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0.22 15:07최종 업데이트 24.10.22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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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사람들'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핵심 인사들의 역할과 이들이 주도한 정책을 분석해 그에 따른 문제점과 사회적 파장을 조명하는 기획입니다.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된 이들이 빚어낸 국정 난맥상의 실체를 입체적으로 탐구하고 그 대안을 모색합니다.[편집자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2년 11월 1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취재진과 출근길 문답을 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검사 시절 윤석열(대통령)은 스스로를 정의의 편에 서서 진실을 재단하는 심판자로 규정하고, 언론은 언제나 받아쓰기만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윤석열의 언론관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두 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첫째, 우리는 검찰 권력을 제대로 비판한 적 없다. 나쁜 놈들 때려잡는 검찰은 과연 늘 옳은가. 검찰이 이렇게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돼도 괜찮은가.

둘째, 우리는 진보의 위선과 싸운다는 윤석열의 상징 자본을 검증하지 않은 채 대선을 치렀다. 권력을 잡은 검찰이 만드는 정의를 누가 감시하고 통제할 것인가.

언론이 만든 두 가지 허상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맞닿아 있었다. 검찰 수사는 밀어붙이면 어쨌거나 결과가 나오고 재판으로 넘어간다. 평가는 법원의 몫이다. 하지만 국정 운영은 다르다. 윤석열이 좋아하는 해리 트루먼(전 미국 대통령)의 말처럼 "모든 책임은 여기에서 끝난다(The Buck Stops Here)". 책임을 떠넘길 곳이 없고 최종적인 판단과 그에 따른 비판은 윤석열이 감당해야 한다.

언론자유지수.국경없는기자회 발표를 슬로우뉴스가 재가공.

격노와 불통

윤석열 정부가 실패한다면 여러 가지 요인을 짚을 수 있겠지만 언론 정책과 철학의 부재가 가장 결정적인 패인이라고 봐야 한다. 툭하면 격노로 치닫는 윤석열 주변에 목을 내걸고 조언할 사람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애초에 언론의 비판에 귀를 닫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다. 듣고 싶은 소리만 듣고 정신 승리로 포장하는 게 실패한 대통령들이 빠지는 함정이었다.

윤석열은 이명박 정부의 언론 정책을 그대로 답습했다.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기면서 출근길 기자회견(도어스테핑)을 시도하는 등 잠깐 언론 접점을 늘렸지만 바이든-날리면 논란 이후로 문을 닫아걸었다. MBC 기자를 전용기에 타지 못하게 했고 <미디어오늘>과 <뉴스토마토> 등 일부 언론의 기자실 출입 자격을 박탈하기도 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장악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내세워 언론을 겁박하고 제재를 남발하는 것도 정확히 이명박 정부의 수법이다.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언론사를 압수수색하고 기자들에게 형사 고발을 남발하는 건 15년 전 미국산 쇠고기 사태의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뉴스타파 기자들을 끝내 법정에 세웠지만 정작 문제의 본질이 윤석열의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급기야 '국경 없는 기자회'가 집계하는 언론자유지수는 62위로 추락했다. 순위는 박근혜 정부 때 70위가 바닥이었지만 그때보다 점수는 더 낮다.

불통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수석보좌관회의에 풀기자가 참석해서 주요 발언을 스케치하던 관행도 사라졌다. 수석비서관회의로 축소한 뒤 비공개로 진행하고 대변인이 몇 줄 요약만 기자들에게 던져주는 식이다. 그나마도 윤석열 혼자 59분 동안 떠든다는 그 회의가 정권을 망치고 있다는 걸 윤석열만 모른다. 2년 반 동안 기자회견은 세 차례에 그쳤다.

역대 정권 분기별 지지율.갤럽리포트 자료를 슬로우뉴스가 재가공.

적대적인 언론관이 만든 '정신 승리' 세계관

이명박 정부도 이렇게 여론과 정면으로 맞서지는 않았다. 이명박은 집권 초반 광우병 촛불 집회로 지지율 분기 평균이 21%까지 떨어지자 미국 정부에 재협상을 요구했고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을 제한하는 등 최소한의 시늉이라도 했다. 대국민 담화에서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 시위대가 부르는 '아침이슬'을 들으며 자책했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이명박은 류우익(비서실장)을 비롯해 참모진을 대거 교체하기도 했다.

윤석열도 여러 차례 기회가 있었다. 처음 디올 백 사건이 터졌을 때 김건희(대통령 부인)가 나서지 못하게 했을 수도 있고 총선 패배 직후라도 전면적인 인적 쇄신에 나설 수 있었다. 디올 백 사건은 형사 처벌이 어려운 사안이고 주가조작 사건은 잘하면 집행유예 정도로 그칠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윤석열은 정반대로 갔다. 수사팀을 갈아치우고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봉합했다.

"언론도 전부 야당 지지세력이 잡고 있어서 24시간 정부 욕만 한다"고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다. 집권 3년 차 지지율이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추락했는데도 여전히 친윤 측근들을 끼고돌면서 침몰하는 중이다.

우리가 빠뜨려서는 안 될 중요한 질문이 있다. 윤석열은 원래 이런 사람이라 치고 윤석열 주변 참모들은 왜 하나 같이 이 모양인가.

조선일보가 "구정물을 함께 뒤집어쓴 느낌"이라고 한탄하고 중앙일보가 "윤석열 정부에 필요한 것은 냉정한 자기 객관화"라고 지적하는 상황이다. 김건희 주변의 '일곱 간신'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의혹이 쏟아지고 급기야 "아내와 나라 가운데 선택을 해야 한다"는 조언이 조선일보에 실릴 정도다. 윤석열 주변에 직언을 하는 사람이 왜 없을까.

권력의 품에 안긴 '폴리널리스트'들

이동관 방통위원장직 자진 사퇴국회 탄핵표결을 앞두고 자진사퇴를 밝힌 뒤 윤석열 대통령의 사표 수리로 방송통신위원장에서 물러나게 된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023년 12월 1일 경기도 과천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사퇴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이정민

윤석열 주변에는 폴리널리스트들이 넘쳐났다. 2022년 1월 윤석열이 대선 캠프를 꾸렸을 때, 선거대책본부에 참여한 언론인 출신이 무려 73명이나 됐다. 주요 인사들의 지난 2년 5개월 행적을 추적해 봤다.

- 이동관(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대표적이다. 동아일보 정치부장 출신으로 이명박 대선 캠프에서 공보실장을 지내고 이명박 정부 대변인과 홍보수석을 지냈다. 비판 언론을 탄압하고 기사 삭제를 요청하고, 불법 사찰을 지시했다는 의혹에 휩싸이는 등 언론 장악의 첨병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랬던 이동관이 방통위원장을 맡아 석 달 만에 KBS 사장을 갈아치우고 탄핵안 가결 직전 사퇴했다. 전략적인 후퇴였을 뿐 여전히 윤석열 정부의 언론 정책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 이동관의 뒤를 이은 이진숙(방통위원장)도 언론 특보 출신이다. 대전MBC 사장 시절 법인카드 유용 논란이 있었지만 임명을 강행했고 한 달 만에 탄핵안이 가결돼서 직무 정지 상태다. 5명 위원회 체제인 방통위에서 부위원장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 선임을 강행했다가 법원에서 집행 정지가 받아들여졌다.

방송통신위원회 구성.슬로우뉴스

- 류희림(방송통신심의위 위원장)은 YTN 경영기획실장 출신이다. 캠프 출신은 아니지만 보수 성향 언론단체인 미디어연대 대표를 지냈다. 방통심의위원장을 맡으면서 가족 등을 동원해 MBC와 뉴스타파 등과 관련된 민원을 넣으라고 사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비판 언론에 징계를 남발하는 등 언론 탄압에 앞장서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선거대책본부 언론전략기획단 단장을 지낸 황상무(전 KBS 앵커)는 대선 직후 한국정보산업연합회 상근부회장으로 있다가 대통령 비서실 시민사회수석으로 임명됐다. 올해 3월 회칼 테러 논란으로 사퇴하고 백석예술대 부총장으로 갔다.

- 후보 특별고문을 지낸 박보균(전 중앙일보 편집인)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낸 뒤 2023년 9월 퇴임했다.

- 박용찬(전 MBC 뉴스데스크 앵커)은 '모두가 미래인재 정책특별본부' 소속 문화미디어컨텐츠정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영등포을에 출마했다가 떨어졌다. 영등포을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다.

- 공동 공보특보단장을 지낸 정흥보(전 춘천MBC 사장)는 한국전파진흥협회(RAPA) 상근 부회장으로 옮겨갔다.

- 공보특보와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낸 고주룡(전 MBC 논설위원)은 인천시장 대변인을 거쳐 유정복(인천시장) 비서실장을 맡고 있다.

- 홍보특보를 지낸 임현찬(전 조선영상비전 대표)은 나스미디어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 후보 비서실 정무위원을 지낸 손지애(전 아리랑국제방송 사장)는 외교부 문화협력대사를 맡고 있다.

- 총괄특보단 소속 공보특보를 지낸 김환열(전 대구MBC 사장)은 도로교통공단 상임이사와 TBN 한국교통방송 본부장을 겸임하고 있다.

- 총괄특보단 소속 기획특보를 지낸 박강수(시사포커스TV 회장)는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마포구청장에 당선됐다.

- 선거대책위 공보특보를 지낸 채일(전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 뉴스국장)은 국방홍보원 원장을 받았다.

- 언론자문위 위원장을 지낸 황희만(전 MBC 부사장)은 케이블TV방송협회 회장으로 갔다.

- 언론자문위 부위원장을 지낸 이정옥(전 KBS 글로벌전략센터장)은 방통심의위 심의위원에 임명됐다.

- 역시 언론자문위 부위원장을 지낸 이유식(전 뉴스1코리아 대표)은 언론중재위 중재위원으로 위촉됐다. 언론자문위 위원인 김명호(전 국민일보 편집인)도 함께 중재위원으로 위촉됐다.

- 역시 언론자문위 부위원장을 지낸 송태권(전 한국일보 상무)은 뉴스통신진흥회 이사를 맡았다.

- 언론자문위 위원을 맡았던 김경중(전 MBC 정치부장)은 SPC 부사장으로 갔다.

- 언론 자문위원들도 모두 잘 나갔다. 박경아(전 동아일보 기자)는 코바코(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이사를 맡고 있다.

- 자문위원 출신의 백현주(서울신문NTN 대표)는 국악방송 사장으로 갔다가 사임했다.

- 역시 자문위원 출신인 원만식(전 MBC 예능본부장)이 백현주의 뒤를 이어 국악방송 사장을 맡고 있다.

- 선거대책위원회 산하에 '내일이 기대되는 대한민국 위원회(내기대위)'에도 언론인 출신이 많았다. 공동 부위원장을 지낸 김종혁(전 중앙일보 편집국장)은 고양시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한동훈(국민의힘 대표) 지명으로 최고위원에 선임됐다. 한동훈의 측근으로 꼽힌다.

- 문화트랜드선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김세원(전 동아일보 기자)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원장으로 갔다.

- 홍보미디어총괄본부 부본부장을 맡았던 최재혁(전 MBC 아나운서)은 KTV 방송기획관을 거쳐 대통령비서실 홍보기획 비서관을 맡고 있다.

- 캠프 대변인을 지낸 이상록(전 동아일보 법조팀장)은 한국TV홈쇼핑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 캠프 수석부대변인을 지낸 김기흥(전 KBS 기자)은 대통령 비서실 부대변인을 지냈다.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인천연수을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 캠프 공보팀장을 지낸 우승봉(조선일보 기자)은 한국벤처투자 감사로 있다가 LG전자 홍보 상무로 옮겨갔다.

- 이 밖에도 지난 총선에서는 박정훈(전 TV조선 기자)과 신동욱(전 TV조선 기자), 유용원(전 조선일보 기자), 김장겸(전 MBC 사장), 이상휘(전 데일리안 대표) 등이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됐다.

- 호준석(전 YTN 앵커)은 국민의힘 영입인재로 입당해서 서울 구로갑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지금은 국민의힘 대변인을 맡고 있다.

- 전광삼(전 서울신문 기자)은 박근혜 정부 시절 춘추관장을 지낸 뒤 문재인 정부 시절 자유한국당 추천으로 방통심의위 위원을 지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시민소통비서관을 지내다 총선 출마를 노렸으나 공천을 받지 못했다. 다시 시민사회수석 비서관으로 임용됐다.

윤석열 정부의 비극

펜을 꺾은 기자들CC0.

폴리널리스트들은 공통점이 있다. 언론인 경력을 팔아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아서 적당한 '꿀 보직'을 하나씩 꿰찼지만, 정권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윤석열은 애초에 들을 생각이 없었고 쓴소리하는 사람을 가까이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언론을 찍어 눌러서 성공한 대통령은 없다고 조언할 사람이 없다는 게 윤석열 정부의 비극이다.

정권을 잡으면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임명할 수 있는 자리가 3만 개라고 한다. 윤석열 주변의 전직 언론인들은 평생의 경력과 신뢰, 평판을 팽개치고 저널리즘의 영혼을 팔아치우면서 적당한 자리를 골라잡았지만 정작 자신들이 대통령과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자각이 없다.

이들 가운데 마지막까지 윤석열 정부의 순장조로 나설 사람이 얼마나 될까. 윤석열의 지지율이 폭락하거나 말거나 각자의 자리에서 남은 임기를 지킬 것이고 선거 시즌이 되면 또 적당한 캠프에 발을 걸칠 가능성이 크다. 이동관이나 이진숙, 류희림처럼 손에 피 묻히기를 주저하지 않는 돌격대장 스타일도 일부 있지만 역사적으로 이런 사람들의 말로는 순탄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는 비판을 뭉개고 여론을 걷어차면서 고립을 자초했다. 정치 초짜 윤석열 주변에 넘쳐났던 얼치기 폴리널리스트들의 책임이 크다. 민주주의의 기본 철학도 모르는 사람들이 언론인 간판을 내세워 논공행상을 했고 그 결과가 사상 최단기 레임덕 정권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슬로우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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