 공동대표는 "사인 정정은 진상규명의 시작일 뿐이다. 국가폭력 살인사건의 제대로 된 해결을 촉구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서울대병원을 향해서도 사인조작 시도의 전말을 밝히고 관련자를 징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철성 경찰청장의 사퇴, 경찰 고위 책임자와 진압경찰에 대한 검찰의 신속한 수사와 책임자 처벌, 국회의 백남기 특검법과 물대포·차벽 금지법 제정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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